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위치:»건강·생활»콘텐츠

놀아달라고 하는 아이, 혼자서도 잘 노는 아이

 

» 한겨레 자료사진

어렸을 때 큰 아이는 잠시도 혼자 놀려고 하지 않아서 아이와 시간을 보내는 게 쉽지 않았다. 반면에 둘째는 안아주는 것도 시큰둥하고 하루 종일 같이 있으면서도 놀아달라고 하지 않고 혼자서 잘 노는 아이였다. 둘째 아이가 유치원에 다닐 때 같은 반 아이의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다 우리 둘째가 혼자서도 잘 논다는 이야기를 하니 그 엄마가 이상한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엄마가 너무 안 놀아줘서 그런 것 아니에요?” 그 표정은 엄마가 바쁘고 직장이 있으니 얼마나 놀아주었겠느냐, 집에 있다고 해도 애랑 놀아주기나 했겠냐, 오죽하면 애가 놀아달라는 말을 안 하겠냐 하는 비난과 동정이 복잡하게 얽힌 표정이었다. 사실 둘째는 첫째와 달리 안아주어도 꼭 안기는 게 아니라 엄마가 안아주니 참는다는 듯한 몸짓으로 풀려나면 제 놀잇감으로 달려가 놀기 바빴고 요구가 별로 없는 아이였다.

그러던 차에 또래친구 엄마에게 그런 말까지 들으니 정말 아이에게 문제가 있는 걸까 생각하게 되었다. 두 아이를 아주 다르게 키우지 않았는데도 두 아이가 아주 다른 행동을 보이는 것을 보면 꼭 내 행동이 문제라고 할 수만은 없을 것 같은데 무엇 때문에 똑같은 부모에게 태어난 두 아이가 이렇게 다른지 알기 어려웠다.

이후 아이들의 행동을 설명하는데 기질이 상당히 중요하다는 이론적 근거들이 밝혀지면서 나는 기질을 측정하는 질문지 활용법을 강의하는 워크샵에 참석하게 되었다.

기질이론에 따르면 기질은 외부의 자극에 대해 자동적으로 일어나는 정서적 반응성향이며, 다분히 유전적이고, 일생동안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지되 잘 변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또한 성격은 기질이라는 원재료를 바탕으로 환경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형성되는 것이며, 사회문화적 학습의 영향을 받는다고 하였다.

이 기질이론이 나에게 다가온 것은 기질의 영역 중 ‘사회적 민감성’이라는 차원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날 때부터 사회적 자극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느냐가 이미 기질로 정해져 있으며, 따라서 사회적 민감성이 다르다는 것이다. 사회적 민감성은 사회적 애착에 대한 의존성이 사람마다 얼마나 다른가를 반영해주는 것이며, 사회적 민감성이 높을수록 그 사람은 마음이 여리고, 애정이 많고, 따뜻하고, 민감하며, 헌신적이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의존적이고 교류에 대한 갈망이 커서 가능하면 많은 사람들과 접촉하려고 하는 편인데 그러다보니 따뜻한 사회적 관계를 맺을 가능성도 많지만 다른 사람의 영향을 쉽게 받아 객관성을 잃는 경우도 많다는 단점이 있다.

사회적 민감성이 낮은 사람은 실용적이고, 강인하며, 다른 사람의 감정에 둔하고 무심하다는 인상을 준다. 혼자 있어도 힘들어하지 않고 남과 교류를 먼저 시작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사회적 압력이나 비판에 크게 영향 받지 않는 점은 이들이 장점이지만 친밀한 관계를 맺어야 할 때 이들은 공감능력이 부족하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 집 두 아이 중 딸아이는 사회적 민감성이 높은 기질을 타고 났고, 아들은 민감성이 낮은 편이라고 하면 두 아이가 모두 이해가 가능하다. 게다가 우리 부부 중 남편은 사회적 민감성이 높은 편이고 나는 그렇지 않은 편이니 두 아이가 골고루 엄마 아빠의 영향을 받아 태어난 것이다. 딸아이는 자꾸 놀아달라고 하고 상호작용에 대한 요구가 많아 키울 때 손이 많이 가고 신경도 많이 쓰이는 편이었다. 다 큰 지금은 엄마에 대해 살가운 애정을 많이 표현하고 스킨쉽도 거리낌 없이 하는 등 애정표현이 풍부하고 다정한 아이가 되었다. 혼자 놀고 엄마를 잘 찾지 않는 둘째는 지금도 혼자서 무엇이건 잘 하는 편이다. 엄마가 있으면 더 좋아하긴 하지만 꼭 필요로 하는 것 같다는 느낌은 크지 않다. 손이 가지 않아 수월하다는 느낌은 있지만 살가운 다정함은 적어 같이 있어도 같이 있다는 느낌이 딸만큼 들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스스로 판단하는 점은 나이에 비해서도 어른스럽고 든든하다.

아이가 놀아달라고 끊임없이 조르면 지친 엄마에게는 양육의 무게가 더 버겁게 느껴진다. 옆집 아이는 혼자서 잘만 놀던데, 우리 애는 애착에 문제가 있나 하는 의구심이 들 때도 있다. 그렇지만 엄마를 향해 팔을 벌리는 횟수, 엄마의 눈길을 바라는 정도, 사람들을 따르고 좋아하는 정도는 상당 부분 타고 난 것이다. 그리고 아이는 필요로 하는 만큼 엄마에게 요구하는 것이다. 엄마 자리를 잘 지키고 있는 한은 놀아달라는 만큼 다 놀아주지 못했다 해서 지나치게 죄책감을 느낄 필요도 없고, 놀아달라는 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고 해서 너무 섭섭해 할 일도 아닌 것이다.

Next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