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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처구니없는 양육환경과 대책

어처구니란 맷돌의 손잡이 부분을 말한다. 일상에서 ‘어처구니가 없네‘란 바로 맷돌에서 손잡이가 없을 때의 기분을 말한다. 아무리 훌륭한 맷돌이 있어도 어처구니가 없다면 그야말로 무용지물인 셈이다. 국민소득이 이미 2만불을 넘었고, 경제규모와 수출입 규모가 세계 10대국이 되었고, 이 숫자만 보면 ‘살만한 세상’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심각한 저출산과 초고령사회로의 진입, 높은 이혼율과 만혼, 그리고 다문화 가정의 급격한 증가는 새로운 사회문제로 대두되면서 사회안전망에 대한 수요는 더욱 많아지고 있다. 특히, 출산과 양육에 대한 불안감으로 결혼을 연기하거나 아이가 없는 부모의 증가도 두드러진다. 이는 결국 인구의 감소-소비의 감소-생산의 감소가 발생하여 국가의 성장동력의 약화시킬 것이 명약관화하다. 국민소득의 향상이 행복한 양육에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라 , 오히려 풍요속에 빈곤으로 변했다.

1970년은 서울부터 부산까지 428키로미터의 경부고속도로가 완공된 해이다. 박대통령이 독일의 아우토반을 방문하여 영감을 얻어 시작했으며 불과 3년도 되기 전에 완공을 했다. 이는 건국 이래 최대의 토목공사였으며 국민소득이 불과 500불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시작을 했다. 그러나 이는 국토의 대동맥의 역할을 하여 한강의 기적을 만들었고, 지금의 경제발전에 초석이 되었다. 물론 야당의 반대가 극심했음에도 불구하고 선견지명과 통찰력으로 초지일관 밀어붙인 결과였다. 마치 쓸모없는 맷돌을 갈고 닦아서 어처구니를 튼튼하게 끼우니 훌륭한 맷돌이 된 사례이다.

» 권규리 단국대학교 시각디자인학과

먼저 우리의 양육의 생태계를 살펴보고 그 대안을 생각해보자. 우선 모든 부모들은 자식을 정말 사랑한다. 그리고 잘 키우려고 한다. 하지만 어처구니가 없는 양육환경의 사례는 사회 곳곳에서 발견된다.

1.정부에서는 아이를 많이 낳으라고 한다. 그러면서 마치, 많이 낳기만 하면 정부가 양육에 대한 책임을 질 듯한 태도를 보인다. 그러나 엄마들은 단호하다. 돈 몇 푼 쥐어준다고 아이를 낳지는 않는다. 당장 맞벌이를 하면 아이를 맡길 곳이 마땅치 않아 애간장을 태운다.

2.욕하는 아이들이 많다. 맞벌이가 많다보니 아이들이 부모와 대화를 할 시간이 없다. 이는 훈육할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TV, PC, 스마트폰에 노출되어 있어서 욕인 줄도 모르면서 욕을 배우고 있다. 어린이집, 유치원부터 동요부르기, 동시외우기 등을 익히다면 고운 언어, 아름다운 표현을 사용하는데 효과가 있을 듯 하다.

3.축구와 농구도 사교육을 시킨다. 이런 놀이는 바로 아빠들이 아이와 놀면서 좋은 아빠가 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그러나 황금만능주의에 익숙한 부모는 그 소중한 기회도 잃고, 또한 돈도 지불하므로 가처분 소득은 줄어든다.

4.한지붕 세가족이 늘어나고 있다. 부모는 맞벌이, 아이는 사교육에 휘둘리다보니 가족이 서로 볼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함께 밥을 먹기도 힘들다. 아빠는 돈을 버는 로봇, 엄마는 잔소리꾼, 그리고 아이는 공부하는 기계로 전락한다. 아이가 어린 시절, 가정에서 인성의 소중함을 가르칠 사람도 없고, 배울 아이도 없다. 이제 인성부재의 전성시대가 도래했다.

5.조기영어교육이 늘어나고 있다. 엄마는 아이가 말하는 ‘애플’ 한마디에 애간장이 녹는다. 그러나 어른을 보고도 인사를 못하는 아이들이 많다. 기본적인 예의범절을 모르고 있다. 아이의 인성이나 성품보다 영어가 우위에 있다는 생각은 과대망상이다. 예의범절부터 가르치는 부모가 되자.

6.초등학생의 20%가 ADHD(주의력결핍과 과잉행동장애)라고 한다. 맞벌이의 급증으로 아이와의 대화나 놀이의 부족이다. 부모가 서로 바쁘다보니 아이의 문제를 상의할 시간조차 부족하다. 그래서 결국 일관성양육의 부족이 심화되면서 저절로 발생한다.

7.초등학생의 컴퓨터중독이 30%가 넘는다. 이는 아이의 문제가 아니라 놀아주지 않는 아빠가 그 원인이다. 컴퓨터와 아빠는 늘 대체재의 관계이다. 아빠의 부재, 놀이의 부재가 아이를 초식남으로 키우고 있다.

8.아파트 놀이터에서 모래가 사라지고 있다. 젊은 엄마들이 고양이의 대소변을 이유로 모래를 치우라고 한다. 모래만 있으면 역할놀이, 두껍이 놀이 등 100가지를 할 수 있는데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 따뜻한 햇볕은 자동 소독장치인데 빈대를 잡으려고 집을 태우는 듯하여 아쉽다.

9.왕따를 당하는 아이가 늘고 있다. 이는 사회성의 부족이다. 아빠가 아이와 잘 놀아주면 사회성은 저절로 형성되기에 예방이 될 수 있다.

10.스마트폰 중독이 신종 사회현상이다. 겨우 돌이 된 아이도 터치를 한다. 컴퓨터 중독보다 더욱 무서운 것이 바로 스마트폰 중독이다. 두 눈을 부릅뜨고 경계해야한다.

11.식당에서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방관하기도 한다. 때론 음식을 들고 다니는 종업원과 부딪히는 사고도 있다. 하지만 엄마는 아이의 기를 죽인다고 그냥 방치한다. 훈육의 기본은 된다와 안된다를 가르치는 것이며 공공질서란 타인에게 피해를 주어서는 안되는 것이며, 이를 먼저 가르쳐야 한다.

12.아빠가 아이와 놀아주지 않는다. 그래서 아내는 남편에게 놀아주라고 강하게 어필한다. 그러나 거실에서 놀아보지 않고 성장한 아빠는 곤혼스럽다. 또한 놀아주지 않았던 아버지를 생각하면 분통이 터진다. 지금은 골목길이 사라졌다. 아빠들은 카오스에 빠져있으며 진퇴양난, 백척간두의 입장이다.

13.공공행정은 늘 수요자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도서관을 가려고 해도 대형으로 짓지만 접근성이 매우 떨어진다. 단지내 작은 도서관이 있다면 아빠가 아이와 쉽게 할 수 있는 놀이공간도 되고, 책을 저절로 좋아하게 될 것이다.

14.아직도 거실에는 TV가 중심에 있다. 그리고 집에 오면 누구나 아무런 생각없이 리모컨을 들고 켠다. 이건 80년대식 거실이다. 이젠 거실의 중심에서 tv를 없애고 서재를 만들자. 그러면 저절로 소통의 공간이 된다.

위와 같은 양육 환경은 마치 갑자기 닥쳐온 것 같지만 사실은 과거부터 아주 천천히 진행되어왔으며 매우 복합적으로 다가왔다. 그 원인을 살펴보자.

1. 천편일률적인 아파트단지

80년부터 시작된 아파트 단지는 분당에서 시작해서 일산에서 그 절정기를 맞는다. 그 결과 아파트에 주거하는 사람이 이제는 일반주택의 주거인구보다 많게 되었다. 하지만 아파트의 특징을 보면 옛날이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 우선 광고를 보면 투자가치, 환경, 학군, 교통이다. 그러나 그 실상을 보면 아이들이 놀 곳이 없다는 점이다. 자전거 도로가 있다고 광고를 해도 막상 탈곳이 없으며 놀이터가 있다고 해도 초등학교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공을 찰 수 있는 곳이 없다. 또한 여자 아이들이 고무줄을 할 수 있는 곳이 없다. 이 말은 아빠가 아이와 단지네에서 놀 것이 없다는 말이다. 더구나 놀이터에 모래가 없는 것은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 없다. 그 결과 아이들은 놀 곳을 박탈당하고, 아빠들은 아이와 놀아주고 싶어도 밖에서 놀 곳이 없다. 이미 아빠의 DNA속에는 야외에서의 놀이만 있을 뿐이지 거실에서의 놀이란 거의 없다. 이제 아빠 개개인의 노력으로 좋은 아빠가 되기는 점점 난망하며 이는 점점 놀아주지 않는 아빠의 양산을 재촉한다.

2. 국민소득이 높으면 저절로 행복하다는 환상

이미 국민소득이 2만불이 넘었지만 청년실업과 고용문제, 복지문제는 점점 다양한 형태로 커지고 있으며 소득간, 계층간의 불평등은 점점 심해지고 부익부빈익빈 현상은 가속되고 있다. 특히 재정지출에서 가장 높은 증가율을 보인 것이 복지다. 그런데 2만불 소득에서 5만불의 복지를 요구하고 있으니 재정악화는 점점 심화될 수 있다. 지금의 복지정책은 깨진 독에 물을 붇기다. 이제 복지에서 경부고속도로와 같은 역할이 무엇인지 고민해야한다. 그것은 바로 투자복지다. 그래야 장기적으로 후손들에게 짐이 되지 않는다.

3. 가족문화의 변화다

아직도 기자들이 전화로 문의가 오면 점점 좋은 아빠가 늘어나고 있다는 전제하에 질문을 한다. 그러나 좋은 아빠가 점점 줄어들고 있어도 믿고 싶어하지 않는 듯 한다. 그러면서 미시적인 관점에서 좋은 아빠가 늘고 있다고 기사를 쓰고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 정반대이다. 전혀 그렇지 않다. 지금은 최악의 상황이다. 우리는 얼핏, 가족문화의 변화가 매우 느린 것처럼 여긴다. 그러나 그 속도는 IT가 변화는 속도와 같다. 정보전달의 시스템을 보더라도 전화에서 삐삐로 가다가 이제는 SNS, 카카오톡, 페이스북 등으로 급변하고 있다. 가족계획 슬로건도 ‘둘만 낳아 잘살자’에서 90년대에는 하나만 낳자고 하다가 어느틈엔가 아이를 많이 낳자고 정부가 발 벗고 나서고 있다. 그렇다. 가족문화와 소득은 정비례의 관계로 여겨왔지만 소득과 상관없이 양육환경은 더욱 열악해지고 있다.

그럼 행복한 양육을 위한 최적의 사회안전망은 무엇인가? 이것을 달성하기 위하여 외국의 사례를 보고 벤치마킹을 하여 정책입안을 한다. 그런데 좋아지는 것이 아니라 더욱 꼬이고 역행하고 있는 듯 하다. 여기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우리에게는 이미 외국의 사례보다 더욱 훌륭한 전통적인 양육시스템이 있다는 것이다.

바로 ‘놀아주지 않아도 좋은 아빠가 되는 시스템’이다.

30년 전만해도 아빠란 아이와 놀아주지 않고도 좋은 아빠가 저절로 될 수 있었으며, 또한 목에 힘주고 가장의 역할을 했으며 대우를 받았다. 그럼에도 그 권위에 누구도 반론을 달거나 부정하지 않았다.

또한 놀아주지 않아도 ‘아이들끼리 저절로 놀았던 시스템’이었다. 그 당시에는 아이들이란 저절로 컸던 시대이기도 하다. 그 중심에는 골목길과 텃밭, 그리고 풍부한 자연환경이 있었다. 이 얼마나 획기적이고 경제적인 시스템인가? 지금처럼 정부기관이나 지자체와 각 사회단체에서 많은 도움을 주지 않아도 저절로, 쉽게 아이를 키울 수가 있었다. 바로 저출산과 양육의 어려움을 해결하는 열쇠는 깨진 독에 물을 붙는 것이 아니라 튼튼한 독을 만들면 적은 물을 부어도 쉽게 물이 찰 수 있음이다. 이제 신도시를 건설하거나 재개발을 하면 경제적인 계산기는 그만 두드리자. 우리는 그동안 경제성의 함정에 빠져있음을 먼저 각성해야한다. 그리고 먼저 여기저기 부대공간부터 만들자. 바로 아이들이 뛰어놀 공간을 만들어주자. 유아들이 공을 찰 수 있는 공간부터 만들자. 그리고 도시형 주말농장인 1평짜리 텃밭부터 여기저기 만들자. 그러면 그 자체로 아빠에겐 아이와 쉽게 놀아 줄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아이들이란 그저 넓은 공간만 있으면 저절로 놀이를 하고, 놀이를 만들며 논다. 우리에겐 이미 선진국에서 없는 우리만의 좋은 전통적인 양육법이 있음을 인식하고 자각하고 준비해보자. 복지국가란 법을 만들고, 또 다시 여러 가지 법을 만든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생각의 중심에 아이들이 있어야 한다. 

아이들은 미래의 꿈이라고 하면서 왜 양육이 이처럼도 어려운가?

경제성만을 강조한 도시건설과 주택보급이 양육환경을 더욱 미치게 만들고 있다.

이제, 경제성의 탐욕을 중단하고 아이들의 마음부터 소구해보자.

아이들이란 어린 시절, 마음껏 뛰어놀아야 한다.

놀이속에는 바로 감성지수가 풍부하고, 다양한 인성을 형성시킨다.

바로 그 속에는 인간의 휴머니즘이 들어있다.

살만한 세상의 중심에는 바로 가족이 있다.

아이를 키울만한 세상이란, 살만한 세상이기도 한다.

가족이 건강해야 나라가 강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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