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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놀이는 생태체험의 기회다

과연 어느 계절에 놀이가 가장 많을까? 라고 생각하면 여름이 많다. 반대의 경우는 봄이다. 정말 별로 없는 듯 보인다. 사실 3월의 날씨란 춥고, 바람불고, 때론 눈도 내리기에 외부활동을 하기에는 뭔가 부적합한 환경이다. 그러나 2월부터 이미 겨울을 이겨낸 풀들이 양지에서 얼굴을 내밀고, 회색빛의 숲은 연두색으로 서서히 탈바꿈을 하며 우리의 옷도 얇아지기 시작한다.

» 권규리 단국대학교 시각디자인학과

아이들과의 봄놀이는 봄 여행으로 시작했다. 10여 년 간 가족답사모임 아빠와추억만들기 단장을 하면서 주로 체험여행을 했기에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동참한다. 그중에 나무심기가 있다. 민사고에 가서 나무를 심는 행사다. 이미 사전에 그곳과 조율을 해서 나무를 심는 곳을 지정받았다. 아이들이야 민사고의 실체를 잘 모르지만, 그 곳의 명성을 익히 들어본 아빠들이기에 오히려 더욱 좋아한다. 초등학교 자녀들과 아빠들이 버스 1대로 떠난다. 나무는 황금회양목을 아이의 숫자만큼 준비를 한다. 도착하면 준비한 호미로 땅을 파고, 나무를 심는다. 물도 충분히 주고, 주변에 거름도 뿌려준다. 그리고 민사고에서 준비한 OT행사에 함께 참여하며 마무리를 한다. 그 곳을 떠나면서 교정에 빈 노벨상 동상이 멀어지면서 아빠들은 아이에게 그 의미를 설명해준다. 그러면서 아빠들은 너나없이 1년에 한 번은 그곳에 방문을 한자고 아이와 약속을 한다.

4월 식목일이 되면 해마다 1박 2일 여행을 떠났다. 주로 동해의 정동진, 참소리박물관과 잠수함을 체험하고 대관령 목장에 와서 양에게 먹이를 주고, 또한 양털깎기도 한다. 얼핏, 양털깎기란 호주나 뉴질랜드를 가야 하는 것으로 알지만 이곳에서 아이들이 직접 양털깎기를 몇 년간 행사를 진행했다. 사전에 그 곳에 찿아갔을 때, 냉냉했던 주인은 삼고초려를 하고서야 양털깎기를 허락했다. 어느 해는 그곳에 눈이 엄청 내렸으며 쌓였다. 서울이야 눈이 금방 녹지만 900미터 고지인 그곳에는 눈이 하나도 녹지 않았다. 특히 음지는 눈의 상태가 더욱 좋았다. 부랴부랴 비료푸대를 구해서 속에 짚을 넣은 후에 비료푸대 눈썰매를 땀이 흥건하도록 탔다. 그곳을 떠나 용인의 조랑말목장으로 간다. 이 때가 되면 논과 산 사이에 샘물이 있는데 그곳에 개구리알과 도룡뇽알이 가득하다. 개구리알은 하나의 덩어리 형태이지만 도룡룡은 일자 형태를 띠고 있다. 양지바른 곳에서는 이미 부화한 올챙이들이 꼬리를 흔들면 다니고 있다. 아이들이란 그저 양손으로 몇 마리를 잡고서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3학년이었던 아들은 어느틈엔가 도마뱀을 잡아 친구들을 놀래주는 실력을 발휘한다. 이곳에선 버들피리를 만들어준다. 그저 흔한 버드나무를 잘라서 칼로 피리구멍을 만들면 완성이다. 아이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삑삑 거리며 돌아다닌다. 누구도 시끄럽다고 저지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부는 맛에 취하지만 어린 시절, 한 번도 만들어 본적이 없는 아빠들은 배우고자 주위에서 얼씬 거린다. 또한 소, 말, 거위, 돼지,염소, 오리 등에게 먹이도 준다.

5월의 봄은 양평에서의 모내기다. 그동안 10번 이상 모내기를 했다. 말이 모내기지 아이들이 들어가면 지옥이 따로 없다. 모내기를 할 때의 깊이는 어른들의 무릅까지 찬다. 이 말의 의미란 아이에게 모내기는커녕 걷기도 힘들다는 말이다. 좀 잘난 채 하는 고학년들은 아빠와 함께 모를 심다가 발이 빠지지 않아서 넘어지기 일쑤다. 그리고 때론 모내기를 하다보면 아이들이 비명을 지른다. 그러면 아빠가 황급히 아이에게로 간다. 그 이유는 바로 거머리가 아이의 발에 붙어서 피를 빨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아빠는 화들짝 놀라면서 황급히 떼어낸다. 피가 빨린 아이는 대부분 운다. 거머리가 무섭다기 보다 자신의 소중한 피를 먹었다는 피해의식일 것이다. 이곳은 한강상수원보호지역이라 저농약을 쓴다. 농사를 짓는 방법도 우렁이 농법이나 오리농법을 사용한다. 우렁이나 오리를 논에 기르면 스스로 잡초를 먹기에 따로 잡풀을 뽑는 일거리가 현저히 줄어든다. 이 날의 하이라이트는 미꾸라지 잡기와 구워먹기다. 주로 농수로에 살고 있는데 이미 그곳을 사전에 파악했다. 

모두 그곳에 도착하면 함성소리와 함께 들어간다. 그런데 미꾸라지의 의미처럼 잡아도 잡은 것이 아니다. 아이가 어렵사리 한 마리를 잡고 환호를 하는 순간 손에서 쑥쑥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이 때 느끼는 아이들의 허탈감, 그리고 다시 도전하면서 한 마리씩 잡는다. 물론 고학년이야 잘 잡는 편이지만 저학년들이란 아빠가 잡아서 손에 쥐어줘도 놓치기가 일쑤다. 때문에 잡은 고기의 양은 아이들의 학년에 따라서 양극화가 심화되고, 저학년 아이들은 울쌍이다. 그러나 이를 눈치 챈 고학년들이 몇 마리를 쥐어주니 하늘을 날아갈 기분이다. 사실, 누가 많이 잡는가의 실적은 별로 의미가 없다. 잡은 것을 모아서 구워먹기를 하기 때문이다. 준비한 참나무 화롯불에 미꾸라지를 오뎅꼬치에 끼워서 빙 둘어 앉는다. 그리고 중간중간 굵은 소금을 뿌린다. 그러면 회색의 미꾸라지가 황금색을 띠며 익어가고 고소한 냄새를 풍긴다. 그리곤 아이들은 먹는다. 여기에는 그것을 왜 먹어야 하는지, 왜 살아있는 고기를 죽여야 하는지 고민하지 않는다. 미꾸라지는 그저 논가에 사는 물고기의 종류로서 구워먹는 것은 당연하다는 눈치다. 그러나 여자 아이들은 먹지 않으려고 한다. 미꾸라지가 이뻐서 먹지 못한다고 저항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익어가는 숫자가 줄어들면서 대부분 먹게 된다. 상식적으로 활어를 참숯에 구워먹는데 어찌 맛이 없겠는가?

이제 입춘이 지났고 봄이 성큼 다가왔다.

봄놀이란 3월이 되어서 꼭 어디를 가야만 놀이는 아니다. 집에서도 봄놀이를 가볍게 준비할 수 있다.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감자나 고구마나 양파기르기다. 그저 유리병이나 혹은 펫트병을 잘라서 그 위에 얹어 놓으면 된다. 그러면 저절로 싹이 나고, 뿌리가 난다. 구근 기르기에 관심이 있다면 주위의 꽃집에 가서 튜울립이나 히야신스, 글라디올러스 등을 사오면 된다. 구근을 기르기 시작하면 아이들의 입장에선 좀 갑갑하다. 도데체 언제 입이 나고 꽃이 피는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런 경우, 성장일기를 쓰면 매우 도움이 되는데 그저 매일 한 번씩 적게 한다. 그러면 2~3주가 지나면 아이의 탄성이 나오기 시작한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구근에서 입이 나고, 뿌리가 자라기 때문이다. 바로 아이들은 드디어 자연의 변화와 질서의식을 알기 시작한다. 또한 한 식물이 자라기 위해서는 적당한 온도와 물과 햇볕의 필요함을 알게 되고 또한 광합성의 작용에 대하여 알게 된다. 그러면서 자연이란 내가 주장하거나 또는 급한 마음이 아니라 기다림속에서 천천히 성장함을 알게 된다. 이렇게 아이가 식물에 관심을 갖게 되면 식물도감을 통하여 그 호기심을 확대재생산을 해보자. 굳이 비싼 돈을 들여서 도감을 살 필요는 없다. 우선 가까운 서점에 가서 잠깐 구경할 수도 있고,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려올 수도 있다. 그러면 이미 식물에 관심이 많은 아이는 책을 열심히 보라고 하지 않아도 이미 충분한 동기부여가 되었으므로 스스로 책을 보며 질문도 많아진다. 그러면 저절로 자연과 생태에 대하여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며 아마존이나 열대우림을 왜 보존해야 하는지 또는 지구의 소중함까지 알기도 한다.

우리는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다’라고 합리주의적 인간관을 가지면, 인간이야말로 지구에서 가장 우수한 주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인간에게는 이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 이성이 오히려 전쟁을 일으키고, 하나뿐인 지구를 오염시키고 또한 온난화로 환경재앙을 일으키고 있다. 하지만 인류의 역사를 보면 지구의 역사 40억년에서 고작 5만년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며, 식물이야말로 수 억년을 살아온 지구의 주인이 명백하다. 그 진화나 종족의 번식 방식도 식물이 더욱 위대하다. 사람은 신체는 한 부분이 손상이 가면 생명에 치명적이다. 그러나 식물은 가지를 잘랐다고 죽지 않으며 심지어 밑동을 잘라도 다시 그 주위에서 새싹이 돋는 위대한 생명력을 가졌다. 또는 수 백년이 지난 씨앗을 심어서 다시 싹이 나기도 한다. 그 수명도 인간은 100세가 한계이지만 지난 달 미국에서 1,500년 된 나무가 화재로 불탄 적이 있을 정도로 비교가 되지 않는다.

아이들이 거실에서 그저 하나의 고구마를 기르기 시작하는 것은 작은 놀이에 불과하지만 카오스이론을 대입하면 다르다. 그것을 통하여 자연의 이치를 알고, 생명의 외경을 알게 되는 거대한 작은 출발이란 사실이다. 그 시작이 바로 아빠의 관심이며, 구입하여 기르기 시작하는 것이 아빠의 실천이다. 물론 학교에서도 생태체험도 하고, 고구마 심기활동도 한다. 놀라운 사실은 초등학생들이 단체로 고구마 심기를 하는데 주인이 고구마순을 넣을 구멍을 뚫어놓고, 아이는 고구마 순을 그 속에 넣는 것으로 끝나는 경우도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을 고구마 심기라고 한다. 그건 아니며 고구마 순 넣기다. 이렇듯, 우리의 소중한 아이를 마냥 남에게 맡길 수는 없는 일이며 아빠의 작은 참여가 아이를 변하게 한다.

 이 글을 읽으면 바로 작은 구근이나 고구마나 양파를 길러보자. 그러면 아이에게 자연에 대한 동기부여와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으며 제2의 시이튼과 파브르로 키울 수도 있다.

세상의 모든 변화는 이렇듯 작은 시작에서 비롯된다.

» 권규리 단국대학교 시각디자인학과

아이들과의 봄놀이는 봄 여행으로 시작했다. 10여 년 간 가족답사모임 아빠와추억만들기 단장을 하면서 주로 체험여행을 했기에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동참한다. 그중에 나무심기가 있다. 민사고에 가서 나무를 심는 행사다. 이미 사전에 그곳과 조율을 해서 나무를 심는 곳을 지정받았다. 아이들이야 민사고의 실체를 잘 모르지만, 그 곳의 명성을 익히 들어본 아빠들이기에 오히려 더욱 좋아한다. 초등학교 자녀들과 아빠들이 버스 1대로 떠난다. 나무는 황금회양목을 아이의 숫자만큼 준비를 한다. 도착하면 준비한 호미로 땅을 파고, 나무를 심는다. 물도 충분히 주고, 주변에 거름도 뿌려준다. 그리고 민사고에서 준비한 OT행사에 함께 참여하며 마무리를 한다. 그 곳을 떠나면서 교정에 빈 노벨상 동상이 멀어지면서 아빠들은 아이에게 그 의미를 설명해준다. 그러면서 아빠들은 너나없이 1년에 한 번은 그곳에 방문을 한자고 아이와 약속을 한다.

4월 식목일이 되면 해마다 1박 2일 여행을 떠났다. 주로 동해의 정동진, 참소리박물관과 잠수함을 체험하고 대관령 목장에 와서 양에게 먹이를 주고, 또한 양털깎기도 한다. 얼핏, 양털깎기란 호주나 뉴질랜드를 가야 하는 것으로 알지만 이곳에서 아이들이 직접 양털깎기를 몇 년간 행사를 진행했다. 사전에 그 곳에 찿아갔을 때, 냉냉했던 주인은 삼고초려를 하고서야 양털깎기를 허락했다. 어느 해는 그곳에 눈이 엄청 내렸으며 쌓였다. 서울이야 눈이 금방 녹지만 900미터 고지인 그곳에는 눈이 하나도 녹지 않았다. 특히 음지는 눈의 상태가 더욱 좋았다. 부랴부랴 비료푸대를 구해서 속에 짚을 넣은 후에 비료푸대 눈썰매를 땀이 흥건하도록 탔다. 그곳을 떠나 용인의 조랑말목장으로 간다. 이 때가 되면 논과 산 사이에 샘물이 있는데 그곳에 개구리알과 도룡뇽알이 가득하다. 개구리알은 하나의 덩어리 형태이지만 도룡룡은 일자 형태를 띠고 있다. 양지바른 곳에서는 이미 부화한 올챙이들이 꼬리를 흔들면 다니고 있다. 아이들이란 그저 양손으로 몇 마리를 잡고서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3학년이었던 아들은 어느틈엔가 도마뱀을 잡아 친구들을 놀래주는 실력을 발휘한다. 이곳에선 버들피리를 만들어준다. 그저 흔한 버드나무를 잘라서 칼로 피리구멍을 만들면 완성이다. 아이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삑삑 거리며 돌아다닌다. 누구도 시끄럽다고 저지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부는 맛에 취하지만 어린 시절, 한 번도 만들어 본적이 없는 아빠들은 배우고자 주위에서 얼씬 거린다. 또한 소, 말, 거위, 돼지,염소, 오리 등에게 먹이도 준다.

5월의 봄은 양평에서의 모내기다. 그동안 10번 이상 모내기를 했다. 말이 모내기지 아이들이 들어가면 지옥이 따로 없다. 모내기를 할 때의 깊이는 어른들의 무릅까지 찬다. 이 말의 의미란 아이에게 모내기는커녕 걷기도 힘들다는 말이다. 좀 잘난 채 하는 고학년들은 아빠와 함께 모를 심다가 발이 빠지지 않아서 넘어지기 일쑤다. 그리고 때론 모내기를 하다보면 아이들이 비명을 지른다. 그러면 아빠가 황급히 아이에게로 간다. 그 이유는 바로 거머리가 아이의 발에 붙어서 피를 빨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아빠는 화들짝 놀라면서 황급히 떼어낸다. 피가 빨린 아이는 대부분 운다. 거머리가 무섭다기 보다 자신의 소중한 피를 먹었다는 피해의식일 것이다. 이곳은 한강상수원보호지역이라 저농약을 쓴다. 농사를 짓는 방법도 우렁이 농법이나 오리농법을 사용한다. 우렁이나 오리를 논에 기르면 스스로 잡초를 먹기에 따로 잡풀을 뽑는 일거리가 현저히 줄어든다. 이 날의 하이라이트는 미꾸라지 잡기와 구워먹기다. 주로 농수로에 살고 있는데 이미 그곳을 사전에 파악했다. 

모두 그곳에 도착하면 함성소리와 함께 들어간다. 그런데 미꾸라지의 의미처럼 잡아도 잡은 것이 아니다. 아이가 어렵사리 한 마리를 잡고 환호를 하는 순간 손에서 쑥쑥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이 때 느끼는 아이들의 허탈감, 그리고 다시 도전하면서 한 마리씩 잡는다. 물론 고학년이야 잘 잡는 편이지만 저학년들이란 아빠가 잡아서 손에 쥐어줘도 놓치기가 일쑤다. 때문에 잡은 고기의 양은 아이들의 학년에 따라서 양극화가 심화되고, 저학년 아이들은 울쌍이다. 그러나 이를 눈치 챈 고학년들이 몇 마리를 쥐어주니 하늘을 날아갈 기분이다. 사실, 누가 많이 잡는가의 실적은 별로 의미가 없다. 잡은 것을 모아서 구워먹기를 하기 때문이다. 준비한 참나무 화롯불에 미꾸라지를 오뎅꼬치에 끼워서 빙 둘어 앉는다. 그리고 중간중간 굵은 소금을 뿌린다. 그러면 회색의 미꾸라지가 황금색을 띠며 익어가고 고소한 냄새를 풍긴다. 그리곤 아이들은 먹는다. 여기에는 그것을 왜 먹어야 하는지, 왜 살아있는 고기를 죽여야 하는지 고민하지 않는다. 미꾸라지는 그저 논가에 사는 물고기의 종류로서 구워먹는 것은 당연하다는 눈치다. 그러나 여자 아이들은 먹지 않으려고 한다. 미꾸라지가 이뻐서 먹지 못한다고 저항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익어가는 숫자가 줄어들면서 대부분 먹게 된다. 상식적으로 활어를 참숯에 구워먹는데 어찌 맛이 없겠는가?

이제 입춘이 지났고 봄이 성큼 다가왔다.

봄놀이란 3월이 되어서 꼭 어디를 가야만 놀이는 아니다. 집에서도 봄놀이를 가볍게 준비할 수 있다.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감자나 고구마나 양파기르기다. 그저 유리병이나 혹은 펫트병을 잘라서 그 위에 얹어 놓으면 된다. 그러면 저절로 싹이 나고, 뿌리가 난다. 구근 기르기에 관심이 있다면 주위의 꽃집에 가서 튜울립이나 히야신스, 글라디올러스 등을 사오면 된다. 구근을 기르기 시작하면 아이들의 입장에선 좀 갑갑하다. 도데체 언제 입이 나고 꽃이 피는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런 경우, 성장일기를 쓰면 매우 도움이 되는데 그저 매일 한 번씩 적게 한다. 그러면 2~3주가 지나면 아이의 탄성이 나오기 시작한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구근에서 입이 나고, 뿌리가 자라기 때문이다. 바로 아이들은 드디어 자연의 변화와 질서의식을 알기 시작한다. 또한 한 식물이 자라기 위해서는 적당한 온도와 물과 햇볕의 필요함을 알게 되고 또한 광합성의 작용에 대하여 알게 된다. 그러면서 자연이란 내가 주장하거나 또는 급한 마음이 아니라 기다림속에서 천천히 성장함을 알게 된다. 이렇게 아이가 식물에 관심을 갖게 되면 식물도감을 통하여 그 호기심을 확대재생산을 해보자. 굳이 비싼 돈을 들여서 도감을 살 필요는 없다. 우선 가까운 서점에 가서 잠깐 구경할 수도 있고,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려올 수도 있다. 그러면 이미 식물에 관심이 많은 아이는 책을 열심히 보라고 하지 않아도 이미 충분한 동기부여가 되었으므로 스스로 책을 보며 질문도 많아진다. 그러면 저절로 자연과 생태에 대하여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며 아마존이나 열대우림을 왜 보존해야 하는지 또는 지구의 소중함까지 알기도 한다.

우리는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다’라고 합리주의적 인간관을 가지면, 인간이야말로 지구에서 가장 우수한 주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인간에게는 이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 이성이 오히려 전쟁을 일으키고, 하나뿐인 지구를 오염시키고 또한 온난화로 환경재앙을 일으키고 있다. 하지만 인류의 역사를 보면 지구의 역사 40억년에서 고작 5만년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며, 식물이야말로 수 억년을 살아온 지구의 주인이 명백하다. 그 진화나 종족의 번식 방식도 식물이 더욱 위대하다. 사람은 신체는 한 부분이 손상이 가면 생명에 치명적이다. 그러나 식물은 가지를 잘랐다고 죽지 않으며 심지어 밑동을 잘라도 다시 그 주위에서 새싹이 돋는 위대한 생명력을 가졌다. 또는 수 백년이 지난 씨앗을 심어서 다시 싹이 나기도 한다. 그 수명도 인간은 100세가 한계이지만 지난 달 미국에서 1,500년 된 나무가 화재로 불탄 적이 있을 정도로 비교가 되지 않는다.

아이들이 거실에서 그저 하나의 고구마를 기르기 시작하는 것은 작은 놀이에 불과하지만 카오스이론을 대입하면 다르다. 그것을 통하여 자연의 이치를 알고, 생명의 외경을 알게 되는 거대한 작은 출발이란 사실이다. 그 시작이 바로 아빠의 관심이며, 구입하여 기르기 시작하는 것이 아빠의 실천이다. 물론 학교에서도 생태체험도 하고, 고구마 심기활동도 한다. 놀라운 사실은 초등학생들이 단체로 고구마 심기를 하는데 주인이 고구마순을 넣을 구멍을 뚫어놓고, 아이는 고구마 순을 그 속에 넣는 것으로 끝나는 경우도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을 고구마 심기라고 한다. 그건 아니며 고구마 순 넣기다. 이렇듯, 우리의 소중한 아이를 마냥 남에게 맡길 수는 없는 일이며 아빠의 작은 참여가 아이를 변하게 한다.

 이 글을 읽으면 바로 작은 구근이나 고구마나 양파를 길러보자. 그러면 아이에게 자연에 대한 동기부여와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으며 제2의 시이튼과 파브르로 키울 수도 있다.

세상의 모든 변화는 이렇듯 작은 시작에서 비롯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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