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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육아를 부탁해]

(12) 엄마랑 연애할 때

임경선 지음 Ⅰ마음산책 펴냄

눈망울이 커다랗고 사람의 심리를 간파하는 재주를 지닌 임경선씨가 최근 육아 관련 책을 냈다. ECS에 연애 관련 상담과 칼럼을 주로 연재해온 그가 ‘엄마’라는 존재로서 다가오니 내게는 좀 생경했다. 그가 한 아이의 엄마라는 사실 조차도 놀라웠다. 이제까지 내게 그는 자존감 강하고 연애가 지속가능할 것 같은 ‘캣우먼’으로만 보였으니 말이다. 시크한 그는 아이를 어떻게 키울까, 또 아이를 키우면서 어떤 일들을 경험했을까 등등 궁금증을 안고 책을 폈다.


는 정확히 말하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육아서는 아니다. 임경선씨의 에세이라고 보는 것이 더 맞다. 그런데 이 책은 그 어떤 육아서보다도 ‘아이를 키우는 것’과 ‘엄마라는 존재’에 대해 많은 것들을 생각해볼 수 있게 해준다. 그가 아이와 연애하듯 아이와의 관계를 만들어나가는 모습은 나를 비롯한 많은 엄마들이 `엄마라는 참없을 수 없는 존재의 무거움'을 날려버릴 수 있게 만들어준다. 아이 교육을 잘 시켜야 하고, 건강하게 키워야 하고, 아이의 모든 것을 엄마가 책임져야 한다는 그 이상한 강박과 강요를 떨쳐버릴 수 있다. 그저 연애하듯 아이를 사랑하면 되겠구나 하는 인식의 전환이 이뤄진다고 해야할까.
그는 이 책에서 그저 한 사람으로서 아이를 키우면서 느꼈던 삶에 대한 다양한 감정과 생각들을 풀어놓았다. 글 중간 중간 임경선식 서술, 그러니까 엄마의 부속품이 아닌 아이를 한 존재로서 인식하면서 그 아이의 행동과 심리를 자세히 관찰하고 뜯어보고 상상하는 대목을 읽노라면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예를 들면 이런 대목이다.

아이는 “윤서야. 엄마 오셨다~”라는 선생님의 부름에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복도를 가로질러 다다다 뛰어오지만, 막상 구두를 신고 밖에 나서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애인과 밀고 당기기 하는 새침한 아가씨가 된다. 그러고는 입술을 삐죽 내밀며 말한다.
“나…오늘도 엄마 많이 보고 싶었는데 우는 건 참았어. 참았다구.”
딱 요대로 크면 미래의 남자 친구는 꼼짝없이 그 앞에서 항복하겠다 싶어 실없이 웃음만 나왔다. 다행이 나는 애인이 아닌 엄마. 내 배 속에서 나온 딸인데도 아이의 애정 어린 투정을 삐딱하게 의심하고 있었다. 정말 내가 보고 싶은 거야. 아니면 어서 집에 가서 널브러져 텔레비전 보면서 간식 시중 들라고 하고 싶은 거야? 어쨌든 말이라도 고맙다. 아가야. 그도 그런 게… 사실, 너한테 차마 대놓고 말은 못하지만, 나는 네가 옆에 없을 때는 네 생각 하나도 안 나거든? 아니, 나한테 아이가 있다는 것도 종종 깜빡하곤 해.
유일하게 네 생각이 날 때가 언제인지 아니? 네가 울거나 떼쓰고 기분 안 좋게 유치원에 간 날에만 생각나고 걱정돼. 그렇다고 너를 일찍 데리러 가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서 네가 울거나 떼쓰거나 이렇게 튕기는 건 꼭 필요하고, 내가 감사히 감내해야 할 몫인 것 같아.

이 구절을 읽을 때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며 안도감이 느꼈졌다. 아이가 엄마에게 하는 행동을 연애하는 사람들이 흔히 하는 ‘밀고 당기기’로 해석하는 관점도 새로웠고, ‘사실 네가 내 옆에 없으면 네 생각 전혀 안한다’고 말하는 고백도 통쾌했다. 나 역시 일을 할 때,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때,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있을 때, 내가 아이가 있다는 사실 자체를 잊어버리곤 한다. 아니 결혼했다는 사실을 망각할 때도 있다. 뭔가에 빠져 있을 때는 아이들이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 걱정도 안한다. 그냥 나는 나일 뿐이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은 뒤부터 주변에서 내게 자꾸 나라는 존재는 나 자체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두 아이의 엄마, 한 남자의 아내, 시부모님의 며느리, 한겨레 신문 기자로서의 역할만 강요 당한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그 역할 수행을 제대로 하지 못하거나 그 역할에서 벗어난 행동을 하면 죄책감을 느껴야한다. 그럴 때 느끼는 답답함과 일탈 욕구를 남자들은 아마 모를 것이다. 아니, 남자들은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남자들 역시 사람이 아닌 ‘돈 벌어오는 기계’로 가정에서 취급 당하지 않는가.

“엄마는 편하고 즐거우면 죄의식을 느껴야만 ‘비양심’’무개념’에서 벗어나는 것일까. 왜 엄마는 즐겁고 가벼운 마음으로 일하면 안되는가.
왜 엄마는 자기 시간을 가지면 안 되나. 왜 완벽하지 않으면 안 되나. 가사일을 제대로 꼼꼼히 못한다고, 남편보다 집에 늦게 들어간다고, 애를 남의 손에 맡긴다고, 애랑 충분히 못 놀아준다고 왜 죄의식을 가져야 하는 걸까.”

지은이가 `엄마의 죄의식'이라는 제목으로 쓴 글의 이 구절은 내가 평소 갖고 있었던 생각을 그대로 옮겨적은 것 같아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감탄했다. 나는 항상 바쁘고 힘들고 눈밑에 다크써클을 매달고 다녀야 `제대로 된 엄마'라 여겨지는 현실이 너무 싫다. 여자에게 각종 죄의식을 불러일으키는 사회의 통념들이 부담스럽다. 그런데 지은이가 그 부분을 툭 건드려주니 어찌나 마음이 시원해졌는지 모른다. `그래, 나도 그냥 사람이라고! '라는 말을 소리치고 싶을 정도였다.

지은이는 갑상선암 수술을 두 번이나 했다. 어렵사리 인공수정으로 생긴 아이마저 잃은 경험도 있다. 또 그의 친정엄마 역시 대장암을 앓고 투병을 했다. 세련되고 쿨해 보이는 그에게 가슴 먹먹한 사연들이 많았음을 알고 나니 이전처럼 그가 나와는 완전히 다른 세계의 사람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면서 그의 글들이 그냥 내 마음 속에 스며들었다.
 

는 술술 잘 읽히는 책이다. 웃음과 감동, 슬픔과 기쁨이 곳곳에 잔잔하게 묻어나는 책이다. 잔잔한 깨달음도 준다. 책 읽기에 딱 좋은 요즘 같은 계절에 잘 어울리는 책이다. 육아가 지치고 힘들다고 느껴질 때, 나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느껴질 때, 이 책을 손에 들고 잠시 카페에 앉아 커피 한 잔 마셔볼 것을 권한다.
양선아 기자

임경선 지음 Ⅰ마음산책 펴냄

눈망울이 커다랗고 사람의 심리를 간파하는 재주를 지닌 임경선씨가 최근 육아 관련 책을 냈다. ECS에 연애 관련 상담과 칼럼을 주로 연재해온 그가 ‘엄마’라는 존재로서 다가오니 내게는 좀 생경했다. 그가 한 아이의 엄마라는 사실 조차도 놀라웠다. 이제까지 내게 그는 자존감 강하고 연애가 지속가능할 것 같은 ‘캣우먼’으로만 보였으니 말이다. 시크한 그는 아이를 어떻게 키울까, 또 아이를 키우면서 어떤 일들을 경험했을까 등등 궁금증을 안고 책을 폈다.


는 정확히 말하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육아서는 아니다. 임경선씨의 에세이라고 보는 것이 더 맞다. 그런데 이 책은 그 어떤 육아서보다도 ‘아이를 키우는 것’과 ‘엄마라는 존재’에 대해 많은 것들을 생각해볼 수 있게 해준다. 그가 아이와 연애하듯 아이와의 관계를 만들어나가는 모습은 나를 비롯한 많은 엄마들이 `엄마라는 참없을 수 없는 존재의 무거움'을 날려버릴 수 있게 만들어준다. 아이 교육을 잘 시켜야 하고, 건강하게 키워야 하고, 아이의 모든 것을 엄마가 책임져야 한다는 그 이상한 강박과 강요를 떨쳐버릴 수 있다. 그저 연애하듯 아이를 사랑하면 되겠구나 하는 인식의 전환이 이뤄진다고 해야할까.
그는 이 책에서 그저 한 사람으로서 아이를 키우면서 느꼈던 삶에 대한 다양한 감정과 생각들을 풀어놓았다. 글 중간 중간 임경선식 서술, 그러니까 엄마의 부속품이 아닌 아이를 한 존재로서 인식하면서 그 아이의 행동과 심리를 자세히 관찰하고 뜯어보고 상상하는 대목을 읽노라면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예를 들면 이런 대목이다.

아이는 “윤서야. 엄마 오셨다~”라는 선생님의 부름에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복도를 가로질러 다다다 뛰어오지만, 막상 구두를 신고 밖에 나서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애인과 밀고 당기기 하는 새침한 아가씨가 된다. 그러고는 입술을 삐죽 내밀며 말한다.
“나…오늘도 엄마 많이 보고 싶었는데 우는 건 참았어. 참았다구.”
딱 요대로 크면 미래의 남자 친구는 꼼짝없이 그 앞에서 항복하겠다 싶어 실없이 웃음만 나왔다. 다행이 나는 애인이 아닌 엄마. 내 배 속에서 나온 딸인데도 아이의 애정 어린 투정을 삐딱하게 의심하고 있었다. 정말 내가 보고 싶은 거야. 아니면 어서 집에 가서 널브러져 텔레비전 보면서 간식 시중 들라고 하고 싶은 거야? 어쨌든 말이라도 고맙다. 아가야. 그도 그런 게… 사실, 너한테 차마 대놓고 말은 못하지만, 나는 네가 옆에 없을 때는 네 생각 하나도 안 나거든? 아니, 나한테 아이가 있다는 것도 종종 깜빡하곤 해.
유일하게 네 생각이 날 때가 언제인지 아니? 네가 울거나 떼쓰고 기분 안 좋게 유치원에 간 날에만 생각나고 걱정돼. 그렇다고 너를 일찍 데리러 가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서 네가 울거나 떼쓰거나 이렇게 튕기는 건 꼭 필요하고, 내가 감사히 감내해야 할 몫인 것 같아.

이 구절을 읽을 때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며 안도감이 느꼈졌다. 아이가 엄마에게 하는 행동을 연애하는 사람들이 흔히 하는 ‘밀고 당기기’로 해석하는 관점도 새로웠고, ‘사실 네가 내 옆에 없으면 네 생각 전혀 안한다’고 말하는 고백도 통쾌했다. 나 역시 일을 할 때,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때,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있을 때, 내가 아이가 있다는 사실 자체를 잊어버리곤 한다. 아니 결혼했다는 사실을 망각할 때도 있다. 뭔가에 빠져 있을 때는 아이들이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 걱정도 안한다. 그냥 나는 나일 뿐이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은 뒤부터 주변에서 내게 자꾸 나라는 존재는 나 자체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두 아이의 엄마, 한 남자의 아내, 시부모님의 며느리, 한겨레 신문 기자로서의 역할만 강요 당한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그 역할 수행을 제대로 하지 못하거나 그 역할에서 벗어난 행동을 하면 죄책감을 느껴야한다. 그럴 때 느끼는 답답함과 일탈 욕구를 남자들은 아마 모를 것이다. 아니, 남자들은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남자들 역시 사람이 아닌 ‘돈 벌어오는 기계’로 가정에서 취급 당하지 않는가.

“엄마는 편하고 즐거우면 죄의식을 느껴야만 ‘비양심’’무개념’에서 벗어나는 것일까. 왜 엄마는 즐겁고 가벼운 마음으로 일하면 안되는가.
왜 엄마는 자기 시간을 가지면 안 되나. 왜 완벽하지 않으면 안 되나. 가사일을 제대로 꼼꼼히 못한다고, 남편보다 집에 늦게 들어간다고, 애를 남의 손에 맡긴다고, 애랑 충분히 못 놀아준다고 왜 죄의식을 가져야 하는 걸까.”

지은이가 `엄마의 죄의식'이라는 제목으로 쓴 글의 이 구절은 내가 평소 갖고 있었던 생각을 그대로 옮겨적은 것 같아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감탄했다. 나는 항상 바쁘고 힘들고 눈밑에 다크써클을 매달고 다녀야 `제대로 된 엄마'라 여겨지는 현실이 너무 싫다. 여자에게 각종 죄의식을 불러일으키는 사회의 통념들이 부담스럽다. 그런데 지은이가 그 부분을 툭 건드려주니 어찌나 마음이 시원해졌는지 모른다. `그래, 나도 그냥 사람이라고! '라는 말을 소리치고 싶을 정도였다.

지은이는 갑상선암 수술을 두 번이나 했다. 어렵사리 인공수정으로 생긴 아이마저 잃은 경험도 있다. 또 그의 친정엄마 역시 대장암을 앓고 투병을 했다. 세련되고 쿨해 보이는 그에게 가슴 먹먹한 사연들이 많았음을 알고 나니 이전처럼 그가 나와는 완전히 다른 세계의 사람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면서 그의 글들이 그냥 내 마음 속에 스며들었다.
 

는 술술 잘 읽히는 책이다. 웃음과 감동, 슬픔과 기쁨이 곳곳에 잔잔하게 묻어나는 책이다. 잔잔한 깨달음도 준다. 책 읽기에 딱 좋은 요즘 같은 계절에 잘 어울리는 책이다. 육아가 지치고 힘들다고 느껴질 때, 나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느껴질 때, 이 책을 손에 들고 잠시 카페에 앉아 커피 한 잔 마셔볼 것을 권한다.
양선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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