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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사신 ‘깍두기’ 있던 골목길이 사라졌다

아빠들의 추억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은 언제인가? 추억이란 말과 동시에 생각은 타임머신을 타고 어린 시절로 달려간다. 동네 친구들과 말타기를 하거나 논에서 축구를 하던 장면, 엄마가 밥을 먹으라고 부르는 소리, 굴뚝에서의 연기, 그리고 가족이 도란도란 모여서 밥을 함께 먹었던 순간들이 진한 향수로 스쳐지나간다.

» 권규리 단국대학교 시각디자인학과 그 중에서 골목길의 추억은 백미였다. 그곳은 많은 아이들이 함께 놀고, 즐기는 축제의 독립된 장소였다. 또한 부모가 필요없이 아이들만의 끼리끼리 공간이다. 또한 놀기 위해서 특별히 누구와 약속을 할 필요가 없다. 그곳에서는 늘 많은 아이들이 와서 말타기, 고무줄, 딱지치기, 구슬치기, 축구 등을 하고 있어서 끼어달라고 하면 즉시 놀이를 할 수 있다. 때론 축구공이나 야구공이 딱지를 치는 아이에게 날아가도 서로 싸우지 않는다. 그런 일은 늘 다반사였기 때문이다. 때론 놀다가 다치면 서로 살펴주는 세심한 배려도 늘 있다. 더구나 아빠가 없어도, 놀이선생님이 없어도 누구나 놀이를 쉽게 배우고 함께 했다.

그 이유는 바로 ‘깍두기’의 역할이 한 몫을 했다. 아이가 어려도 하고 싶다는 의사표시를 하면 즉시 ‘깍두기 해라’하고 함께 한다. 깍두기란 불사신이며 또한 유령과 같은 존재다. 모든 놀이를 함께 할 수 있지만 죽어도 즉시 다시 할 수 있으며, 실수나 실패를 해도 누구도 비난을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깍두기 역할을 1~2주만 하면 어느새 놀이를 이해하고 함께 어울렸다.

골목길이 사라졌다. 그리고 그 곳에서 놀던 아이들도 모두 사라졌다. 그 많던 아이들은 도대체,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이제 사라진 골목길에 높은 아파트가 들어섰다. 그리고 그곳에는 작지만 현대식의 놀이터가 있다. 그러나 그곳에서 아이들이 함께 놀지 않는다. 그저 엄마와 아이가 셋트로 오며, 아이가 노는 것을 엄마가 지켜보는 편이다. 아이의 복장을 보자. 예쁜 옷 일색이다. 놀이터에 품위유지를 하러 오는 듯하다. 아이가 놀다가 넘어지기라도 한다면 다치는 것보다 옷을 버리는 것을 걱정하게 되었다.

놀이터에서 영유아들의 놀이도 많이 변했다. 가장 큰 변화는 모래가 실종이다. 고양이가 대소변을 본다는 이유로 모래는 탄력이 있는 우레탄으로 바뀌었다. 아이들에게 위생과 청결을 제공해야한다는 엄마들의 주장에 모래가 사라졌다. 이젠 지저분한 모래는 사라졌으며 아이가 넘어져도 안전을 보장받을 것 같다. 그러나 사실, 모래는 놀이의 보고이며 창의성의 원천공간이다. 모래만 있으면 두꺼비 놀이, 역할놀이 등 100가지의 놀이를 할 수 있다. 아! 어쩌랴... 소탐대실이다. 빈대를 잡으려고 초가삼간을 태운 격이다.

초등학생들은 거의 놀이터에 오지 않는다. 엄마들의 말을 들어보면 친구들이 없기 때문에 가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친구를 사귀려고 학원으로 발길을 돌린다. 그러나 그 속마음을 들여다보면 그들의 놀이터가 아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남자들이라면 우선 축구나 야구가 기본이다. 그러려면 그런 공간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놀이터엔 그런 공간이 없으며 아파트단지를 설계 할 때 애당초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다. 더구나 여자 아이들의 주 종목인 고무줄놀이를 할 공간도 별로 없다. 이래저래 놀 곳을 찾지 못하고 학원을 떠돌며 놀이가 없는 어린 시절을 보내게 된다.

중고생들의 비애는 더욱 크다. 청소년들이 좋아하는 농구장은 그 어디도 보이지 않으며 처음부터 그들을 위한 공간은 전혀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다. 축구는 2002년 월드컵 4강 이후로 전 국민의 스포츠로 자리잡았지만 공을 찰 만한 곳도 없다. 오직, 그들이 마지못해 갈 수 밖에 없고, 찾을 수 밖에 없는 곳이 바로 PC방이다. 그곳에서 네트워크 게임을 하거나 레벨을 올리기 위하여 결코 끝날 수 없는 게임에 눈과 감각을 집중하며 시간을 보낸다. 그러므로 체력이 향상되기는커녕, 시력은 나빠지고 안경을 쓰는 아이들의 숫자만 늘어간다.

골목길은 인성의 보고였다. 인성이란 사람의 성품이며 대부분 어린 시절에 형성된다. 아이들은 많이 놀면서 생성되는데 집중력, 창의성, 사회성, 자신감, 자존감, 자유정신, 소통, 언어발달, 도전정신, 리더십, 질서의식, 책임감, 배려, 몰입, 관찰력 등이다. 골목길에서 놀이를 보자. 많은 아이들이 서로 어울려서 함께 노는 사회성, 누구도 서로 배척하지 않으며 놀 수 있는 배려하는 마음, 공을 차면서 느끼는 자신감이나 도전정신, 넓은 공간을 뛰어다니면서 느끼는 자유정신, 항상 고학년이 대장이 되어서 리드하는 리더십, 서로 자신의 주장을 말하면서 조화를 이루는 소통, 규칙을 만들면서 노는 질서의식, 비논리와 예측이 불가능한 놀이를 통하여 얻어지는 창의성과 공간지각능력이 저절로 형성되었다. 골목길이 사라진 지금, 아이들에게 그런 인성을 형성시킬 방법이 없다. 대체재가 없다. 비록, 수 만 권의 책을 읽어도 놀면서 몸으로 배우는 인성의 형성은 결코 발끝 만큼도 따라 갈 수 없다.

또한 골목길은 아이들에게 체육심리학에서 말하는 9가지의 신체기능인 근력, 근지구력, 심폐지구력, 유연성, 순발력, 민첩성, 협응력, 조정력, 평형감각도 발달시켰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통하여 빠른 민첩성을, '딱지치기'를 통하여 근력을, '씨름'을 통하여 근지구력을, '축구'를 통하여 순발력과 협응력 등을 저절로 터득했다. 요즘 부모의 관념으로 보면 아이들이란 공부만 잘하면 저절로 건강해지고 성공한다고 믿는 듯하다. 그러나 전혀 아니다. 라마르크의 ‘용불용설’처럼 신체의 기능이란 쓰는 부위가 점점 발달한다는 점이며 쓰지 않는 부위는 퇴화된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맛있는 음식만 먹고 운동하지 않는다면 비만아이로 변한다는 말이다.

우리는 신문이나 인터넷을 통하여 정치, 경제, 사회가 정말 빠르게 변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 그러나 정작 가족문화도 동일한 속도로 변했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둔감하다. 골목길이 사라진 후, 가장 큰 변화는 아이들이 아파트에 적응하는 인성으로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골목길에서 자란 아빠들과의 문화적 충돌로 이어진다. 그래서 요즘 아이들을 키우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그래도 마지막 남은 희망이 끈이 있다. 아직도 골목길 인성이 형성된 아빠들이 부모세대라는 점이다. 지금의 아빠들이 나서준다면 비록, 골목길 세대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아빠들의 인성을 아이들에게 물려줄 수 있다. 그러나 한 세대가 지나면 아파트 인성을 가진 아이들이 부모가 되어 자식을 낳는 다는 점이다. 디지털인성의 시대가 열릴 것이다.

이제 골목길이 사라졌다. 그리고 아이들도 사라졌다.

아이들은 미래의 희망이라고 말하지만 점점 돈으로만 키우려는 세태로 변하고 있다.

점점 아이들의 인성을 형성시키기가 힘들어졌다.

누가, 어떻게, 아이들의 인성을 키울 것인가?

골목길을 살려내라.

» 권규리 단국대학교 시각디자인학과 그 중에서 골목길의 추억은 백미였다. 그곳은 많은 아이들이 함께 놀고, 즐기는 축제의 독립된 장소였다. 또한 부모가 필요없이 아이들만의 끼리끼리 공간이다. 또한 놀기 위해서 특별히 누구와 약속을 할 필요가 없다. 그곳에서는 늘 많은 아이들이 와서 말타기, 고무줄, 딱지치기, 구슬치기, 축구 등을 하고 있어서 끼어달라고 하면 즉시 놀이를 할 수 있다. 때론 축구공이나 야구공이 딱지를 치는 아이에게 날아가도 서로 싸우지 않는다. 그런 일은 늘 다반사였기 때문이다. 때론 놀다가 다치면 서로 살펴주는 세심한 배려도 늘 있다. 더구나 아빠가 없어도, 놀이선생님이 없어도 누구나 놀이를 쉽게 배우고 함께 했다.

그 이유는 바로 ‘깍두기’의 역할이 한 몫을 했다. 아이가 어려도 하고 싶다는 의사표시를 하면 즉시 ‘깍두기 해라’하고 함께 한다. 깍두기란 불사신이며 또한 유령과 같은 존재다. 모든 놀이를 함께 할 수 있지만 죽어도 즉시 다시 할 수 있으며, 실수나 실패를 해도 누구도 비난을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깍두기 역할을 1~2주만 하면 어느새 놀이를 이해하고 함께 어울렸다.

골목길이 사라졌다. 그리고 그 곳에서 놀던 아이들도 모두 사라졌다. 그 많던 아이들은 도대체,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이제 사라진 골목길에 높은 아파트가 들어섰다. 그리고 그곳에는 작지만 현대식의 놀이터가 있다. 그러나 그곳에서 아이들이 함께 놀지 않는다. 그저 엄마와 아이가 셋트로 오며, 아이가 노는 것을 엄마가 지켜보는 편이다. 아이의 복장을 보자. 예쁜 옷 일색이다. 놀이터에 품위유지를 하러 오는 듯하다. 아이가 놀다가 넘어지기라도 한다면 다치는 것보다 옷을 버리는 것을 걱정하게 되었다.

놀이터에서 영유아들의 놀이도 많이 변했다. 가장 큰 변화는 모래가 실종이다. 고양이가 대소변을 본다는 이유로 모래는 탄력이 있는 우레탄으로 바뀌었다. 아이들에게 위생과 청결을 제공해야한다는 엄마들의 주장에 모래가 사라졌다. 이젠 지저분한 모래는 사라졌으며 아이가 넘어져도 안전을 보장받을 것 같다. 그러나 사실, 모래는 놀이의 보고이며 창의성의 원천공간이다. 모래만 있으면 두꺼비 놀이, 역할놀이 등 100가지의 놀이를 할 수 있다. 아! 어쩌랴... 소탐대실이다. 빈대를 잡으려고 초가삼간을 태운 격이다.

초등학생들은 거의 놀이터에 오지 않는다. 엄마들의 말을 들어보면 친구들이 없기 때문에 가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친구를 사귀려고 학원으로 발길을 돌린다. 그러나 그 속마음을 들여다보면 그들의 놀이터가 아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남자들이라면 우선 축구나 야구가 기본이다. 그러려면 그런 공간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놀이터엔 그런 공간이 없으며 아파트단지를 설계 할 때 애당초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다. 더구나 여자 아이들의 주 종목인 고무줄놀이를 할 공간도 별로 없다. 이래저래 놀 곳을 찾지 못하고 학원을 떠돌며 놀이가 없는 어린 시절을 보내게 된다.

중고생들의 비애는 더욱 크다. 청소년들이 좋아하는 농구장은 그 어디도 보이지 않으며 처음부터 그들을 위한 공간은 전혀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다. 축구는 2002년 월드컵 4강 이후로 전 국민의 스포츠로 자리잡았지만 공을 찰 만한 곳도 없다. 오직, 그들이 마지못해 갈 수 밖에 없고, 찾을 수 밖에 없는 곳이 바로 PC방이다. 그곳에서 네트워크 게임을 하거나 레벨을 올리기 위하여 결코 끝날 수 없는 게임에 눈과 감각을 집중하며 시간을 보낸다. 그러므로 체력이 향상되기는커녕, 시력은 나빠지고 안경을 쓰는 아이들의 숫자만 늘어간다.

골목길은 인성의 보고였다. 인성이란 사람의 성품이며 대부분 어린 시절에 형성된다. 아이들은 많이 놀면서 생성되는데 집중력, 창의성, 사회성, 자신감, 자존감, 자유정신, 소통, 언어발달, 도전정신, 리더십, 질서의식, 책임감, 배려, 몰입, 관찰력 등이다. 골목길에서 놀이를 보자. 많은 아이들이 서로 어울려서 함께 노는 사회성, 누구도 서로 배척하지 않으며 놀 수 있는 배려하는 마음, 공을 차면서 느끼는 자신감이나 도전정신, 넓은 공간을 뛰어다니면서 느끼는 자유정신, 항상 고학년이 대장이 되어서 리드하는 리더십, 서로 자신의 주장을 말하면서 조화를 이루는 소통, 규칙을 만들면서 노는 질서의식, 비논리와 예측이 불가능한 놀이를 통하여 얻어지는 창의성과 공간지각능력이 저절로 형성되었다. 골목길이 사라진 지금, 아이들에게 그런 인성을 형성시킬 방법이 없다. 대체재가 없다. 비록, 수 만 권의 책을 읽어도 놀면서 몸으로 배우는 인성의 형성은 결코 발끝 만큼도 따라 갈 수 없다.

또한 골목길은 아이들에게 체육심리학에서 말하는 9가지의 신체기능인 근력, 근지구력, 심폐지구력, 유연성, 순발력, 민첩성, 협응력, 조정력, 평형감각도 발달시켰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통하여 빠른 민첩성을, '딱지치기'를 통하여 근력을, '씨름'을 통하여 근지구력을, '축구'를 통하여 순발력과 협응력 등을 저절로 터득했다. 요즘 부모의 관념으로 보면 아이들이란 공부만 잘하면 저절로 건강해지고 성공한다고 믿는 듯하다. 그러나 전혀 아니다. 라마르크의 ‘용불용설’처럼 신체의 기능이란 쓰는 부위가 점점 발달한다는 점이며 쓰지 않는 부위는 퇴화된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맛있는 음식만 먹고 운동하지 않는다면 비만아이로 변한다는 말이다.

우리는 신문이나 인터넷을 통하여 정치, 경제, 사회가 정말 빠르게 변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 그러나 정작 가족문화도 동일한 속도로 변했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둔감하다. 골목길이 사라진 후, 가장 큰 변화는 아이들이 아파트에 적응하는 인성으로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골목길에서 자란 아빠들과의 문화적 충돌로 이어진다. 그래서 요즘 아이들을 키우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그래도 마지막 남은 희망이 끈이 있다. 아직도 골목길 인성이 형성된 아빠들이 부모세대라는 점이다. 지금의 아빠들이 나서준다면 비록, 골목길 세대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아빠들의 인성을 아이들에게 물려줄 수 있다. 그러나 한 세대가 지나면 아파트 인성을 가진 아이들이 부모가 되어 자식을 낳는 다는 점이다. 디지털인성의 시대가 열릴 것이다.

이제 골목길이 사라졌다. 그리고 아이들도 사라졌다.

아이들은 미래의 희망이라고 말하지만 점점 돈으로만 키우려는 세태로 변하고 있다.

점점 아이들의 인성을 형성시키기가 힘들어졌다.

누가, 어떻게, 아이들의 인성을 키울 것인가?

골목길을 살려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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