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위치:»놀이·교육»콘텐츠

[서천석의 내가 사랑한 그림책] 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

쪼그만 녀석의 자아선언
‘나도 내 똥을 쌀 수 있다’

» 〈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 베르너 홀츠바르트 글, 볼프 에를브루흐 그림/사계절

아이들은 왜 ‘똥’ 이야기만 해도 자지러질까? 아이들의 웃음을 빨리 자아내야 한다면 필살기가 있다. 똥과 방귀와 같은 지저분한 이야기이다. 어른들은 손사래를 친다. 지저분한 똥 이야기를 왜 자꾸 하고 또 하는 거야. 웃음을 참지 못하는 아이를 보면 어처구니없기까지 하다. 어른들 눈으로 아이들 세계를 보면 이해 불가능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그중 으뜸은 똥에 대한 열광이 아닐까 싶다.
누구나 똥을 눈다. 먹으니 누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도 어른들은 숨긴다. 드러내면 창피한 일이라 생각한다. 이처럼 겉 다르고 속 다른 것이 어른들 세계다. 아이들은 이 감춤을 예민하게 눈치챈다. 똥 이야기를 하면 눈을 찌푸리는 어른들. 대변을 보고는 얼른 물을 내리고, 밑을 닦은 휴지는 재빨리 접어서 버린다. 내 몸에서 나온 나의 일부인데 왜 저렇게 호들갑이지? 아이는 우선 이상하다. 그리고 재미있다. 똥 이야기를 하면 질겁하는 어른들 모습이 재미있다.

이제 아이들에게 똥은 어른들이 만든 질서를 흐트러뜨릴 좋은 재료가 된다. 무서워서 피하는 것이 아니고 더러워서 피한다고 하던가? 아무래도 좋다. 똥 이야기를 던지면 어른들은 뒤로 물러난다. 옳다구나. 똥 이야기를 하면 한발 물러나는구나. 아이들은 어른들이 물러난 공간에서 잠시 해방감을 느낀다. 지저분하기에 자유로워진다.

 베르너 홀츠바르트가 글을 쓰고 볼프 에를부르흐가 그림을 그린 는 똥 이야기 분야의 베스트셀러이다. 내용은 간단하다. 오랜만에 두더지가 땅 위로 고개를 내밀었다. 그런데 그의 머리에 누군가 똥을 싸고 사라진다. 두더지는 화가 나서 똥의 주인을 찾아 나선다. 비둘기와 말, 토끼와 염소, 소와 돼지를 찾아갔지만 이들은 자기 똥은 다르다는 것을 보여준다. 마침내 정육점 집 뚱뚱보 개 한스의 짓임을 안 두더지. 한스의 머리에 작고 까만 똥을 한 점 누고 땅속으로 사라진다. 통쾌한 복수이다.
앞이 안 보이는 두더지를 아이들이 좋아할 리란 없다. 아이들은 더 강하고, 더 멋진 동물이고 싶다. 그러나 두더지야말로 아이들 모습이다. 아이들은 눈이 있지만 다 보지 못한다. 작은 눈속임에도 쉽게 넘어가고, 농담 삼아 한 말에도 불끈한다. 어른들 세계에 빼꼼 고개를 내밀면 ‘쪼그만 녀석이’ 하며 무시당한다. 그래도 대놓고 당하는 것은 참을 수 없다. 아무리 아이라지만 내 생각이 있고 무시 받으면 되갚고 싶다. 내 머리에 누가 똥을 쌌다니! 참을 수 없다.

두더지에게 똥은 자기를 더럽히는 존재이면서 동시에 자기가 누군지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이다. 남의 똥은 남의 똥이다. 부모에게는 소중할지 몰라도 나에게는 그렇지 않다. 남의 똥을 머리에 이고 다닐 수는 없다. 나도 보잘것없지만 내 똥을 쌀 수 있다. 무언가를 만들고 보여줄 수 있다. 이렇게 똥은 자기를, 자기가 만든 것을 상징한다. 내 머리에 똥을 싸고 달아난 사람의 머리에 나도 내 똥을 남기고 싶다. 그래서 나도 똑같은 사람임을 보여주고 싶다. 이 짧은 책은 이렇듯 아이들의 자아 선언이다. 모두가 다 자기 것이 있듯 나는 내 것이 있고, 내게 함부로 하면 나도 내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 말한다. 뭐 거창한 복수는 아니다. 복수를 가장한 권력 행사도 아니다. 그저 난 내 것이 있음을 보여주는 정도다.

이 그림책은 잘 읽히는 유아용 그림책의 전형을 보여준다. 친숙한 동물이 등장한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핵심 아이템을 갖고 있다. 구조는 반복하면서 변주하는 안정적인 틀이어서 아이들이 편안해한다. 그러면서도 복수와 자기실현이란 무거운 주제를 다룬다. 물론 재미있고 유쾌하게. 고작 스무 쪽의 책에 이런 내용이 잘 어우러져 있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인지 수많은 똥을 소재로 하는 그림책 중에 여기에 버금가는 그림책을 찾기란 쉽지 않다. 서천석 소아정신과 의사

베르너 홀츠바르트 글, 볼프 에를브루흐 그림
사계절·7500원

Next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