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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먹이 둔 부부도 데이트가 있는 삶

» 에두아르 드밧-퐁상, , 1886년, 캔버스에 유채, 투르 미술관 소장

“애 안 낳았으면 애초에 싸울 일도 없었어.”

젖먹이를 품에 안은 채 이 말을 남편에게서 듣는 순간, 머리를 망치로 맞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오해 없길 바란다. 아이를 낳은 걸 후회한다는 뜻으로 남편이 이 말을 한 건 아니다. 내가 잠시 멍했던 건 이 말이 ‘워딩 그대로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그 무렵 우리 부부는 둘 다 지쳐있었다. 프랑스 작가 알랭 드 보통이 그랬던가. “아기보다는 일반 가전제품이 더 상세한 취급 설명서와 함께 온다”고. 과연 맞는 말이었다. 계획했던 임신이었고 오랜 시간 동안 출산 및 육아를 준비했건만, 그 모든 노력도 무색하게 우리는 여전히 허둥거렸다. 아이가 왜 우는지, 얼마나 먹여야 하는지, 얼마만큼 재워야 하는지 육아서의 설명과 들어맞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아니, 책의 설명과 현 상황을 대조해볼 시간 자체가 없었다는 말이 더 맞겠다. 우리는 책을 집어던지고 예전에는 머릿속에 떠올리기만 해도 진저리를 쳤던 대소변과 침, 토사물과 함께 하는 삶 속으로 직행했다. “내 손에 똥 마를 날이 없어!” 지금에야 이렇게 적고 보니 뭔가 비현실적으로 웃긴 말이 됐지만, 당시엔 정말 폐부 깊숙한 곳에서 나오는 절절한 절규였다. 


이런 상황에서 나의 원망은, 기대만큼 육아에 분발해주지 않는 남편에게 쏟아지기 마련이다. 나는 남편에 대한 실망에 가득 차서 “아이만 안 낳았더라면 당신과 벌써 이혼했을 거야!”하고 쏘아붙였다. 그러자 돌아온 답은 앞서 얘기한 대로 “아이 낳기 전엔 싸울 일이 없었잖아”였다. 그랬다. 우린 별 다툼이 없던 부부였다. 비단 우리 부부 뿐일까. 결혼 이후 심심찮게 앞을 가로막는 파고 속을 요리조리 피해 나오며 애정전선을 성공적으로 지킨 부부라 하더라도, 출산 이후엔 종종 위기의 순간을 맞는다. 전과는 비교도 못할 극한의 체력과 인내력, 그리고 파트너십이 요구되는 현실 앞에 ‘순도 100%의 성인군자’는 없기 때문이다.


얼마 전 인터넷에서 미국에서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글을 접했다. 그런데 아이가 태어난 가정을 대하는 문화가 한국과 달라서 꽤 신선하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글에 따르면 ‘아빠의 육아 참여율을 높여야 한다’는 캠페인(?)은 여전히 한국에서 맹위를 떨치는 반면에, 미국에선 이미 따로 언급할 필요도 없을 정도의 상식이 되었기에 크게 들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대신 미국에서는 출산 후의 부부 데이트를 중요시하는 문화가 자리 잡았다고 한다. 조부모를 동원하고, 사람을 따로 고용까지 하며 ‘부부의 재충전’을 권장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된 이유는 무엇일까.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서는, 육아의 주체인 부부간의 신뢰와 애정을 공고히 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는 사실을 간파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너무나 당연하게도 부부는 부모 패치를 붙인 기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프랑스 화가 에두아르 드밧-퐁상(Edouard Bernard Debat-Ponsan, 1847~1913)의 에도 데이트를 준비하는 부부의 모습이 등장한다. 그림 속 연미복을 차려입은 남성과 우아한 이브닝드레스 차림의 여성은 드밧-퐁상 부부의 실제 모습이다. 화가는 얼마 전 태어난 막내딸에게 아내가 젖을 다 먹일 때까지 곁에 서서 기다리는 중이다. 곧 그들은 팔짱을 낀 채 웃으며 무도회장으로 향할 것이다. 젖먹이 아기의 엄마 아빠의 삶에도 저녁이 있어야 하고, 춤은 계속되어야 한다. 우리는 모두 부모가 되기 전, 한 명의 여성이고 남성이었음을 잊지 않는 것. 우리 가정의 ‘처음’으로 주기적으로 되돌아가 보는 일의 중요성. 이것이 궁극적으로는 아이의 행복으로 이어지리라고 나는 믿는다.

이유리 작가 sempre80@naver.com

» 에두아르 드밧-퐁상, , 1886년, 캔버스에 유채, 투르 미술관 소장

“애 안 낳았으면 애초에 싸울 일도 없었어.”

젖먹이를 품에 안은 채 이 말을 남편에게서 듣는 순간, 머리를 망치로 맞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오해 없길 바란다. 아이를 낳은 걸 후회한다는 뜻으로 남편이 이 말을 한 건 아니다. 내가 잠시 멍했던 건 이 말이 ‘워딩 그대로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그 무렵 우리 부부는 둘 다 지쳐있었다. 프랑스 작가 알랭 드 보통이 그랬던가. “아기보다는 일반 가전제품이 더 상세한 취급 설명서와 함께 온다”고. 과연 맞는 말이었다. 계획했던 임신이었고 오랜 시간 동안 출산 및 육아를 준비했건만, 그 모든 노력도 무색하게 우리는 여전히 허둥거렸다. 아이가 왜 우는지, 얼마나 먹여야 하는지, 얼마만큼 재워야 하는지 육아서의 설명과 들어맞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아니, 책의 설명과 현 상황을 대조해볼 시간 자체가 없었다는 말이 더 맞겠다. 우리는 책을 집어던지고 예전에는 머릿속에 떠올리기만 해도 진저리를 쳤던 대소변과 침, 토사물과 함께 하는 삶 속으로 직행했다. “내 손에 똥 마를 날이 없어!” 지금에야 이렇게 적고 보니 뭔가 비현실적으로 웃긴 말이 됐지만, 당시엔 정말 폐부 깊숙한 곳에서 나오는 절절한 절규였다. 


이런 상황에서 나의 원망은, 기대만큼 육아에 분발해주지 않는 남편에게 쏟아지기 마련이다. 나는 남편에 대한 실망에 가득 차서 “아이만 안 낳았더라면 당신과 벌써 이혼했을 거야!”하고 쏘아붙였다. 그러자 돌아온 답은 앞서 얘기한 대로 “아이 낳기 전엔 싸울 일이 없었잖아”였다. 그랬다. 우린 별 다툼이 없던 부부였다. 비단 우리 부부 뿐일까. 결혼 이후 심심찮게 앞을 가로막는 파고 속을 요리조리 피해 나오며 애정전선을 성공적으로 지킨 부부라 하더라도, 출산 이후엔 종종 위기의 순간을 맞는다. 전과는 비교도 못할 극한의 체력과 인내력, 그리고 파트너십이 요구되는 현실 앞에 ‘순도 100%의 성인군자’는 없기 때문이다.


얼마 전 인터넷에서 미국에서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글을 접했다. 그런데 아이가 태어난 가정을 대하는 문화가 한국과 달라서 꽤 신선하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글에 따르면 ‘아빠의 육아 참여율을 높여야 한다’는 캠페인(?)은 여전히 한국에서 맹위를 떨치는 반면에, 미국에선 이미 따로 언급할 필요도 없을 정도의 상식이 되었기에 크게 들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대신 미국에서는 출산 후의 부부 데이트를 중요시하는 문화가 자리 잡았다고 한다. 조부모를 동원하고, 사람을 따로 고용까지 하며 ‘부부의 재충전’을 권장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된 이유는 무엇일까.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서는, 육아의 주체인 부부간의 신뢰와 애정을 공고히 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는 사실을 간파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너무나 당연하게도 부부는 부모 패치를 붙인 기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프랑스 화가 에두아르 드밧-퐁상(Edouard Bernard Debat-Ponsan, 1847~1913)의 에도 데이트를 준비하는 부부의 모습이 등장한다. 그림 속 연미복을 차려입은 남성과 우아한 이브닝드레스 차림의 여성은 드밧-퐁상 부부의 실제 모습이다. 화가는 얼마 전 태어난 막내딸에게 아내가 젖을 다 먹일 때까지 곁에 서서 기다리는 중이다. 곧 그들은 팔짱을 낀 채 웃으며 무도회장으로 향할 것이다. 젖먹이 아기의 엄마 아빠의 삶에도 저녁이 있어야 하고, 춤은 계속되어야 한다. 우리는 모두 부모가 되기 전, 한 명의 여성이고 남성이었음을 잊지 않는 것. 우리 가정의 ‘처음’으로 주기적으로 되돌아가 보는 일의 중요성. 이것이 궁극적으로는 아이의 행복으로 이어지리라고 나는 믿는다.

이유리 작가 sempre8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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