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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초 남편’을 고발합니다.

어느 날, 카페에 한 어머니로부터 편지가 도착했다.

바로 남편의 변화에 대한 칭찬편지였다.

저는 서부현의 아내 조숙희입니다. 컴퓨터 강사지요. 남편은 아들이 태어나고, 그냥 뽀뽀만 잘하는 뽀뽀귀신이었지요. 똥 기저귀 한번 제대로 갈지 않았고, 놀아주지도 않았기에 늘 엄마만 찾았습니다. 저 또한 퇴근 후에 제2의 직장이 되버렸지요. 남편은 늘 피곤하다며 집에 오면 TV 리모컨을 끼고 살았고, 피곤을 푼다며 열심히 잠만 잤습니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육아와 집안일에 힘들어하는 내 모습이 불쌍하여 꺼이꺼이 울던 날도 많았지요. 그렇게 2년이 흐르고 딸이 태어났지요. 딸은 달덩이 처럼 예뻤답니다. 그런데 제대로 한번 안아주지도 않았으며 퇴근을 하면 ‘아빠왔다’라고 1초 동안 눈을 마주치는 것이 고작이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는 참으로 영악하네요. 금방 아빠의 마음을 알아차리더군요. 늘 외삼촌을 더 좋아했고, 아빠의 출퇴근에도 관심 밖이었답니다. 심지어 아빠가 2주의 교육으로 집에 없어도 찾지 않는 신기한 아이들이 되었지요. 아빠는 집에 있어도, 귀찮게 하지 않는 아이들에게 효자ㆍ효녀라며 너무나 좋아하던 철부지 아빠였답니다. 그런데 아들이 4살이 되던 해에 TV에 푹 빠져버렸습니다. 너무도 걱정이 되어 치워버렸습니다. 그리고 거실 한 쪽 벽은 책장과 낙서장도 만들었습니다. 이때부터 작은 변화가 생겼습니다. 일주일이 지나자 책과 이야기로 아빠의 영역이 조금 넓어졌습니다. 지난해 아빠학교 카페에 가입했다고 엄청 자랑하더군요. 글도 가끔 올리구요. 그래서 생각했습니다. ‘치~ 가식쟁이’라고 몰래 흉을 봤습니다. 그러나 몇 달이 지나자 어느새 진심을 담아 아이들과 하나가 되어가더군요. 어느 날부터 딸은 아빠의 퇴근시간을 챙기기 시작했으며, 일찍 오라며 5시부터 전화기에 불이 납니다. 저 밖에 몰랐던 내 자식이였는데 남편을 기다리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심한 질투가 납니다. 노력하는 아빠에게 90점을 드립니다. 10점은 올해 열심히 채우라고, 비워둡니다. 그리고, “아빠학교” 사랑합니다. 변하지 않을 것 같던 남편을 달라지게 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권규리 단국대학교 시각디자인과

위의 글은 서부현의 아내가 보냈으며 남편이 카페에 가입 후, 1년이 좀 넘어서였다. 서부현은 누구인가? 그는 아침에 일찍 출근하고 저녁에 퇴근하는 평범한 직장인이다. 그런데 어떻게 1년 만에 좋은 아빠로 환골탈퇴를 하였다. 얼마나 남편의 변화가 감사했으면 이렇게 구구절절 편지글을 보내온 것일까? 사실, 엄마들의 편지는 이 뿐만이 아니다. 벌써 이런 류의 편지를 보내온 글들이 수 십 통이나 있다. 하지만 내용은 대개 비슷하다. 이제 남편의 변화를 만든 그 원인을 추적하고 인수분해를 해보자.

좋은아빠가 되기 위한 노하우의 중심에는 바로 ‘따라쟁이’에 있다. 바로 교장이 그동안 해왔던 행동을 일거수 일투족을 따라했기 때문에 빠른 시간에 많은 변화가 발생했으며 결국 좋은 아빠가 되었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유유상종의 개념이 함께 했다. 사람은 늘 비슷한 사람끼리 몰려다닌다. 설령 비슷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많은 시간을 함께 한다면 성격이나 말투도 역시 비슷해진다. 그래서 결혼 후, 20년이 지나면 부부가 마치 형제자매처럼 비슷해진다. 

따라쟁이에 대한 기억은 필자에게도 있다. 1998년 IMF가 터지면서 그동안 잘 굴러가던 광고회사도 부도를 맞게 되었다. 어찌되었건 부도가 나니 빛쟁이가 되었고, 이를 갚다보니 빈털터리가 될 수 밖에 없었다. 이 때 친구와 사업을 구상하느라 1년정도를 함께 어울렸는데 그 때 배운 것이 당구다. 그 당시 나의 당구 실력은 80정도이고 친구는 300이었다. 그야말로 생 초보와 고수와의 실력차이였다. 그러기에 게임을 하면 친구는 늘 여유가 있었다. 이기고 싶으면 언제든지 이겼으며, 지고 싶으면 슬쩍 져주었다. 어쨋건 우리는 함께 자주 어울렸으며 때론 2명씩 편을 짜서 치기도 했다. 그렇게 1년을 함께 하니 어느덧 나의 당구실력은 무려 250이 되었다. 물론 그렇게 되기 위하여 친구가 여러 가지 기술을 가르쳐준 것도 있지만 나의 경우, 친구보다 잘 치려고 때론 혼자 당구장에 가서 연습을 하거나 혹은 함께 당구를 칠 일이 있으면 1~2시간 전에 가서 연습을 하곤 했다. 단지, 머릿속으로 열심히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지 않고, 시간이 되면 자주 연습을 했다. 그 결과 친구와 비슷한 실력이 되었다. 바로 이런 것이 따라쟁이이며, 유유상종의 사례이다.

그렇다면 따라쟁이와 유유상종 중에서 어느 것이 먼저 선행되어야 할까? 물론 유유상종이다. 이것의 비유는 수영을 배우는 과정에서 발견된다. 먼저 수영을 배우려면 물과 친해야 한다. 그럼 어떻게 친해질 수 있을까? 그저 얕은 물에서 물장구도 치고, 물싸움도 하면 된다. 그러면 물과 함께 있는 자체가 재미다 있다. 그러다 보면 물과 함께 있음은 하나의 즐거움이 된다. 그러나 수영을 잘하는 수영선수가 있다고 생초보가 처음부터 그를 따라하려고 상상해보자. 100미터는커녕 50미터를 따라가기도 힘들다. 수영을 못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매일 그 선수를 따라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저 매일 수영하면서 물만 잔뜩 마시게 된다. 더구나 물은 점점 두려움의 대상으로 변한다. 결국 수영을 배우지 못하고 물을 원망하는 결과가 된다. 세상의 이치란 나의 의지가 있다고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물과 함께 하면서 물과 친구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나의 몸이 물과의 관계를 이해를 하며 또한 물을 이용하는 법을 빨리 배울 수 있다.

그럼, 보통사람들은 왜, 좋은 아빠가 되기 어려운 것인가? 그것은 살아왔던 관성과 자의식이 원인이 되어 오히려 쉽게 되지 않는다. 물리학에서 관성의 법칙이란 고정되어 있는 것은 그 자리에 멈추려는 힘이 있고, 움직이는 물체는 그 방향으로 계속 움직이려고 한다. 그와 마찬가지로 나의 관념에서 좋은 아빠가 되려고 하지만 그동안 내가 살아왔던 관성이 있기에 얼핏, 그 방향으로 쉽게 가지 못한다. 그래서 머리는 이해를 하지만 유유상종은 이루지도 못한다. 그래서 따라쟁이가 되려고 하지만 그 역시 쉽지 않다. 그 이유는 나의 관념에서 모든 것을 이해하고, 나의 기준에서 행동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좋은 아빠가 좋다는 것은 분명히 인식하고 확신이 들지만 오히려 쉽게 지치고, 포기하여 결국 내가 그동안 살아왔던 방식을 고집하게 된다.

이렇게 좋은 아빠가 되지 못하는 실천적인 이유를 살펴보자. 가장 큰 이유는 아이와의 놀이에서 아빠가 주도적인 행동을 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 말을 한 문장으로 표현하면 아빠가 ‘아이와 잘 놀아주려고 한다’에 있다. 그러나 이 문장은 ‘아이와 함께 한다’라는 말과 배치되는데 그 로고스를 살펴보자. 아이와 잘 놀아주려는 의미는 우선 아빠와 아이가 주종의 관계라는 뜻이다. 아빠가 놀이를 주도하고, 명령하고, 시간을 조절하려고 한다. 그럼 아이의 입장에선 아빠가 모든 것을 결정하고, 명령한다라고 느낀다. 또한 이렇게 놀아주려고 결심을 하게 되면 아빠는 심리적인 역풍을 맞는다. 결심을 하는 순간 물리학에서 말하는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이 귀신같이 작동된다. 그러므로 마음속에서 오히려 빨리 놀아주고 끝내야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럴 경우, 아이들도 귀신같이 아빠의 마음을 안다. 한 마디로 재미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며 얼굴에 환한 웃음이 별로 없다. 하지만 아이와 함께 하려고 하려한다면 상황은 다르다. 그 이유는 아이와 수평적인 관계가 된다. 이는 수영을 배울 때 물장구를 치듯이 즐거움이 저절로 연출된다. 이런 관계는 연인사이에서도 쉽게 발견된다. 주위에서는 두 사람의 행위가 닭살이라고 수군거리지만 두 사람만의 사소한 놀이는 서로에게 많은 행복을 가져다 준다. 그렇다. 놀이란 거창하고, 복잡하고, 어려운 것이 아니다. 놀이에는 곧 교감이 발생해야 한다. 서로 상호작용이 일어나야 한다. 그러므로 좋은아빠가 되는 것은 곧 냇가에서 물장난과 같은 즐거움이 있어야 한다. 그렇게 쉽고 하찮고, 재미있는 것이다. 그저 아이와 친구와 같이 함께 한다는 자체가 커다란 놀이라는 사실이다.

그동안 십 수년의 활동을 통해서 필자로 인하여 수 백 명의 좋은 아빠가 생겨났으며 앞으로도 더 많아질 것이다. 어떻게 아빠를 변화시킬 수 있었을까? 먼저 필자가 그동안 축적된 수많은 정보와 노하우를 공개했다. 그리고 하루에 1분씩 방문하라고 했다. 그러면서 나를 따라 해보라고 제안을 했다. 그리고 아빠들은 나를 믿고 따라왔으며 또한 사소한 것부터 하나씩 따라하는 따라쟁이가 되었다. 그렇게 좋은 아빠가 되는 것은 소리 소문없이 이루어졌다.그렇다고 내가 “당신에게 좋은 아빠가 되도록 했으니 현금을 내 놓으시오”라는 말을 한 적은 없다. 그저 ‘좋은 아빠가 되어서 당신의 가정을 행복하게 해주십시오’라는 무언의 말을 전할 뿐이다. 국가의 기본인 한 가정이 행복하다는 사실은 행복한 국가를 만들 수 있는 토대이기도 하다.

정저지와(井底之蛙), 우물안의 개구리는 그 안에서 보는 하늘이 세상의 전부다.

늘, 나의 관념과 선입관에 스스로 메몰되어있다.

개구리가 수많은 세월동안 생각을 하더라도 결코 우물안을 벗어날 수 없다.

그러나,

그저 다리의 근육에 힘을 주고 한 번 힘껏 박차고 뛰어오르면 나갈 수 있다.

생각으로 새로운 사실을 생각만 한다면 부패하고 썩기 쉽다.

변화란 바로 나의 생의 긍정이며 또한 나의 생을 부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좋은 아빠,

그것은 평범한 단어에 불과하다.

거리를 활보하다보면 누가 좋은 아빠인지 도데체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좋은 아빠들은 늘 힘도 들이지 않고 쉽게 아내와 아이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

그러기에 가정에는 행복의 웃음과 에너지가 넘쳐 흐른다.

그래서 좋은 아빠란 ‘신인류’라고 부른다.

» 권규리 단국대학교 시각디자인과

위의 글은 서부현의 아내가 보냈으며 남편이 카페에 가입 후, 1년이 좀 넘어서였다. 서부현은 누구인가? 그는 아침에 일찍 출근하고 저녁에 퇴근하는 평범한 직장인이다. 그런데 어떻게 1년 만에 좋은 아빠로 환골탈퇴를 하였다. 얼마나 남편의 변화가 감사했으면 이렇게 구구절절 편지글을 보내온 것일까? 사실, 엄마들의 편지는 이 뿐만이 아니다. 벌써 이런 류의 편지를 보내온 글들이 수 십 통이나 있다. 하지만 내용은 대개 비슷하다. 이제 남편의 변화를 만든 그 원인을 추적하고 인수분해를 해보자.

좋은아빠가 되기 위한 노하우의 중심에는 바로 ‘따라쟁이’에 있다. 바로 교장이 그동안 해왔던 행동을 일거수 일투족을 따라했기 때문에 빠른 시간에 많은 변화가 발생했으며 결국 좋은 아빠가 되었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유유상종의 개념이 함께 했다. 사람은 늘 비슷한 사람끼리 몰려다닌다. 설령 비슷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많은 시간을 함께 한다면 성격이나 말투도 역시 비슷해진다. 그래서 결혼 후, 20년이 지나면 부부가 마치 형제자매처럼 비슷해진다. 

따라쟁이에 대한 기억은 필자에게도 있다. 1998년 IMF가 터지면서 그동안 잘 굴러가던 광고회사도 부도를 맞게 되었다. 어찌되었건 부도가 나니 빛쟁이가 되었고, 이를 갚다보니 빈털터리가 될 수 밖에 없었다. 이 때 친구와 사업을 구상하느라 1년정도를 함께 어울렸는데 그 때 배운 것이 당구다. 그 당시 나의 당구 실력은 80정도이고 친구는 300이었다. 그야말로 생 초보와 고수와의 실력차이였다. 그러기에 게임을 하면 친구는 늘 여유가 있었다. 이기고 싶으면 언제든지 이겼으며, 지고 싶으면 슬쩍 져주었다. 어쨋건 우리는 함께 자주 어울렸으며 때론 2명씩 편을 짜서 치기도 했다. 그렇게 1년을 함께 하니 어느덧 나의 당구실력은 무려 250이 되었다. 물론 그렇게 되기 위하여 친구가 여러 가지 기술을 가르쳐준 것도 있지만 나의 경우, 친구보다 잘 치려고 때론 혼자 당구장에 가서 연습을 하거나 혹은 함께 당구를 칠 일이 있으면 1~2시간 전에 가서 연습을 하곤 했다. 단지, 머릿속으로 열심히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지 않고, 시간이 되면 자주 연습을 했다. 그 결과 친구와 비슷한 실력이 되었다. 바로 이런 것이 따라쟁이이며, 유유상종의 사례이다.

그렇다면 따라쟁이와 유유상종 중에서 어느 것이 먼저 선행되어야 할까? 물론 유유상종이다. 이것의 비유는 수영을 배우는 과정에서 발견된다. 먼저 수영을 배우려면 물과 친해야 한다. 그럼 어떻게 친해질 수 있을까? 그저 얕은 물에서 물장구도 치고, 물싸움도 하면 된다. 그러면 물과 함께 있는 자체가 재미다 있다. 그러다 보면 물과 함께 있음은 하나의 즐거움이 된다. 그러나 수영을 잘하는 수영선수가 있다고 생초보가 처음부터 그를 따라하려고 상상해보자. 100미터는커녕 50미터를 따라가기도 힘들다. 수영을 못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매일 그 선수를 따라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저 매일 수영하면서 물만 잔뜩 마시게 된다. 더구나 물은 점점 두려움의 대상으로 변한다. 결국 수영을 배우지 못하고 물을 원망하는 결과가 된다. 세상의 이치란 나의 의지가 있다고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물과 함께 하면서 물과 친구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나의 몸이 물과의 관계를 이해를 하며 또한 물을 이용하는 법을 빨리 배울 수 있다.

그럼, 보통사람들은 왜, 좋은 아빠가 되기 어려운 것인가? 그것은 살아왔던 관성과 자의식이 원인이 되어 오히려 쉽게 되지 않는다. 물리학에서 관성의 법칙이란 고정되어 있는 것은 그 자리에 멈추려는 힘이 있고, 움직이는 물체는 그 방향으로 계속 움직이려고 한다. 그와 마찬가지로 나의 관념에서 좋은 아빠가 되려고 하지만 그동안 내가 살아왔던 관성이 있기에 얼핏, 그 방향으로 쉽게 가지 못한다. 그래서 머리는 이해를 하지만 유유상종은 이루지도 못한다. 그래서 따라쟁이가 되려고 하지만 그 역시 쉽지 않다. 그 이유는 나의 관념에서 모든 것을 이해하고, 나의 기준에서 행동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좋은 아빠가 좋다는 것은 분명히 인식하고 확신이 들지만 오히려 쉽게 지치고, 포기하여 결국 내가 그동안 살아왔던 방식을 고집하게 된다.

이렇게 좋은 아빠가 되지 못하는 실천적인 이유를 살펴보자. 가장 큰 이유는 아이와의 놀이에서 아빠가 주도적인 행동을 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 말을 한 문장으로 표현하면 아빠가 ‘아이와 잘 놀아주려고 한다’에 있다. 그러나 이 문장은 ‘아이와 함께 한다’라는 말과 배치되는데 그 로고스를 살펴보자. 아이와 잘 놀아주려는 의미는 우선 아빠와 아이가 주종의 관계라는 뜻이다. 아빠가 놀이를 주도하고, 명령하고, 시간을 조절하려고 한다. 그럼 아이의 입장에선 아빠가 모든 것을 결정하고, 명령한다라고 느낀다. 또한 이렇게 놀아주려고 결심을 하게 되면 아빠는 심리적인 역풍을 맞는다. 결심을 하는 순간 물리학에서 말하는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이 귀신같이 작동된다. 그러므로 마음속에서 오히려 빨리 놀아주고 끝내야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럴 경우, 아이들도 귀신같이 아빠의 마음을 안다. 한 마디로 재미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며 얼굴에 환한 웃음이 별로 없다. 하지만 아이와 함께 하려고 하려한다면 상황은 다르다. 그 이유는 아이와 수평적인 관계가 된다. 이는 수영을 배울 때 물장구를 치듯이 즐거움이 저절로 연출된다. 이런 관계는 연인사이에서도 쉽게 발견된다. 주위에서는 두 사람의 행위가 닭살이라고 수군거리지만 두 사람만의 사소한 놀이는 서로에게 많은 행복을 가져다 준다. 그렇다. 놀이란 거창하고, 복잡하고, 어려운 것이 아니다. 놀이에는 곧 교감이 발생해야 한다. 서로 상호작용이 일어나야 한다. 그러므로 좋은아빠가 되는 것은 곧 냇가에서 물장난과 같은 즐거움이 있어야 한다. 그렇게 쉽고 하찮고, 재미있는 것이다. 그저 아이와 친구와 같이 함께 한다는 자체가 커다란 놀이라는 사실이다.

그동안 십 수년의 활동을 통해서 필자로 인하여 수 백 명의 좋은 아빠가 생겨났으며 앞으로도 더 많아질 것이다. 어떻게 아빠를 변화시킬 수 있었을까? 먼저 필자가 그동안 축적된 수많은 정보와 노하우를 공개했다. 그리고 하루에 1분씩 방문하라고 했다. 그러면서 나를 따라 해보라고 제안을 했다. 그리고 아빠들은 나를 믿고 따라왔으며 또한 사소한 것부터 하나씩 따라하는 따라쟁이가 되었다. 그렇게 좋은 아빠가 되는 것은 소리 소문없이 이루어졌다.그렇다고 내가 “당신에게 좋은 아빠가 되도록 했으니 현금을 내 놓으시오”라는 말을 한 적은 없다. 그저 ‘좋은 아빠가 되어서 당신의 가정을 행복하게 해주십시오’라는 무언의 말을 전할 뿐이다. 국가의 기본인 한 가정이 행복하다는 사실은 행복한 국가를 만들 수 있는 토대이기도 하다.

정저지와(井底之蛙), 우물안의 개구리는 그 안에서 보는 하늘이 세상의 전부다.

늘, 나의 관념과 선입관에 스스로 메몰되어있다.

개구리가 수많은 세월동안 생각을 하더라도 결코 우물안을 벗어날 수 없다.

그러나,

그저 다리의 근육에 힘을 주고 한 번 힘껏 박차고 뛰어오르면 나갈 수 있다.

생각으로 새로운 사실을 생각만 한다면 부패하고 썩기 쉽다.

변화란 바로 나의 생의 긍정이며 또한 나의 생을 부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좋은 아빠,

그것은 평범한 단어에 불과하다.

거리를 활보하다보면 누가 좋은 아빠인지 도데체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좋은 아빠들은 늘 힘도 들이지 않고 쉽게 아내와 아이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

그러기에 가정에는 행복의 웃음과 에너지가 넘쳐 흐른다.

그래서 좋은 아빠란 ‘신인류’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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