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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성과 양육1] 왜 아이의 문제를 모두 엄마 탓으로 돌리나

» 한겨레 자료그림

어제 진료실에서 동윤이 어머님이 한 이야기가 계속 여운이 남습니다. 동윤이는 초등학교 6학년인데 투렛장애로 우리 클리닉에 다니는 또랑또랑한 남자 아이입니다. 6개월 정도 치료를 받으며 지금은 많이 호전되어 어머님이 제게 고마움을 표시하던 자리에서, 그동안 차마 못하던 속 깊은 이야기를 털어놓았습니다. 처음 아이 틱이 심할 때에는 아이를 데리고 버스나 지하철을 타는 것이 너무 고역이었다고 합니다. 누가 뭐라고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주위의 시선이 아이의 문제 행동에 대해 어머니에게 책임을 묻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어머님은 많이 괴로우셨던 것입니다. 가뜩이나 소심한 성격에 죄책감까지 더해지는 상황이 된 것이지요. 저는 어머님과의 첫 상담시간에 틱장애는 생물학적인 뇌의 기능장애이며, 어머님의 양육문제가 원인이 아니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어머님은 첫 시간의 제 말이 당시 매우 고맙고 위안이 되었더라고, 이제서야 제게 털어놓는다며 말을 이어가셨습니다.

아동의 틱장애 뿐 아니라, 아동의 성격문제, 공부 문제 등 다양한 문제들에 대해서 일부 사람들은 그 책임을 모두 부모에게, 특히 어머님에게 돌리는 경향이 있다고 저는 생각하며 이는 매우 부당하다고 느낍니다. 아동 양육서들을 보면 제목부터가 이렇게 떠들고 있습니다. 등등. 물론 아동의 성격이나 지능에 부모의 영향이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현재 우리는 이런 '환경 결정론자(혹은 양육 결정론자)'의 주장에 과도하게 매몰된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고 이를 바로잡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기질을 중시하는 제 입장에서는 아이 성격은 부모가 좌지우지 하지 못하는 면이 더 많다고 생각하며, 아이의 자존감은 주로 초등학교시절 또래관계를 통해서 확립되는 것이고, 아이 지능을 높이는 양육법 보다는 아이의 강점을 찾아서 키워주는 것이 더 바람직한데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과도하게 양육 결정론으로 흐르는 것은 '과도한 낙관론' 혹은 자기 아이만 잘되면 된다는 '속물주의적 성공주의'가 아닌지 의구심을 갖게도 합니다. 또한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맞벌이를 하는 워킹맘(working mom)들에게 과도한 죄책감을 심어주게도 됩니다.

'본성 대 양육 논쟁(nature vs. nurture debate)'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논쟁이 생소하게 들리겠지만, 서양에서는 수 세기를 끌어오던 중요한 논쟁이었습니다. 인간의 행동은 유전에 의해 결정되는가, 아니면 환경에 의해 결정되는가 하는 논쟁이지요. 진화론으로 유명한 찰스 다윈의 사촌 동생인 프랜시스 골턴이 1874년에 처음으로 '본성과 양육'이라는 용어를 공식화했으며, '우생학'이라는 용어를 만들어내며 이 논쟁에 본격적인 불을 댕겼습니다. 실용과 균형을 중시하는 동아시아의 사고와는 달리 서양 사람들은 자신의 주장을 다소 극단적으로 주장하고 밀어붙이는 듯합니다. 극단적인 생물학적 결정론(본성과 유전을 강조하는)은 나치즘에서 그 악한 모습을 보였으며, 극단적인 환경결정론(양육과 교육을 강조하는)은 공산주의의 사회개조론에서 그 일면을 찾아볼 수 있답니다. 나치즘은 우생학을 내세워 생물학적 부적격자들을 도태시켜야 한다는 이론을 실천에 옮겨서 수백만 명의 인명을 살생했으며, 이후로 극단적인 생물학적 결정론은 한동안 입에 올릴 수 없는 금기가 되었답니다.

지혜로우신 독자들은 이미 눈치 챘겠지만, 본성과 양육은 서로 배타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현대의 행동 유전학자들이나 동물 생태학자들은 유전이 변화 불가능한 숙명론이 아님을 실증하고 있고, 마찬가지로 인간이나 동물이 태어날 때 빈 도화지와 같아서 부모의 양육에 의해서 마음대로 만들어질 수 있는 '빈 서판(blank slate)'이 아님을 말하고 있습니다. 차차 이야기를 풀어가겠지만, 아동의 행동문제들 중에서 어떤 것은 부모의 양육의 문제일 수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타고난 기질이나 인지적 문제들을 부모가 간과하고 적절하지 못한 양육을 가미한 것이 문제의 진정한 원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명백한 아동 학대의 경우를 제외한다면 말이지요!). 우리는 아이의 문제를 볼 때 어떤 부분이 본성의 문제이며, 어떤 부분이 양육의 문제인지를 가리려고 노력해야 하며, 한편 어떻게 본성의 부분들을 변화시켜갈 수 있을 지 차분하게 고민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아이의 문제는 전적으로 어머니의 양육의 문제가 아니며, 그것은 본성의 문제일 수도 있고, 사회 시스템에 의한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또한, 아이는 부모의 전적인 소유물이나 창조물이 아니며, 어쩌면 사회 전체가 책임지고 돌보아야 할 사회적 자산이라고 보아야 하겠습니다.

다음 회부터 얼마간 아동의 성격, 지능, 소아정신과적 질환들에 대해서 양육과 본성 논쟁의 관점에서 자세하게 풀어써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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