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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우울증, 뿌리 상처부터 치료를

허찬희 수성중동병원·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허찬희의 정신건강얼마 전에 있었던 일이다. 30대 중반 여성이 다량의 수면제를 한꺼번에 먹고 정신이 몽롱한 상태에서 칼로 손목을 그어 자살을 기도했다. 그는 가까운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은 뒤 정신건강의학과에 입원했다. 몸 상태가 다소 회복된 뒤에는 병원의 다른 환자와 자주 다투고 사소한 일에도 의료진에게 과도하게 화를 냈다. 그는 마음속에서 엄청난 화가 올라오고 특별한 일이 없음에도 막연히 불안하고 두려운 감정이 든다고 호소했다.

그와의 심층면담을 통해 그에게서 우울증이 어떻게 생기고 진행됐는지에 대해 함께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다. 자살을 시도하게 된 이유를 물어보니, 자신이 ‘혼자라는 느낌이 들고, 불안과 공포가 계속돼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는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의사로서는 이렇듯 자살 시도를 하는 우울증 환자를 치료할 때 자살에 이르는 심경과 자살을 결심하게 된 배경을 반드시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는 5년 전에도 자살을 기도했으며, 당시에도 여섯달 동안 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은 적이 있다고 했다. 이유는 이번과 같았다고 털어놓았다.

이렇게 반복되는 자살 시도에서는 동기가 같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원인이 되는 감정을 이해하고 극복하는 것이 자살을 방지하고 환자의 우울증을 이해하고 치료를 잘 할 수 있는 열쇠가 되는 것이다. 이 여성의 경우 6살쯤에 부모가 이혼하고 그 뒤 새어머니와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고 했다. 어린 나이에 이복동생을 돌보고 과도하게 집안일을 거들어야 했기에 결국 중학교를 중퇴하고 가출을 하기도 했다. 청소년기에는 마트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어른이 돼서는 야간 업소에서 일을 하면서 혼자 살았는데, 이때에도 종종 ‘자신이 혼자라는 느낌’이 들었고 그렇게 되면 갑자기 불안과 공포심에 젖어든다고 했다. 좀더 자세히 들어보니, 어릴 때 갑자기 엄마가 보이지 않아 며칠 동안 울고 나니 느닷없이 새엄마라고 하면서 배가 부른 여성이 집에 나타났다고 했다. 그 당시 그 아이가 경험한 감정이 바로 엄마가 갑자기 사라져서 이 세상에 혼자 버려진다는 공포심이다. 현재의 막연한 분노심과 공포심은 엄마가 떠나고 난 뒤 한없이 울 때의 심정이라고 볼 수 있다.

효과적인 우울증 치료를 위해서는 겉으로 드러나는 원인이나 한번 지나가는 사건에 매달리면 근본적인 원인을 놓치게 된다. 현재 고통 받는 우울증의 뿌리가 어린 시절 자신이 경험한 정서적 상처에서 비롯됐고 그것이 해결되지 못한 채 일생에 걸쳐 자신을 지배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효과적인 치료를 할 수 있다. 치료가 잘 진행되면, 이 환자는 여섯살 때 엄마가 아무 말 없이 떠났을 때는 그런 감정에 빠져들었지만 지금은 그렇게 절망적인 상황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또 여섯살 때의 상처가 현재에는 없음을 깨닫게 될 것이며, 비로소 과거의 감정에서 서서히 벗어나게 될 것이다.

허찬희 수성중동병원·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한겨레신문 2012.7.3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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