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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하기의 시작 - 얼마에 하나 더하기


초등학교 입학을 서너 달 앞둔 해님이에게 “초등학교에 가면 뭐가 제일 어려울 것 같으냐?”고 물으니 “공부”라고 답한다. 공부가 뭐냐고 되물으니, “일 더하기 일 같은 것을 하는 것”이란다. 그러면서 자기는 이미 “일 더하기 일이 이”이라는 것을 안다면서 연달아 “이 더하기 이는 사, 사 더하기 사는 팔, 팔 더하기 팔은 십육”까지 자신 있게 말한다. 옆에서 듣고 있던 열 살 누나가 “그럼, 이 더하기 삼은 뭐야?”라고 묻자, “그건 몰라!”. 해님이가 앞서 말한 더하기는, 초등학생이 된 후 누나가 즐겨 말하던 것을 반복해 듣고 또 들어 자연스레 외워진 것이다. 그러니까 더하기의 원리를 알고 하는 계산이 아니다. 

한번은 엄마, 아빠 대화 중에 ‘시험문제’라는 단어가 나오자, 옆에서 듣고 있던 7살 아이가 그 단어의 뜻을 궁금해 한다. ‘일 더하기 일은 얼마입니까?’라고 묻는 게 시험 문제라고 설명해 주었다. 그러고 나서 내친 김에 “일 더하기 일은 얼마일까?”라고 물어보았다. 아이가 “사(4)야?“라고 묻듯 답한다. 아빠가 옆에서 다시 묻는다. ”사과 한 개가 있고 또 사과 한 개가 있으면 몇 개지?” 당당하게 곧장 아이가 “두 개”라고 정확히 답한다. 다시 엄마가 물었다. “그럼, 일 더하기 일은 얼마일까?” 돌아온 답: “사(4)!”.

아이에게는 ‘몇 더하기 몇’이라는 말 자체가 이해의 대상인 것이다. 그러고 보니 ‘몇 더하기 몇’이라는 말은 일상에서 거의 사용되지 않으며, 오히려 상당부분 학교교육용 말이라는 생각도 든다. 유치 시기인 지금, ‘일 더하기 일’의 뜻을 몰라 그 답을 구하지 못하지만, ‘한 개가 있고 또 한 개가 있으면 두 개’라는 것을 알고 있다. 상대적으로 전자를 추상적, 후자를 구체적이라고 할 때, 구체적 삶을 살고 있는 아이에게 굳이 추상의 세계를 앞당겨 제시할 필요는 없다는 게 나의 지론이라면 지론이다.

‘몇 더하기 몇’의 세계이전에 아이들은 나름대로 더하기의 세계를 경험하고 그 속에서 뭔가를 구축하고 있다. 아이들은 더하기를 어떤 모습으로 만날까? 가만 생각해보면, 더하기의 출발은 얼마에 하나, 또는 일을 더하는 것이다.

동그란 빵을 한 개 먹으면서,

“엄마, 어제 내가 이 빵 세 개 먹었다. 그러니까 이것까지 하면 네 개 먹는 거다.“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 수를 사용해 스스로 이야기한다.

이 장면을 분석해보면, 먼저 아이가 스스로 문제 만들기를 한 것으로 해석해 볼 수 있다. “어제까지 빵을 세 개 먹었고, 지금 한 개를 먹고 있다. 내가 먹은 빵의 개수는?”이라는 문제 상황이 아이에게 자연스럽게 인식된 것이다. 엄마들이 일상생활에서 일어난 일이나 장면 등을 소재로 즉시 수학 문제를 만들어 자녀에게 제시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엄마가 수학 문제를 만들어 주고 그 문제를 아이가 풀도록 하는 것과, 아이가 스스로 문제 상황을 구성하고 그 답까지 구하는 것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는 것 같다. 

후자의 경우에는 아이의 자발성이 좀더 발휘될 수 있고, 대부분 아이가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의 문제를 만들기 때문에 스스로 답을 찾을 가능성이 높고, 그에 따라 답을 찾은 후에 자신에 대한 믿음이 한층 단단해 질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로 살펴볼 내용은, 위의 얼마에 하나 또는 일을 더하는 것은 수 세기 능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세 개에 한 개를 더하면 네 개라는 답을 구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 둘, 셋, 넷’으로 이어지는 수 세기가 개념적으로나 실천적으로나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수를 차례대로 셀 수 있는 능력을 활용하여 얼마에 하나를 더한 값을 얻고 있다.

아이가 얼마에 하나를 더하는 셈을 하게 되는 상황들은 나이 수 계산에서 자주 일어나는 것 같다.

평소 알고 지내는 집에서 늦둥이가 태어났다. 모임에 그 늦둥이도 같이 왔다. 해님이가 그 늦둥이를 두고,

"얘는 한 살이지요. 얘가 두 살 되면, 나는 일곱 살, 얘가 세 살 되면, 나는 여덟 살, 얘가 네 살 되면, 나는 아홉 살, 얘가 다섯 살 되면, 나는 열 살. (잠시 뜸을 들인 후) 얘가 여섯 살 되면, 나는 열한 살"

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손가락을 하나하나 폈나보다. 열한 살을 표현하면서 다시 손가락 하나를 접자, 늦둥이 아기 아빠가

"그럼, 발가락을 써야지!"

하고 말하자, 해님이가 자기의 발을 번쩍 들어올린다.

"이렇게요? 하하"

하며 재미있다는 듯 웃는다.

한편 얼마에 한 개를 더한 값을 구하려고 할 때, 아이가 수 세기에 전적으로 의존한다는 것을 다음의 사례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아이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에 기대어 답을 구한다. 그러다보면, 시간이 좀더 많이 걸린다. 빠르게 답을 구하는 능력도 경우에 따라 필요하겠지만, 비록 천천히 가더라도, 답을 구하는 데 자신의 어떤 능력들을 스스로 적용해본 경험들이 축적되면서 자신감이나 자존감이 있는 아이로 차근차근 자랄 것이라고 믿어본다.

사각 크레용이 이런저런 것들과 섞여서 온몸에 때가 가득하다. 아이들과 같이 크레용의 때를 벗긴다. 몇 개를 남겨 놓고는 힘든지 아이들이 안한다. 대신 큰아이는 때가 벗겨진 크레용을 종류별로 동생하고 똑같이 나누는 일을 하겠다고 한다. 예를 들어, 빨간색 두 개를 골라, “해님이 하나, 나 하나”하면서 분류를 한다. 해님이는 밑바닥이 넓은 통을 가져와서는 옆에 앉아 누나가 주는 크레파스를 자기 통에 담는다. 누나가 통에 담겨진 크레파스 개수를 세어보라고 해님이에게 말한다. 해님이의 수 세는 솜씨가 제법이다. 밑바닥이 넓은 통에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는 크레파스 조각들을 빠뜨리지도 않고, 중복하지도 않고, 또박또박 헤아린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홉, 열, 열하나”

엄마가 남은 두 개를 모두 닦자, 누나가 그것도 마저 나눈다. 그러니까 해님이 통에는 한 개가 더 들어가 모두 열두 개가 된 것이다. 엄마가 물었다.

“이제 몇 개가 된 걸까?”

열하나까지 이미 세어 두었기 때문에, 열하나 다음인 “열 둘”이라는 답이 아이 입에서 곧장 이어져 쉽게 나올까 궁금하다. 그런데 아이는 처음부터 천천히 정성스럽게 다시 센다. 답을 구하기까지 시간이 꽤 걸린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홉, 열, 열하나, 열둘! 열두 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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