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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하면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까요?’ 학부모 교육을 하러 가면 제일 많이 듣는 질문입니다. 질문의 세부적인 사항은 조금씩 달라도 근본적인 내용은 다 똑같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는지. 지난 번 글에서 우리가 ‘부모되기’에 대해 배운 적이 없다고 했더니 묻습니다. ‘그럼 부모가 되려면 뭘 배워야 합니까?’ 글쎄요. 도대체 뭘 배우면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을까요?

» 한겨레 자료 사진

이 질문을 잠깐 접어두고 에피소드 두 가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첫 번째는 제가 유학시절 함께 공부하던 선배네 집 얘기입니다. 어느 날 선배가 공부하느라 책과 펜을 들고 책상에 앉아 있는데 7살 난 딸아이가 옆에 의자를 끌고 와서 앉더랍니다. 돌아보니 자기 동화책과 색연필을 가지고 왔더랍니다. 다시 자기 공부를 하며 중요한 부분에 줄을 긋고 있는데 옆에 앉은 아이도 자기 동화책에 색연필로 삐뚤빼뚤 줄을 긋더라나요. 선배가 야단치듯이 말했답니다. ‘너 동화책에 낙서하면 어떻게 해!’ 아이가 당당하게 답했다네요. ‘낙서한 거 아니야. 중요해서 줄 긋는 거야!’

공부하는 아빠를 둔 아이는 늘 아빠 공부하는 모습을 지켜봤을 겁니다. 아빠는 공부하다가 중요한 부분에는 줄을 긋곤 했겠지요. 어쩌면 엄마에게 아빠는 왜 책에 줄을 긋느냐고 물었고 엄마가 중요한 곳에 줄을 긋는다고 얘기해줬을런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선배네 아이의 천진한 얼굴이 떠올라 늘 미소 짓게 되는 에피소드입니다.

두 번째 에피소드는 최근 한 가정으로부터 들은 얘기입니다. 이 집에는 7살짜리 큰 딸과 4살짜리 작은 딸이 있습니다. 형제자매들이 늘 그렇듯 종종 투닥투닥 하지요. 그런데 큰 아이가 7살 쯤 되니 4살짜리 작은 아이는 논리력으로 제 언니를 따라가질 못하더랍니다. 언니가 너는 이렇고 저렇고 해서 잘못했잖아, 따지면 뭔가 제가 잘못한 것 같기는 한데 억울하기도 하고 인정하기도 싫고. 한참 수세에 몰려있던 작은 아이가 한 방에 역전시키는 필살기를 보여줬답니다. ‘너는 조용히 하고 가서 학습지나 풀어!’

이 꼬마의 발칙한 한마디에 헉, 말문이 막힌 큰 아이 모습을 상상하면 한편으로는 우습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서글프네요. 네 살짜리 작은 아이는 어디서 이 말을 들었을까요? 자기가 언니에게 논리력으로 밀리고 있을 때, 이 말 한마디가 전세를 역전시킬 거라 고 작은 것이 어찌 알았을까요? 아마 그 말은 큰 아이가 엄마로부터 일상적으로 듣는 지청구였겠지요. 초등학교도 들어가지 않은 아이는 호기심이 많아 이것저것 참견이 많았을 겁니다. 대신에 가만히 앉아서 해야 하는 학습지는 밀리기 일쑤였을 테고요. 엄마는 아이가 쓸데없이(!) 참견할 때마다 귀찮아하며 야단쳤겠지요. ‘너 학습지 다 했어? 가서 학습지나 풀어!’ 동생은 자기 언니가 그 한마디면 풀이 죽어 방 안으로 들어가던 모습을 매일같이 봤을 겁니다.

학습지나 조기교육, 사교육 등의 문제는 따로 이야기할 기회를 잡아야 할 큰 주제일 테니 일단 여기서는 언급하지 않기로 하지요. 여기서 중요한 것은 부모가 아이들에게 어떤 모습을 보여주는가 하는 것입니다. 부모들은 아이를 어떻게 ‘키울까’만 고민할 뿐, 내가 어떤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가르쳐주는 것’ 보다 ‘보여주는 것’에서 훨씬 더 빠르고 강하게 배웁니다.

그럼 ‘애들 앞에서 늘 조심하고 좋은 행동을 의식적으로 보여주면 되겠군요 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어른들이 의식적으로 보여주는 것과 실제로 사는 모습을 선험적으로 구분해 냅니다. 또한 의식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일회적이지만 사는 모습은 일상 속에서 무의식적으로 반복해서 드러나지요. 착하게 살아라 하면서 이기적으로 사는 부모, 나쁜 짓 하지 말아라 하면서 부정행위를 저지르는 교사. 책이라곤 미장원에서 보는 잡지 말고는 없으면서 하는 독서교육. 아이들은 이미 다 보고 배우고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것을 가르쳐도 부모가 실제로 그렇게 살지 않으면 교육은 말짱 헛수고입니다.

우리는 이 글 서두에서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지. 그런데 사실 우리가 자녀교육을 위해 진짜 물어야 할 질문은 다른 것이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대안교육학부모연대라는 조직이 있습니다. 대안학교에 아이를 보내는 학부모님들이 모여서 만든 단체입니다. 이 단체가 몇 년 전 처음 만들어질 때 준비위원장을 맡으셨던 분이 ‘왜 이 단체를 만드는가?’에 대한 답으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아이들은 제 나름 알아서 자랄 테니, 부모들은 부모들대로 즐겁게 살기 위해서.’ 죽겠다는 소리, 세상은 원래 그런 거란 소리, 어쩔 수 없다는 소리만 늘어놓고서 아이들이 행복하게 살기를 원한다면 너무 지나친 욕심일겁니다. ’나는 어떻게 즐겁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고민하다보면 자녀교육은 저절로 되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 한겨레 자료 사진

이 질문을 잠깐 접어두고 에피소드 두 가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첫 번째는 제가 유학시절 함께 공부하던 선배네 집 얘기입니다. 어느 날 선배가 공부하느라 책과 펜을 들고 책상에 앉아 있는데 7살 난 딸아이가 옆에 의자를 끌고 와서 앉더랍니다. 돌아보니 자기 동화책과 색연필을 가지고 왔더랍니다. 다시 자기 공부를 하며 중요한 부분에 줄을 긋고 있는데 옆에 앉은 아이도 자기 동화책에 색연필로 삐뚤빼뚤 줄을 긋더라나요. 선배가 야단치듯이 말했답니다. ‘너 동화책에 낙서하면 어떻게 해!’ 아이가 당당하게 답했다네요. ‘낙서한 거 아니야. 중요해서 줄 긋는 거야!’

공부하는 아빠를 둔 아이는 늘 아빠 공부하는 모습을 지켜봤을 겁니다. 아빠는 공부하다가 중요한 부분에는 줄을 긋곤 했겠지요. 어쩌면 엄마에게 아빠는 왜 책에 줄을 긋느냐고 물었고 엄마가 중요한 곳에 줄을 긋는다고 얘기해줬을런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선배네 아이의 천진한 얼굴이 떠올라 늘 미소 짓게 되는 에피소드입니다.

두 번째 에피소드는 최근 한 가정으로부터 들은 얘기입니다. 이 집에는 7살짜리 큰 딸과 4살짜리 작은 딸이 있습니다. 형제자매들이 늘 그렇듯 종종 투닥투닥 하지요. 그런데 큰 아이가 7살 쯤 되니 4살짜리 작은 아이는 논리력으로 제 언니를 따라가질 못하더랍니다. 언니가 너는 이렇고 저렇고 해서 잘못했잖아, 따지면 뭔가 제가 잘못한 것 같기는 한데 억울하기도 하고 인정하기도 싫고. 한참 수세에 몰려있던 작은 아이가 한 방에 역전시키는 필살기를 보여줬답니다. ‘너는 조용히 하고 가서 학습지나 풀어!’

이 꼬마의 발칙한 한마디에 헉, 말문이 막힌 큰 아이 모습을 상상하면 한편으로는 우습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서글프네요. 네 살짜리 작은 아이는 어디서 이 말을 들었을까요? 자기가 언니에게 논리력으로 밀리고 있을 때, 이 말 한마디가 전세를 역전시킬 거라 고 작은 것이 어찌 알았을까요? 아마 그 말은 큰 아이가 엄마로부터 일상적으로 듣는 지청구였겠지요. 초등학교도 들어가지 않은 아이는 호기심이 많아 이것저것 참견이 많았을 겁니다. 대신에 가만히 앉아서 해야 하는 학습지는 밀리기 일쑤였을 테고요. 엄마는 아이가 쓸데없이(!) 참견할 때마다 귀찮아하며 야단쳤겠지요. ‘너 학습지 다 했어? 가서 학습지나 풀어!’ 동생은 자기 언니가 그 한마디면 풀이 죽어 방 안으로 들어가던 모습을 매일같이 봤을 겁니다.

학습지나 조기교육, 사교육 등의 문제는 따로 이야기할 기회를 잡아야 할 큰 주제일 테니 일단 여기서는 언급하지 않기로 하지요. 여기서 중요한 것은 부모가 아이들에게 어떤 모습을 보여주는가 하는 것입니다. 부모들은 아이를 어떻게 ‘키울까’만 고민할 뿐, 내가 어떤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가르쳐주는 것’ 보다 ‘보여주는 것’에서 훨씬 더 빠르고 강하게 배웁니다.

그럼 ‘애들 앞에서 늘 조심하고 좋은 행동을 의식적으로 보여주면 되겠군요 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어른들이 의식적으로 보여주는 것과 실제로 사는 모습을 선험적으로 구분해 냅니다. 또한 의식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일회적이지만 사는 모습은 일상 속에서 무의식적으로 반복해서 드러나지요. 착하게 살아라 하면서 이기적으로 사는 부모, 나쁜 짓 하지 말아라 하면서 부정행위를 저지르는 교사. 책이라곤 미장원에서 보는 잡지 말고는 없으면서 하는 독서교육. 아이들은 이미 다 보고 배우고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것을 가르쳐도 부모가 실제로 그렇게 살지 않으면 교육은 말짱 헛수고입니다.

우리는 이 글 서두에서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지. 그런데 사실 우리가 자녀교육을 위해 진짜 물어야 할 질문은 다른 것이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대안교육학부모연대라는 조직이 있습니다. 대안학교에 아이를 보내는 학부모님들이 모여서 만든 단체입니다. 이 단체가 몇 년 전 처음 만들어질 때 준비위원장을 맡으셨던 분이 ‘왜 이 단체를 만드는가?’에 대한 답으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아이들은 제 나름 알아서 자랄 테니, 부모들은 부모들대로 즐겁게 살기 위해서.’ 죽겠다는 소리, 세상은 원래 그런 거란 소리, 어쩔 수 없다는 소리만 늘어놓고서 아이들이 행복하게 살기를 원한다면 너무 지나친 욕심일겁니다. ’나는 어떻게 즐겁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고민하다보면 자녀교육은 저절로 되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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