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위치:»건강·생활»콘텐츠

밖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왜 말을 안 할까요?

» 한겨레 자료사진

엄마는 유치원 차에서 내린 세영이를 마중나왔다. ‘유치원에서 별 일은 없었을까? 친구들하고 잘 놀았겠지?’ 세영이가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한지 이제 세 달째라 엄마는 궁금한 게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어느 새 노란 버스가 다가와 문이 열리고, 노란 가방을 맨 세영이가 선생님의 손을 잡고 버스에서 내린다.

“세영아, 오늘 유치원에서 재미있었어?”

“응.”

“뭐 하고 놀았는데?”

“..... 그냥...”

“그럼, 누구하고 놀았어?”

“친구.”

“친구 누구?”

세영이는 고개를 갸우뚱할 뿐 친구이름을 대지 못했다.

“점심에는 뭐 먹었어?”

“밥.”

“반찬이 뭔데?” 이번에도 세영이는 고개만 갸우뚱할 뿐이다.

‘왜 대답을 안 하지? 무슨 일이 있었나? 우리 사이에 무슨 문제가 있나? 그래서 아이가 마음을 안 여는 걸까?’ 나비를 쫒아간다며 엄마 손을 놓고 저만치 뛰어가는 세영이의 모습을 보며 엄마는 마음이 복잡해진다.

유치원에 처음 아이를 보내고 나면 부모들은 궁금한 게 많아진다. 처음으로 엄마와 떨어져 여러 시간을 지내게 된 건데 친구들과 다투는 건 아닌지, 밥은 잘 먹는지, 누군가 아이를 괴롭히는 건 아닌지 걱정되는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그래서 집에 돌아온 아이를 붙들고 꼬치꼬치 물어본다. 그런데 도무지 아이가 시원하게 대답을 해주질 않는다. 밥을 잘 먹었다고 하면서 무슨 반찬을 해서 얼마나 먹었는지는 말하지 않고, 친구와 잘 놀았다고 하면서 누구와 무슨 놀이를 했는지는 생각이 안 난다는 것이다. 선생님에게 전화를 해봐도 잘 지내다 갔다는 평범한 대답뿐이다.

그러다 보면 아이의 기색에 더 예민해지고, 한마디 한마디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게 된다. 어쩌다가 누가 나랑 안 놀아줬다거나, 밥이 맛없다고 하거나 선생님이 지적했다는 말이라도 나오면 우리 애가 부적응은 아닌가, 엄마하고 관계에 문제가 있어서 그런 건 아닌가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게 된다.

유치원 아이들이 오늘 있었던 일을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제한된 기억력에 있다. 아무리 재미있었던 일이 있었다 해도 그 순간에 몰입할 뿐이지 시간이 좀 지나면 아이들은 금방 다른 일에 주의를 빼앗긴다. 그렇게 되면 지금까지 무슨 놀이를 했는지는 까맣게 잊어버리는 건 물론 시간이 더 지나면 그런 일이 있었는지조차 잊어버리게 된다.

아이들의 주의력과 기억력은 어른에 비해 상당히 미숙하고, 용량이 제한되어 있으며, 정확성이 떨어진다. 엄마에게 혼나고 뒤돌아서면 금방 같은 행동을 하는 것, 매일 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말하기 전에는 알아서 하지 않는 것, 오래된 일은 기가 막히게 잘 기억하면서도 오늘 아침 일은 기억하지 못하는 것 등등. 이 모든 것이 아직 기억력이 어른에 비해 미숙하기 때문에 자기가 겪은 일을 일목요연하게 기억의 목록에 넣어두고, 꺼내고를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가장 잘 기억하는 일은 감정이 실린 일들이다. 평소보다 훨씬 좋은 선물을 받았다거나 집에서 먼 낯선 곳에 갔다거나 엄마, 아빠에게 크게 혼났다거나, 정말 무서웠다거나 하는 식으로 그 일이 일어난 당시 강렬한 감정을 경험했을 경우 그런 일들은 평범한 일상에 비해 비교적 기억을 잘 한다. 몇 년 전에 했던 부부싸움을 아이가 반복해서 이야기하는 것이나 일 년에 한 번 가는 휴가 때 일을 마치 엊그제처럼 말하는 것은 모두 그 당시 아이가 강렬한 감정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아이는 감정을 중심으로 내용을 재조직화하기도 한다. 분명히 자기가 먼저 동생 장난감을 빼앗았으면서도 동생이 자기를 밀쳐버린 일만 기억하고, 컵을 깨서 혼났는데도 엄마가 자기만 미워한다고 받아들이기도 한다.

기억나지 않는 일을 말해보라고 다그치는 일도 아이가 지난 일을 기억하는데 지장을 줄 수 있다. 잘 생각나지 않는 일을 생각해보려고 애쓰는데 엄마가 무서운 얼굴과 큰 목소리로 얼른 말하라고 하면 아이는 감정에 압도되어 기억하는 일에 온전히 집중하기가 어려워진다. 때로는 다그치는 그 목소리에 기가 눌려 자기도 모르게 거짓말을 할 때도 있다. 생각나지 않는데 얼른 생각해보라고 하고, 말하지 않으면 혼날 것 같으니 궁여지책으로 자기도 모르게 거짓말을 하게 되는 것이다.

밖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하면 직접 엄마가 알아보는 게 가장 정확하고 빠른 방법이다. 유치원에 전화를 걸어서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아이가 자주 접촉하는 다른 어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게 정확하고 균형 잡힌 정보를 듣는 데는 가장 좋다. 아이는 기억하지 못하는 일을 말할 수 없다. 마음을 편하게 해주고 엄마가 먼저 일상적인 이야기를 하면서 아이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면 그런 분위기 속에서 아이들은 점차 자신의 일상을 엄마와 나누게 된다.

» 한겨레 자료사진

엄마는 유치원 차에서 내린 세영이를 마중나왔다. ‘유치원에서 별 일은 없었을까? 친구들하고 잘 놀았겠지?’ 세영이가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한지 이제 세 달째라 엄마는 궁금한 게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어느 새 노란 버스가 다가와 문이 열리고, 노란 가방을 맨 세영이가 선생님의 손을 잡고 버스에서 내린다.

“세영아, 오늘 유치원에서 재미있었어?”

“응.”

“뭐 하고 놀았는데?”

“..... 그냥...”

“그럼, 누구하고 놀았어?”

“친구.”

“친구 누구?”

세영이는 고개를 갸우뚱할 뿐 친구이름을 대지 못했다.

“점심에는 뭐 먹었어?”

“밥.”

“반찬이 뭔데?” 이번에도 세영이는 고개만 갸우뚱할 뿐이다.

‘왜 대답을 안 하지? 무슨 일이 있었나? 우리 사이에 무슨 문제가 있나? 그래서 아이가 마음을 안 여는 걸까?’ 나비를 쫒아간다며 엄마 손을 놓고 저만치 뛰어가는 세영이의 모습을 보며 엄마는 마음이 복잡해진다.

유치원에 처음 아이를 보내고 나면 부모들은 궁금한 게 많아진다. 처음으로 엄마와 떨어져 여러 시간을 지내게 된 건데 친구들과 다투는 건 아닌지, 밥은 잘 먹는지, 누군가 아이를 괴롭히는 건 아닌지 걱정되는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그래서 집에 돌아온 아이를 붙들고 꼬치꼬치 물어본다. 그런데 도무지 아이가 시원하게 대답을 해주질 않는다. 밥을 잘 먹었다고 하면서 무슨 반찬을 해서 얼마나 먹었는지는 말하지 않고, 친구와 잘 놀았다고 하면서 누구와 무슨 놀이를 했는지는 생각이 안 난다는 것이다. 선생님에게 전화를 해봐도 잘 지내다 갔다는 평범한 대답뿐이다.

그러다 보면 아이의 기색에 더 예민해지고, 한마디 한마디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게 된다. 어쩌다가 누가 나랑 안 놀아줬다거나, 밥이 맛없다고 하거나 선생님이 지적했다는 말이라도 나오면 우리 애가 부적응은 아닌가, 엄마하고 관계에 문제가 있어서 그런 건 아닌가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게 된다.

유치원 아이들이 오늘 있었던 일을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제한된 기억력에 있다. 아무리 재미있었던 일이 있었다 해도 그 순간에 몰입할 뿐이지 시간이 좀 지나면 아이들은 금방 다른 일에 주의를 빼앗긴다. 그렇게 되면 지금까지 무슨 놀이를 했는지는 까맣게 잊어버리는 건 물론 시간이 더 지나면 그런 일이 있었는지조차 잊어버리게 된다.

아이들의 주의력과 기억력은 어른에 비해 상당히 미숙하고, 용량이 제한되어 있으며, 정확성이 떨어진다. 엄마에게 혼나고 뒤돌아서면 금방 같은 행동을 하는 것, 매일 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말하기 전에는 알아서 하지 않는 것, 오래된 일은 기가 막히게 잘 기억하면서도 오늘 아침 일은 기억하지 못하는 것 등등. 이 모든 것이 아직 기억력이 어른에 비해 미숙하기 때문에 자기가 겪은 일을 일목요연하게 기억의 목록에 넣어두고, 꺼내고를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가장 잘 기억하는 일은 감정이 실린 일들이다. 평소보다 훨씬 좋은 선물을 받았다거나 집에서 먼 낯선 곳에 갔다거나 엄마, 아빠에게 크게 혼났다거나, 정말 무서웠다거나 하는 식으로 그 일이 일어난 당시 강렬한 감정을 경험했을 경우 그런 일들은 평범한 일상에 비해 비교적 기억을 잘 한다. 몇 년 전에 했던 부부싸움을 아이가 반복해서 이야기하는 것이나 일 년에 한 번 가는 휴가 때 일을 마치 엊그제처럼 말하는 것은 모두 그 당시 아이가 강렬한 감정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아이는 감정을 중심으로 내용을 재조직화하기도 한다. 분명히 자기가 먼저 동생 장난감을 빼앗았으면서도 동생이 자기를 밀쳐버린 일만 기억하고, 컵을 깨서 혼났는데도 엄마가 자기만 미워한다고 받아들이기도 한다.

기억나지 않는 일을 말해보라고 다그치는 일도 아이가 지난 일을 기억하는데 지장을 줄 수 있다. 잘 생각나지 않는 일을 생각해보려고 애쓰는데 엄마가 무서운 얼굴과 큰 목소리로 얼른 말하라고 하면 아이는 감정에 압도되어 기억하는 일에 온전히 집중하기가 어려워진다. 때로는 다그치는 그 목소리에 기가 눌려 자기도 모르게 거짓말을 할 때도 있다. 생각나지 않는데 얼른 생각해보라고 하고, 말하지 않으면 혼날 것 같으니 궁여지책으로 자기도 모르게 거짓말을 하게 되는 것이다.

밖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하면 직접 엄마가 알아보는 게 가장 정확하고 빠른 방법이다. 유치원에 전화를 걸어서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아이가 자주 접촉하는 다른 어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게 정확하고 균형 잡힌 정보를 듣는 데는 가장 좋다. 아이는 기억하지 못하는 일을 말할 수 없다. 마음을 편하게 해주고 엄마가 먼저 일상적인 이야기를 하면서 아이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면 그런 분위기 속에서 아이들은 점차 자신의 일상을 엄마와 나누게 된다.

Next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