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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그림 그려 작가도 되고 선물도 하니 뿌듯해요”

왼쪽부터 엄마 장차현실씨, 은혜씨. 사진 김성광 기자 

[한겨레 짬] 다운증후군 장애인 은혜씨

“좋아하는 그림을 많이 그려서 사람들에게 내 이름으로 사인도 해주고 돈도 벌 수 있어서 좋아요. 뿌듯해요.”

남다른 가족의 일상사를 솔직 유쾌하게 그려내는 만화 의 주인공 딸로 친숙한, 은혜(27)씨가 엄마의 대를 이어 그림 작가로 데뷔한 소감이다. 다운증후군을 지닌 그는 발달장애인들의 몸과 얼굴을 그리고 자작시까지 곁들인 색칠책(컬러링북) (동천사 펴냄)에 미리 챙겨 온 붓펜으로 정성스레 저자 서명을 해주며 스스로 ‘모델·배우 은혜’라고 소개했다.

장애여성네트워크인 발달장애여성연구원 ‘손잡다’와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의 기획으로 나온 이 책은 장애인이 직접 밑그림을 그린 색칠책으로는 국내 처음이다.

지난 27일 ‘또리네 집’의 작가인 엄마 장차현실(왼쪽)씨와 함께 경기도 양평에서 서울 나들이를 한 은혜씨는 출판기념회 준비로 살짝 들떠 있었다.

엄마 장차현실씨 만화교실 따라가
4년 전부터 혼자 그림 그리기 몰입
우연히 본 발달장애전문가 출간 제안
색칠책 ‘네 마음을 말해봐’ 펴내

20대 젊은 여성장애인 ‘몸과 성’ 주제
“비장애인과 소통·힐링에도 도움될듯”

“은혜가 그림을 그리게 된 것도, 책까지 내게 된 것도 모두 우연이었어요.” 엄마가 유명 만화가니까, 당연히 어릴 적부터 그림을 가르치고, 특별히 책까지 만들어줬을 것이라는 ‘짐작’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4년 전 또리가 초등학교에 입학하자 학교 앞에 그림교실을 열었어요. 처음엔 교실 청소라도 도와주면 좋겠다 싶어 은혜를 데리고 다녔는데, 웬걸, 늘 혼자 그림에 몰두해 있더라고요. 스무살 넘으면서는 자기주장도 강해진데다, 자기만의 독특한 터치를 하고 있어서 따로 가르칠 수도 없었어요. ‘서당개 풍월’인 셈이죠. 그런데 지난 2월 ‘손잡다’ 선생님들이 지나는 길에 우리 집에 들렀다가 은혜의 그림을 보더니 ‘마침 찾고 있던 작품’이라며 대뜸 책을 내자고 제안을 하더라고요.”

사실 ‘또리네 가족’ 자체가 일반적인 편견을 깬 사례다. 엄마는 26살에 은혜를 낳아 이혼을 하게 됐고, 만화를 그려 홀로 장애아를 키웠다. 2004년 장애인의 성 문제를 직설적으로 다룬 다큐멘터리 의 제작을 돕다 감독 서동일씨를 만나 재혼했다. 7년 연하의 남편과 사이에 2년 뒤 아들 ‘또리’(은백)가 태어났다. 그때부터 아빠가 육아와 살림을 도맡았고, 엄마는 보리출판사에서 내는 월간지 에 10년째 ‘또리네 집’을 연재하고 있다. 이 특별한 가족의 이야기는 많은 고정독자를 거느려 지난해부터 단행본으로 묶여 나오고 있기도 하다. 아빠 서 감독도 2008년 별난 가족의 일상사를 다큐 로 기록해 공개했다. 지금은 아이들 대상으로 영화교실을 운영하고 있고 아들 ‘은백’이도 수강생의 한 명이다.

이 책을 기획한 ‘손잡다’의 연구원 조항주씨는 “발달장애인을 위한 색칠북을 내려고 준비 중이었는데 은혜씨의 그림을 발견한 순간 ‘딱이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색칠하기는 열린 바탕에 자유롭게 그림을 완성하면서 자신만의 개성을 드러낼 수 있어 힐링과 소통에 효과적이죠. 은혜씨의 그림과 시에는 20대 여성 장애인의 욕망과 감성이 꾸밈없이 담겨 있어서,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에게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준다는 평을 받고 있고요.”

‘(매력있는 외모가 있었으면) 나는 왜… 사람들보다 다를까?… 나는 왜 사람들보다 행동에 다른 점이 있을까?… 나는 왜 성격과 생각을 어떤 점도 다르지. 말하는 대화도 역시 남보다 다를까?… 나는 남보다 외모가 다를까?… 나도 매력있는 외모가 있었더라면 좋겠다.’

실제로 책에는 또래 젊은 여성들처럼 ‘아름다운 몸과 성’에 대한 은혜씨의 갈망과 고민을 표현한 시가 자필 그대로 실려 있다. 20여장의 밑그림은 ‘장애 여성의 몸’을 주제로 한 사진전을 위해 실제 장애인들을 모델로 찍은 작품을 보고 은혜씨가 그린 것들이다. 그 자신 모델로 참여해 사진전에 출품했던, 등을 드러낸 채 뒤돌아 앉은 ‘자화상’도 들어 있다.

“책이 팔려 돈이 생기면 엄마 아빠한테 속옷 선물도 하고 동생에게도 좋아하는 걸 사주고 싶다”는 은혜씨는 “엄마처럼 만화가로 사는 건 힘들 것 같지만 앞으로도 계속 새로운 그림을 그려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주고 싶다”고 했다.

“또리를 낳은 이래 나만의 예술에 집중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는데, 어쩌다 보니 온 가족이 예술가로 변신해 요즘은 뒷바라지에 바쁘다”고 자랑 섞인 푸념을 한 ‘엄마’는 출판기념 잔치 때 차려입을 옷과 신발을 장만하러 나왔다며 서둘러 길을 나섰다.

출간 기념 북콘서트(사회 최광기)는 새달 21일 서울 홍익대 앞의 작은 재즈카페를 빌려 발달장애 청년들과 함께 할 예정이다.

김경애 기자 

왼쪽부터 엄마 장차현실씨, 은혜씨. 사진 김성광 기자 

[한겨레 짬] 다운증후군 장애인 은혜씨

“좋아하는 그림을 많이 그려서 사람들에게 내 이름으로 사인도 해주고 돈도 벌 수 있어서 좋아요. 뿌듯해요.”

남다른 가족의 일상사를 솔직 유쾌하게 그려내는 만화 의 주인공 딸로 친숙한, 은혜(27)씨가 엄마의 대를 이어 그림 작가로 데뷔한 소감이다. 다운증후군을 지닌 그는 발달장애인들의 몸과 얼굴을 그리고 자작시까지 곁들인 색칠책(컬러링북) (동천사 펴냄)에 미리 챙겨 온 붓펜으로 정성스레 저자 서명을 해주며 스스로 ‘모델·배우 은혜’라고 소개했다.

장애여성네트워크인 발달장애여성연구원 ‘손잡다’와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의 기획으로 나온 이 책은 장애인이 직접 밑그림을 그린 색칠책으로는 국내 처음이다.

지난 27일 ‘또리네 집’의 작가인 엄마 장차현실(왼쪽)씨와 함께 경기도 양평에서 서울 나들이를 한 은혜씨는 출판기념회 준비로 살짝 들떠 있었다.

엄마 장차현실씨 만화교실 따라가
4년 전부터 혼자 그림 그리기 몰입
우연히 본 발달장애전문가 출간 제안
색칠책 ‘네 마음을 말해봐’ 펴내

20대 젊은 여성장애인 ‘몸과 성’ 주제
“비장애인과 소통·힐링에도 도움될듯”

“은혜가 그림을 그리게 된 것도, 책까지 내게 된 것도 모두 우연이었어요.” 엄마가 유명 만화가니까, 당연히 어릴 적부터 그림을 가르치고, 특별히 책까지 만들어줬을 것이라는 ‘짐작’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4년 전 또리가 초등학교에 입학하자 학교 앞에 그림교실을 열었어요. 처음엔 교실 청소라도 도와주면 좋겠다 싶어 은혜를 데리고 다녔는데, 웬걸, 늘 혼자 그림에 몰두해 있더라고요. 스무살 넘으면서는 자기주장도 강해진데다, 자기만의 독특한 터치를 하고 있어서 따로 가르칠 수도 없었어요. ‘서당개 풍월’인 셈이죠. 그런데 지난 2월 ‘손잡다’ 선생님들이 지나는 길에 우리 집에 들렀다가 은혜의 그림을 보더니 ‘마침 찾고 있던 작품’이라며 대뜸 책을 내자고 제안을 하더라고요.”

사실 ‘또리네 가족’ 자체가 일반적인 편견을 깬 사례다. 엄마는 26살에 은혜를 낳아 이혼을 하게 됐고, 만화를 그려 홀로 장애아를 키웠다. 2004년 장애인의 성 문제를 직설적으로 다룬 다큐멘터리 의 제작을 돕다 감독 서동일씨를 만나 재혼했다. 7년 연하의 남편과 사이에 2년 뒤 아들 ‘또리’(은백)가 태어났다. 그때부터 아빠가 육아와 살림을 도맡았고, 엄마는 보리출판사에서 내는 월간지 에 10년째 ‘또리네 집’을 연재하고 있다. 이 특별한 가족의 이야기는 많은 고정독자를 거느려 지난해부터 단행본으로 묶여 나오고 있기도 하다. 아빠 서 감독도 2008년 별난 가족의 일상사를 다큐 로 기록해 공개했다. 지금은 아이들 대상으로 영화교실을 운영하고 있고 아들 ‘은백’이도 수강생의 한 명이다.

이 책을 기획한 ‘손잡다’의 연구원 조항주씨는 “발달장애인을 위한 색칠북을 내려고 준비 중이었는데 은혜씨의 그림을 발견한 순간 ‘딱이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색칠하기는 열린 바탕에 자유롭게 그림을 완성하면서 자신만의 개성을 드러낼 수 있어 힐링과 소통에 효과적이죠. 은혜씨의 그림과 시에는 20대 여성 장애인의 욕망과 감성이 꾸밈없이 담겨 있어서,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에게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준다는 평을 받고 있고요.”

‘(매력있는 외모가 있었으면) 나는 왜… 사람들보다 다를까?… 나는 왜 사람들보다 행동에 다른 점이 있을까?… 나는 왜 성격과 생각을 어떤 점도 다르지. 말하는 대화도 역시 남보다 다를까?… 나는 남보다 외모가 다를까?… 나도 매력있는 외모가 있었더라면 좋겠다.’

실제로 책에는 또래 젊은 여성들처럼 ‘아름다운 몸과 성’에 대한 은혜씨의 갈망과 고민을 표현한 시가 자필 그대로 실려 있다. 20여장의 밑그림은 ‘장애 여성의 몸’을 주제로 한 사진전을 위해 실제 장애인들을 모델로 찍은 작품을 보고 은혜씨가 그린 것들이다. 그 자신 모델로 참여해 사진전에 출품했던, 등을 드러낸 채 뒤돌아 앉은 ‘자화상’도 들어 있다.

“책이 팔려 돈이 생기면 엄마 아빠한테 속옷 선물도 하고 동생에게도 좋아하는 걸 사주고 싶다”는 은혜씨는 “엄마처럼 만화가로 사는 건 힘들 것 같지만 앞으로도 계속 새로운 그림을 그려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주고 싶다”고 했다.

“또리를 낳은 이래 나만의 예술에 집중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는데, 어쩌다 보니 온 가족이 예술가로 변신해 요즘은 뒷바라지에 바쁘다”고 자랑 섞인 푸념을 한 ‘엄마’는 출판기념 잔치 때 차려입을 옷과 신발을 장만하러 나왔다며 서둘러 길을 나섰다.

출간 기념 북콘서트(사회 최광기)는 새달 21일 서울 홍익대 앞의 작은 재즈카페를 빌려 발달장애 청년들과 함께 할 예정이다.

김경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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