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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천석의 내가 사랑한 그림책] 바람이 멈출 때

 아이들의 끝없는 질문이 두렵다고요?

그림 풀빛 제공

서천석의 내가 사랑한 그림책

아이들은 호기심 덩어리다. 아이들의 궁금증은 끊이지 않아 질문에 대한 대답을 듣기도 전에 벌써 새로운 질문이 튀어나온다. 그도 그럴 것이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은 아이에겐 새로운 것이 대부분이다. 물론 단지 모르기 때문에 궁금한 것만은 아니다.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모른다는 것은 그로 인해 위험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일으킨다. 아이들은 더 많이 알수록 안전해지고, 자신이 강해진다고 생각한다. 어두운 곳에 빛이 비쳐 환해지면 더는 무섭지 않듯 세상에 대해 알아갈수록 미지의 어두움은 사라지고 두려움도 사라질 것이란 게 아이들의 기대이다.

안타까운 점은 아이의 호기심이 부모에겐 고역이 되는 현실이다. 쉴 새 없이 터지는 아이들의 질문에 성실히 답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무엇보다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모르는 내용이 많다. 머릿속에 백과사전이나 인터넷이 연결된 컴퓨터가 있었으면 하고 바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물론 답을 안다고 해도 그것을 아이가 알아듣게 설명한다는 것은 또 다른 일이다. 그러다 보니 아이가 질문할까봐 대화를 피하고 조금 아이가 컸다 싶으면 직접 찾아보라고 스마트폰을 내민다. 그 결과는 아이에게 부모의 말이 더는 중요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부모가 중요한 정보원이 되고 있지 않아서다.

샬롯 졸로토의 시적인 글에 스테파노 비탈레가 직관적이면서 아름다운 그림을 더한 는 아이의 질문에 현명하게 답하는 부모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바람이 그치면 바람이 어디로 가는지, 왜 낮은 끝나야 하는지, 나뭇잎이 지면 어디로 가는지 아이는 모든 게 궁금하다. 그 궁금함의 밑바탕에는 현실이 사라지는 데 대한 서운함과 이제 다시 이 시간이 오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다.

아이는 끝이 날까 두렵다. 아이에게는 모든 끝이 힘들다. 하루의 끝인 밤이 싫고, 새롭게 다가올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그것을 잘 이겨낼 수 있을까 두려워서다. 졸로토가 그린 부모는 이런 아이의 두려움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흔들리지 않는 부드러움으로 아이에게 답을 한다. 무엇이든 끝나는 것은 없고 끝은 새로운 시작이라고. 나뭇잎은 떨어지면 땅속으로 들어가 새로운 잎이 나도록 도와주고, 비가 끝나면 구름이 되어 다른 비를 만들러 간다. 오늘이 끝나면 밤이 시작되고 밤이 끝나면 또 내일이 시작될 것이다. 그리고 밤도 결코 끝은 아니다. 또렷한 은빛의 달과 보랏빛 도는 까만 하늘이 아름다운 소중한 시간이다. 이 밤이 끝나면 어딘가에서 또 아름다운 밤이 시작될 것이다.

서천석 소아정신과 의사

누구나 졸로토처럼 아름답게 답하기란 어렵다. 하지만 누구나 아이 앞에서 흔들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줄 수는 있다. 두려워하지 말라고, 지금을 즐기라고, 그리고 새로운 시간을 기다리자고. 사라지는 것은 어딘가에서 새로운 출발이 이뤄지는 것이고 네겐 또다시 해가 비치는 내일이 찾아올 거라고 아이들에게 밝은 미소로 말해줄 수 있다. 그것을 위해 필요한 것은 말의 기술이 아니다. 삶에 대한 낙관주의다. 그 낙관주의 속에서 아이는 두려움을 잊고 오늘을 즐길 수 있다.

서천석 소아정신과 의사, 그림 풀빛 제공

그림 풀빛 제공

서천석의 내가 사랑한 그림책

아이들은 호기심 덩어리다. 아이들의 궁금증은 끊이지 않아 질문에 대한 대답을 듣기도 전에 벌써 새로운 질문이 튀어나온다. 그도 그럴 것이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은 아이에겐 새로운 것이 대부분이다. 물론 단지 모르기 때문에 궁금한 것만은 아니다.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모른다는 것은 그로 인해 위험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일으킨다. 아이들은 더 많이 알수록 안전해지고, 자신이 강해진다고 생각한다. 어두운 곳에 빛이 비쳐 환해지면 더는 무섭지 않듯 세상에 대해 알아갈수록 미지의 어두움은 사라지고 두려움도 사라질 것이란 게 아이들의 기대이다.

안타까운 점은 아이의 호기심이 부모에겐 고역이 되는 현실이다. 쉴 새 없이 터지는 아이들의 질문에 성실히 답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무엇보다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모르는 내용이 많다. 머릿속에 백과사전이나 인터넷이 연결된 컴퓨터가 있었으면 하고 바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물론 답을 안다고 해도 그것을 아이가 알아듣게 설명한다는 것은 또 다른 일이다. 그러다 보니 아이가 질문할까봐 대화를 피하고 조금 아이가 컸다 싶으면 직접 찾아보라고 스마트폰을 내민다. 그 결과는 아이에게 부모의 말이 더는 중요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부모가 중요한 정보원이 되고 있지 않아서다.

샬롯 졸로토의 시적인 글에 스테파노 비탈레가 직관적이면서 아름다운 그림을 더한 는 아이의 질문에 현명하게 답하는 부모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바람이 그치면 바람이 어디로 가는지, 왜 낮은 끝나야 하는지, 나뭇잎이 지면 어디로 가는지 아이는 모든 게 궁금하다. 그 궁금함의 밑바탕에는 현실이 사라지는 데 대한 서운함과 이제 다시 이 시간이 오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다.

아이는 끝이 날까 두렵다. 아이에게는 모든 끝이 힘들다. 하루의 끝인 밤이 싫고, 새롭게 다가올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그것을 잘 이겨낼 수 있을까 두려워서다. 졸로토가 그린 부모는 이런 아이의 두려움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흔들리지 않는 부드러움으로 아이에게 답을 한다. 무엇이든 끝나는 것은 없고 끝은 새로운 시작이라고. 나뭇잎은 떨어지면 땅속으로 들어가 새로운 잎이 나도록 도와주고, 비가 끝나면 구름이 되어 다른 비를 만들러 간다. 오늘이 끝나면 밤이 시작되고 밤이 끝나면 또 내일이 시작될 것이다. 그리고 밤도 결코 끝은 아니다. 또렷한 은빛의 달과 보랏빛 도는 까만 하늘이 아름다운 소중한 시간이다. 이 밤이 끝나면 어딘가에서 또 아름다운 밤이 시작될 것이다.

서천석 소아정신과 의사

누구나 졸로토처럼 아름답게 답하기란 어렵다. 하지만 누구나 아이 앞에서 흔들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줄 수는 있다. 두려워하지 말라고, 지금을 즐기라고, 그리고 새로운 시간을 기다리자고. 사라지는 것은 어딘가에서 새로운 출발이 이뤄지는 것이고 네겐 또다시 해가 비치는 내일이 찾아올 거라고 아이들에게 밝은 미소로 말해줄 수 있다. 그것을 위해 필요한 것은 말의 기술이 아니다. 삶에 대한 낙관주의다. 그 낙관주의 속에서 아이는 두려움을 잊고 오늘을 즐길 수 있다.

서천석 소아정신과 의사, 그림 풀빛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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