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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 그리고 찬란한 이별


» 딸 규리가 대학 1학년때 1분만에 그려준 아빠의 캐리커쳐딸이 유명 포털 회사에 취업을 했다. 그리고 일주일 후에 딸에게 전화가 왔다. 딸은 가벼운 이야기를 하다가 “아빠, 지금 사는 집의 세면기가 너무 불편해요. 그래서 2~3달을 집에서 살다가 다시 새집을 구해서 이사하려고 하는데 어때요?”라고 말한다. 그 말에 즉시 “안돼. 집에 들어오지마. 주인에게 고쳐달라고 해서 사용해”라고 했다. 그 말에 서운했는지 “집에 들어간다고 하면 저는 아빠가 좋아하실줄 알았는데..”라며 전혀 뜻밖이라는 투로 말꼬리를 흐린다. 그 말에 나도 왠지 서운함이 밀려온다. 하지만 딸에게 전하는 로고스는 ‘너의 인생은 온전히 너의 것이다. 이제 직장도 얻었으니 네가 스스로 알아서 살아라’란 뜻이었다.

그날 밤, 집에 들어오니 아내는 딸과 통화를 했다며 하는 말, “난, 당신이 딸이 들어온다고 하면 좋아할 줄 알았는데 의외네요”라고 한다. 이 말에 은근히 화가 났다. 아니, 수십 년을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남편의 스타일을 몰라도 한참 모르는 아내다. 이어서 아내는 낮에 아들에게 전화가 와서 통화를 했는데 오늘 아빠와 누나의 이야기를 전해주었단다. 아들의 반응을 묻자, 누나는 취업을 일찍해서 독립을 할 수 있지만 자기는 아직 군대도 갔다오지 않았기에 떠날 수가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말미에 ‘엄마, 나 집에 오래있을래요’라고 했단다. 딸로 인하여 동생에게는 직업과 독립에 대한 자각으로 전해졌다.

그리고 3일이 지난 월요일, 딸이 옥상으로 찾아왔다. 취업을 했지만 1학기가 남았기에 교수님들을 찾아뵈려고 2일간 월차를 냈다고 한다. 딸의 손에는 봉지가 쥐어져있고 ‘아빠, 빵드세요’라고 한다. 그래서 간식을 먹으면서 딸과 아내와 마주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면서 딸은 취업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지난 일주일이 너무 외로웠다고 말한다. 그 말에 징조가 느껴졌다. 그리고 이어서 세면대의 불편함을 다시 호소하며 그 집에 살기가 싫다고 말을 툭 던진다. 동시에 집에 몇 달 동안 있으면 안되겠냐고 다시 완곡하게 묻는다. 딸은 혹시나 하는 일말의 기대를 갖고 있다. 

이 순간, 아내는 나의 대답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교활한 아빠(?)’는 그 질문에 천연덕스럽고 단호하게 안된다고 했다. 그러자 아빠의 완강함에 포기를 하고 수리를 하는 쪽으로 대화가 전개되었다. 어차피 세면대는 주인의 것이고, 만일 주인이 돈을 투자해서 수리를 하면 건물의 가치가 올라가고, 또한 다음에 세를 놓을 때도 유리하다. 그러므로 주인을 만나서 사정을 이야기를 하고, 고쳐달라고 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이에 딸은 더 이상 자신의 속마음을 주장하지 못했다.

딸과의 이별은 갑자기가 아니다. 이미 작년 8월에 서울에 방을 얻어서 살고 있다. 이미 공간적으로 이별을 하고 있다. 나는 특별히 딸에게 나가라고 한 적이 없다. 하지만 딸이 집에서 나가서 살고 싶다고 해서 동의를 했다. 마치, 딸의 무의식에는 나가서 살아야 겠다는 DNA가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이별의 준비는 이미 10여 년 전부터 공식적으로 진행되었다. 

딸은 5학년부터 매달 ‘꿈점검표’를 12년간 작성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중3부터 이별하는 날을 공식적으로 점검표에 기재했다. 그 날의 기준은 딸이 대학을 졸업 하는 날이다. 그 내용은 단순하다. ‘딸이 집을 떠나는 날: 5년 3개월’ 식이었다. 그리고 매달 이별의 숫자가 한 달씩 줄어들었다. 그런데 어찌보면 1년간 휴학을 했지만 이별은 이미 현실이 되었다. 그리고 공간적인 이별에 이어서 심리적인 이별을 목전에 두고 있다.

» 5학년때부터 매월 작성된 꿈점검표에는 홀로서기 날자가 얼마나 남았는지 기록되어 있다.

두 아이가 자취를 하면서 아내는 요즘 평화시대를 누리고 있다. 두 아이가 고등학생일 때는 여느 부모와 같이 6시 전에 일어났고, 두 아이를 위하여 100일 기도를 하느라고 애를 썼다. 그런데 요즘 아내의 기상 시간은 오전 8시 정도다. 주말에는 9시에 일어나기도 한다. 늘, 잠이 많은데 두 아이를 키우느라 잠을 충분히 못잤다고 말한다. 하지만 두 아이가 자취를 하면서 충분한 수면을 취하고 있으며 시간적인 여유를 갖고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북아트 강의를 준비하고, 하루에 한 두시간은 옥상정원에서 수 십 가지의 꽃을 키우고 분갈이도 하고, 꽃에 물도 주면서 행복을 만끽하고 있다. 이만한 힐링이 어디 있으랴. 딸이 다시 집으로 들어온다는 의미는 아내의 행복을 훼손할 수도 있다는 염려도 계산에 있었다.

나는 양육의 목표를 ‘홀로서기’라고 정의했다. 아이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의 인생을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라고 10년 전에 생각했고, 꿈점검표를 통하여 구현하기 시작했다. 일종의 도우미 부모론이다. 

부모의 역할은 시대마다 다르다. 1955년~1963년에 태어난 아빠를 일컫는 베이비부머 세대라고 하며 나도 포함된다. 이 때의 아빠들은 소위 낀 세대이다. 부모를 부양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살았지만 내 자식에게는 그 것을 강요할 수도 없는 세태가 되었다. 여자의 경우, 시어머니에게 시집살이를 했지만, 며느리에게는 강요할 수가 없으며 오히려 눈치를 보기도 한다. 

하지만 지금 시대 상황을 보면 가족문화가 또 다시 요동치고 있다. 우선 인간의 수명이 길어지면서 100세 시대가 되었다. 그런데 자녀의 취업이 점점 어려워지면서 취업절벽이다. 그러면서 아이들은 대학을 졸업한 후에 3포세대, 5포세대, 그리고 집과 꿈과 희망까지도 포기하는 7포세대를 경험하고 있으며 부득불 부모와 함께 살고 있다. 그러다가 5년, 10년을 함께 살기도 하면서 진퇴양난을 경험하는데 취업문제와 함께 노후 빈곤이다. 자식이 부모의 노후자금을 곶감을 빼먹는 형국이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딸과의 이별을 미화하는 것은 사치와 같이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딸이 대학교 1학년 때, “아빠, 저 일찍 결혼해도 돼요?”라고 묻는다. 그래서 “아빠는 네가 애꾸눈을 데리고 와서 결혼한다고 해도 허락한다. 단, 네가 한 행동은 네가 모두 책임져야 한다”라고 했다. 아들은 고3 때 위의 질문을 했고 같은 대답을 했다. 이제 20살이 넘었으니 부모가 자식에게 간섭을 하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이제 자신의 행동에 대하여 스스로 책임을 질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그리고 부모는 그런 자식의 행동에 대하여 무한한 신뢰를 보내는 것으로 충분하다. 물론 세상의 일이란 한 번에 잘 되는 것보다 실패의 경우가 많다. 이제 막 대학에 들어갔다면 더 많은 실수와 실패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수업료는 반드시 학교 수업료만이 있지 않다. 인생의 수업료가 월씬 비싸다. 그러므로 젊어서 겪는 시행착오는 인생에서의 기회비용을 감소시켜준다.

이별, 그것은 그렇게 슬프지는 않다. 오히려 나는 나의 딸이 자랑스럽다. 꿈점검표와 같이 다양한 아빠의 제안에 늘 흔쾌히 따라와 준 딸이 고맙다. 미래는 준비하는 사람의 것이라는 말과 같이, 내가 10년 전부터 준비한 내용을 딸이 따라주었고, 이제 결과물이 나왔다. 그런 나에게 내가 조금은 칭찬을 해주고 싶다.

» 딸 규리가 대학 1학년때 1분만에 그려준 아빠의 캐리커쳐딸이 유명 포털 회사에 취업을 했다. 그리고 일주일 후에 딸에게 전화가 왔다. 딸은 가벼운 이야기를 하다가 “아빠, 지금 사는 집의 세면기가 너무 불편해요. 그래서 2~3달을 집에서 살다가 다시 새집을 구해서 이사하려고 하는데 어때요?”라고 말한다. 그 말에 즉시 “안돼. 집에 들어오지마. 주인에게 고쳐달라고 해서 사용해”라고 했다. 그 말에 서운했는지 “집에 들어간다고 하면 저는 아빠가 좋아하실줄 알았는데..”라며 전혀 뜻밖이라는 투로 말꼬리를 흐린다. 그 말에 나도 왠지 서운함이 밀려온다. 하지만 딸에게 전하는 로고스는 ‘너의 인생은 온전히 너의 것이다. 이제 직장도 얻었으니 네가 스스로 알아서 살아라’란 뜻이었다.

그날 밤, 집에 들어오니 아내는 딸과 통화를 했다며 하는 말, “난, 당신이 딸이 들어온다고 하면 좋아할 줄 알았는데 의외네요”라고 한다. 이 말에 은근히 화가 났다. 아니, 수십 년을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남편의 스타일을 몰라도 한참 모르는 아내다. 이어서 아내는 낮에 아들에게 전화가 와서 통화를 했는데 오늘 아빠와 누나의 이야기를 전해주었단다. 아들의 반응을 묻자, 누나는 취업을 일찍해서 독립을 할 수 있지만 자기는 아직 군대도 갔다오지 않았기에 떠날 수가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말미에 ‘엄마, 나 집에 오래있을래요’라고 했단다. 딸로 인하여 동생에게는 직업과 독립에 대한 자각으로 전해졌다.

그리고 3일이 지난 월요일, 딸이 옥상으로 찾아왔다. 취업을 했지만 1학기가 남았기에 교수님들을 찾아뵈려고 2일간 월차를 냈다고 한다. 딸의 손에는 봉지가 쥐어져있고 ‘아빠, 빵드세요’라고 한다. 그래서 간식을 먹으면서 딸과 아내와 마주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면서 딸은 취업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지난 일주일이 너무 외로웠다고 말한다. 그 말에 징조가 느껴졌다. 그리고 이어서 세면대의 불편함을 다시 호소하며 그 집에 살기가 싫다고 말을 툭 던진다. 동시에 집에 몇 달 동안 있으면 안되겠냐고 다시 완곡하게 묻는다. 딸은 혹시나 하는 일말의 기대를 갖고 있다. 

이 순간, 아내는 나의 대답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교활한 아빠(?)’는 그 질문에 천연덕스럽고 단호하게 안된다고 했다. 그러자 아빠의 완강함에 포기를 하고 수리를 하는 쪽으로 대화가 전개되었다. 어차피 세면대는 주인의 것이고, 만일 주인이 돈을 투자해서 수리를 하면 건물의 가치가 올라가고, 또한 다음에 세를 놓을 때도 유리하다. 그러므로 주인을 만나서 사정을 이야기를 하고, 고쳐달라고 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이에 딸은 더 이상 자신의 속마음을 주장하지 못했다.

딸과의 이별은 갑자기가 아니다. 이미 작년 8월에 서울에 방을 얻어서 살고 있다. 이미 공간적으로 이별을 하고 있다. 나는 특별히 딸에게 나가라고 한 적이 없다. 하지만 딸이 집에서 나가서 살고 싶다고 해서 동의를 했다. 마치, 딸의 무의식에는 나가서 살아야 겠다는 DNA가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이별의 준비는 이미 10여 년 전부터 공식적으로 진행되었다. 

딸은 5학년부터 매달 ‘꿈점검표’를 12년간 작성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중3부터 이별하는 날을 공식적으로 점검표에 기재했다. 그 날의 기준은 딸이 대학을 졸업 하는 날이다. 그 내용은 단순하다. ‘딸이 집을 떠나는 날: 5년 3개월’ 식이었다. 그리고 매달 이별의 숫자가 한 달씩 줄어들었다. 그런데 어찌보면 1년간 휴학을 했지만 이별은 이미 현실이 되었다. 그리고 공간적인 이별에 이어서 심리적인 이별을 목전에 두고 있다.

» 5학년때부터 매월 작성된 꿈점검표에는 홀로서기 날자가 얼마나 남았는지 기록되어 있다.

두 아이가 자취를 하면서 아내는 요즘 평화시대를 누리고 있다. 두 아이가 고등학생일 때는 여느 부모와 같이 6시 전에 일어났고, 두 아이를 위하여 100일 기도를 하느라고 애를 썼다. 그런데 요즘 아내의 기상 시간은 오전 8시 정도다. 주말에는 9시에 일어나기도 한다. 늘, 잠이 많은데 두 아이를 키우느라 잠을 충분히 못잤다고 말한다. 하지만 두 아이가 자취를 하면서 충분한 수면을 취하고 있으며 시간적인 여유를 갖고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북아트 강의를 준비하고, 하루에 한 두시간은 옥상정원에서 수 십 가지의 꽃을 키우고 분갈이도 하고, 꽃에 물도 주면서 행복을 만끽하고 있다. 이만한 힐링이 어디 있으랴. 딸이 다시 집으로 들어온다는 의미는 아내의 행복을 훼손할 수도 있다는 염려도 계산에 있었다.

나는 양육의 목표를 ‘홀로서기’라고 정의했다. 아이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의 인생을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라고 10년 전에 생각했고, 꿈점검표를 통하여 구현하기 시작했다. 일종의 도우미 부모론이다. 

부모의 역할은 시대마다 다르다. 1955년~1963년에 태어난 아빠를 일컫는 베이비부머 세대라고 하며 나도 포함된다. 이 때의 아빠들은 소위 낀 세대이다. 부모를 부양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살았지만 내 자식에게는 그 것을 강요할 수도 없는 세태가 되었다. 여자의 경우, 시어머니에게 시집살이를 했지만, 며느리에게는 강요할 수가 없으며 오히려 눈치를 보기도 한다. 

하지만 지금 시대 상황을 보면 가족문화가 또 다시 요동치고 있다. 우선 인간의 수명이 길어지면서 100세 시대가 되었다. 그런데 자녀의 취업이 점점 어려워지면서 취업절벽이다. 그러면서 아이들은 대학을 졸업한 후에 3포세대, 5포세대, 그리고 집과 꿈과 희망까지도 포기하는 7포세대를 경험하고 있으며 부득불 부모와 함께 살고 있다. 그러다가 5년, 10년을 함께 살기도 하면서 진퇴양난을 경험하는데 취업문제와 함께 노후 빈곤이다. 자식이 부모의 노후자금을 곶감을 빼먹는 형국이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딸과의 이별을 미화하는 것은 사치와 같이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딸이 대학교 1학년 때, “아빠, 저 일찍 결혼해도 돼요?”라고 묻는다. 그래서 “아빠는 네가 애꾸눈을 데리고 와서 결혼한다고 해도 허락한다. 단, 네가 한 행동은 네가 모두 책임져야 한다”라고 했다. 아들은 고3 때 위의 질문을 했고 같은 대답을 했다. 이제 20살이 넘었으니 부모가 자식에게 간섭을 하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이제 자신의 행동에 대하여 스스로 책임을 질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그리고 부모는 그런 자식의 행동에 대하여 무한한 신뢰를 보내는 것으로 충분하다. 물론 세상의 일이란 한 번에 잘 되는 것보다 실패의 경우가 많다. 이제 막 대학에 들어갔다면 더 많은 실수와 실패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수업료는 반드시 학교 수업료만이 있지 않다. 인생의 수업료가 월씬 비싸다. 그러므로 젊어서 겪는 시행착오는 인생에서의 기회비용을 감소시켜준다.

이별, 그것은 그렇게 슬프지는 않다. 오히려 나는 나의 딸이 자랑스럽다. 꿈점검표와 같이 다양한 아빠의 제안에 늘 흔쾌히 따라와 준 딸이 고맙다. 미래는 준비하는 사람의 것이라는 말과 같이, 내가 10년 전부터 준비한 내용을 딸이 따라주었고, 이제 결과물이 나왔다. 그런 나에게 내가 조금은 칭찬을 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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