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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책감으로 양육 주도권을 뺏기지 마세요

» 한겨레 자료 사진“너 빨리 가서 씻지 못해? 지금이 몇 신데 그러고 있어?”

“왜 소리 질러?”

“네가 말을 안 들으니까 그렇지?”

“엄마 자꾸 그러면 나 밖에 나가서 아무 데나 막 다니다 낯선 아저씨한테 잡혀갈 거야.”

“누가 그런 말 하래?”

“그럼 엄마 소리도 안 지르고 좋잖아!”

엄마의 마음 속에 뭔가 단추가 눌러진 듯했다. 내가 이 어린아이한테 얼마나 나쁜 짓을 한 걸까? 하이 톤으로 올라갔던 엄마의 목소리가 갑자기 힘을 잃는다.

“엄마가 무슨 소리를 그렇게 질렀다고 그래?

“지난 번에도 그랬고 지금도 소리 질렀잖아.”

“그럼 엄마도 소리 지르지 않을 테니 너도 그런 말 하지 마? 약속할 수 있지?”

“몰라. 나 씻기 싫어.”

“그럼 오늘은 그냥 자고, 다시는 그런 말 하지 마.” 아이는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인다.

이 맹랑한 대화의 주인공은 다섯 살짜리 여자 아이이다. 아이를 다루는 게 힘든 엄마가 나에게 도움을 청했고, 아이와 어떤 식으로 대화하는지 알아본 결과 위와 같은 방식으로 이야기하다 훈육의 타이밍을 놓친다는 것이 주요 문제였다.

엄마는 아이를 낳기 전부터 직장에 다녔고, 엄마를 대신해 할머니가 아이를 돌보았다. 아이와 함께 지내는 시간이 부족한 엄마는 늘 아이에게 미안했고, 그 미안함을 아이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는 것으로 대신했다. 그렇지만 커갈수록 아이의 요구는 좋아하는 간식이나 장난감을 사달라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밖에 나가면 안아달라 엎어달라 하는 요구부터 시작해 이건 먹기 싫다, 씻는 것도 하기 싫다. 장난감은 엄마가 치워라 등 그 나이면 할만한 것들을 가르치려는 엄마의 지시에 거세게 저항하기 시작했다.

말이 늘어가면서 문제는 더 심각해졌다. 이제는 단순히 떼를 쓰거나 바닥에서 구르는 것뿐 아니라 말로 엄마에게 저항하기 시작했다. 엄마가 없으면 절대 살 수 없는 나이인데도 불구하고 집에서 나가겠다는 등 다른 아줌마와 살겠다는 등 협박이 아닌가 싶은 수위의 말까지도 서슴지 않고 하였다. 주변 사람들은 점차 아이에게 버릇이 없고 제멋대로라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아이가 엄마 머리 꼭대기에 앉았다, 엄마가 너무 아이에게 쩔쩔맨다는 게 아이와 엄마를 지켜본 주변 사람들의 평이었다.

그렇지만 엄마 마음에는 이 모든 게 꼭 내 탓인 것만 같았다. 내 손으로 직접 키우지 않은 게 아이에게 마음의 상처가 됐을 것만 같았다. 또 좋아하는 식단으로 밥을 차려주지 않거나 이가 상할까 봐 못 먹게 했던 간식이 아이로 하여금 엄마의 사랑을 믿지 못하게 한 것은 아닐까 싶었다. 애를 낳았으면 한없이 사랑해주고, 행복하게 해주어야 하는데 내가 지금 무얼 하는 걸까 하는 자책감에 엄마는 점점 의욕이 떨어지고 우울해지기 시작했다.

자책감은 아이를 키우는데 있어서 판단을 왜곡시키는 감정이다. 엄마로서 아이가 행복하기를 바라고 그러기 위해 최선을 다하려는 마음을 갖지 않은 엄마는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아이를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것이 아이가 매 순간 즐겁고 기분 좋아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몸이 아프면 싫지만 쓴 약도 먹어야 하고, 이가 썩지 않게 하려면 귀찮아도 아침 저녁으로 이를 닦아야 한다. 초콜릿과 사탕이 맛있어도 이것만 먹으면 제대로 성장할 수 없으며, 글을 배우고 계산 문제를 푸는 것이 괴로워도 하지 않으면 미래에 원하는 일을 하기 어렵다.

아이가 기분 좋지 않아 칭얼거릴 때 “내가 나쁜 엄마인가? 애가 저러는 게 다 내 탓일까?”하는 자책감은 단호한 훈육이 필요한 상황에서 엄마를 무력화시키고, 아이에게 주도권을 넘겨주게끔 한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아이는 엄마가 언제 약해지는지를 잘 알게 된다. 그래서 하기 싫은 것을 하라고 할 때, 원하는 것을 못하게 할 때 그 단추를 누르게 되는 것이다. 아이가 커갈수록 점차 다양한 방법으로 단추는 눌러진다. “엄마 때문이야!”라며 울기만 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를 상처 입히기도 하고, 문을 꼭 닫고 들어가 자기 자신을 고립시키기도 한다. 불행하다는 표정과 말로 엄마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은 다반사가 된다.

좋은 의도를 갖고 한 행동이 실수로 밝혀졌을 때 그 자리에 머물러 자책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실수로 인한 효과가 최소화될까를 고민해야 한다. 자책감이라는 감정에 굴복하면 실수의 효과가 더 가중되고 결국은 아이를 위해 가장 좋지 않은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 한겨레 자료 사진“너 빨리 가서 씻지 못해? 지금이 몇 신데 그러고 있어?”

“왜 소리 질러?”

“네가 말을 안 들으니까 그렇지?”

“엄마 자꾸 그러면 나 밖에 나가서 아무 데나 막 다니다 낯선 아저씨한테 잡혀갈 거야.”

“누가 그런 말 하래?”

“그럼 엄마 소리도 안 지르고 좋잖아!”

엄마의 마음 속에 뭔가 단추가 눌러진 듯했다. 내가 이 어린아이한테 얼마나 나쁜 짓을 한 걸까? 하이 톤으로 올라갔던 엄마의 목소리가 갑자기 힘을 잃는다.

“엄마가 무슨 소리를 그렇게 질렀다고 그래?

“지난 번에도 그랬고 지금도 소리 질렀잖아.”

“그럼 엄마도 소리 지르지 않을 테니 너도 그런 말 하지 마? 약속할 수 있지?”

“몰라. 나 씻기 싫어.”

“그럼 오늘은 그냥 자고, 다시는 그런 말 하지 마.” 아이는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인다.

이 맹랑한 대화의 주인공은 다섯 살짜리 여자 아이이다. 아이를 다루는 게 힘든 엄마가 나에게 도움을 청했고, 아이와 어떤 식으로 대화하는지 알아본 결과 위와 같은 방식으로 이야기하다 훈육의 타이밍을 놓친다는 것이 주요 문제였다.

엄마는 아이를 낳기 전부터 직장에 다녔고, 엄마를 대신해 할머니가 아이를 돌보았다. 아이와 함께 지내는 시간이 부족한 엄마는 늘 아이에게 미안했고, 그 미안함을 아이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는 것으로 대신했다. 그렇지만 커갈수록 아이의 요구는 좋아하는 간식이나 장난감을 사달라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밖에 나가면 안아달라 엎어달라 하는 요구부터 시작해 이건 먹기 싫다, 씻는 것도 하기 싫다. 장난감은 엄마가 치워라 등 그 나이면 할만한 것들을 가르치려는 엄마의 지시에 거세게 저항하기 시작했다.

말이 늘어가면서 문제는 더 심각해졌다. 이제는 단순히 떼를 쓰거나 바닥에서 구르는 것뿐 아니라 말로 엄마에게 저항하기 시작했다. 엄마가 없으면 절대 살 수 없는 나이인데도 불구하고 집에서 나가겠다는 등 다른 아줌마와 살겠다는 등 협박이 아닌가 싶은 수위의 말까지도 서슴지 않고 하였다. 주변 사람들은 점차 아이에게 버릇이 없고 제멋대로라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아이가 엄마 머리 꼭대기에 앉았다, 엄마가 너무 아이에게 쩔쩔맨다는 게 아이와 엄마를 지켜본 주변 사람들의 평이었다.

그렇지만 엄마 마음에는 이 모든 게 꼭 내 탓인 것만 같았다. 내 손으로 직접 키우지 않은 게 아이에게 마음의 상처가 됐을 것만 같았다. 또 좋아하는 식단으로 밥을 차려주지 않거나 이가 상할까 봐 못 먹게 했던 간식이 아이로 하여금 엄마의 사랑을 믿지 못하게 한 것은 아닐까 싶었다. 애를 낳았으면 한없이 사랑해주고, 행복하게 해주어야 하는데 내가 지금 무얼 하는 걸까 하는 자책감에 엄마는 점점 의욕이 떨어지고 우울해지기 시작했다.

자책감은 아이를 키우는데 있어서 판단을 왜곡시키는 감정이다. 엄마로서 아이가 행복하기를 바라고 그러기 위해 최선을 다하려는 마음을 갖지 않은 엄마는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아이를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것이 아이가 매 순간 즐겁고 기분 좋아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몸이 아프면 싫지만 쓴 약도 먹어야 하고, 이가 썩지 않게 하려면 귀찮아도 아침 저녁으로 이를 닦아야 한다. 초콜릿과 사탕이 맛있어도 이것만 먹으면 제대로 성장할 수 없으며, 글을 배우고 계산 문제를 푸는 것이 괴로워도 하지 않으면 미래에 원하는 일을 하기 어렵다.

아이가 기분 좋지 않아 칭얼거릴 때 “내가 나쁜 엄마인가? 애가 저러는 게 다 내 탓일까?”하는 자책감은 단호한 훈육이 필요한 상황에서 엄마를 무력화시키고, 아이에게 주도권을 넘겨주게끔 한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아이는 엄마가 언제 약해지는지를 잘 알게 된다. 그래서 하기 싫은 것을 하라고 할 때, 원하는 것을 못하게 할 때 그 단추를 누르게 되는 것이다. 아이가 커갈수록 점차 다양한 방법으로 단추는 눌러진다. “엄마 때문이야!”라며 울기만 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를 상처 입히기도 하고, 문을 꼭 닫고 들어가 자기 자신을 고립시키기도 한다. 불행하다는 표정과 말로 엄마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은 다반사가 된다.

좋은 의도를 갖고 한 행동이 실수로 밝혀졌을 때 그 자리에 머물러 자책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실수로 인한 효과가 최소화될까를 고민해야 한다. 자책감이라는 감정에 굴복하면 실수의 효과가 더 가중되고 결국은 아이를 위해 가장 좋지 않은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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