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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듣지 않는 아이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야기 들려주기 7] 이야기를 듣지 않는 아이들

  » 한겨레 자료 사진

아이들이 듣지 않으면 아무래도 주의를 끌기 위해 몸을 움직이거나 목소리를 바꾸게 됩니다. 주의력이 산만한 아이, 이야기에 집중하지 않는 아이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는 어떤 방법을 써야 할까요?

이거 참 골치 아픈 문제로군요. 저희 도서관 직원들처럼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자발적으로 찾아오는 아이들에게 이야기하는 것과는 달리, 보육자의 경우에는 한 반의 아이들(개중에는 이야기를 듣기 싫어하는 아이도 있겠죠.)을 상대로 이야기해야 하므로 이야기를 듣지 않는 아이, 듣는데 익숙하지 않은 아이들에 대한 문제는 더욱 크게 다가오겠군요.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여러분의 이야기 방법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이야기를 듣기 싫어하는 아이, 조용히 듣지 못하는 아이가 있을 경우 왜 그럴까라고 생각해보면 몇가지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첫째로 아이들이 이야기를 받아들이지 못하게 하는 원인이 있는 경우, 즉 연령에 맞지 않는다든지, 혹은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에 있거나 몸이 안 좋은 경우입니다. 이런 경우에는 이야기를 듣게 하는 것이 어려우므로 아이가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상태가 되도록 기다리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단순히 집단으로 이야기를 듣는 데 익숙하지 않다고 하는 경우도 존재합니다. 텔레비전 시대인 요즘 아이들이 처음부터 매끄럽게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아이들은 이야기를 좋아하고, 듣는 경험을 쌓아갈수록 듣는 태도가 좋아집니다. 그러므로 처음부터 잘 안 듣는다고 해서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지금부터 말씀드릴 몇 가지에 신경을 써서 반복해서 이야기를 하시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이야기를 듣지 않는 두 번째 이유는 바로 그 이야기가 좋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선택 부분에서 말씀드렸으므로 자세히 다루지 않겠습니다만, 아이의 연령, 흥미와 동떨어진 이야기, 심리묘사나 상황 설명이 많아서 아이의 마음에 확실히 그림이 떠오르지 않는 이야기, 다음에 어떻게 될까 하는 기대감을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이야기 등 한 마디로 아이들이 ‘재미없다’라고 느끼는 이야기라면 아이들이 이야기에 집중하지 않는 것도 당연하겠지요. 한 두 명이 아니라 전체가 늘어져버리는 경우에는 이야기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그리고 만일 이야기 자체가 아이들의 관심을 끌기에 부족하다고 생각이 든다면 그것은 이야기로서 치명적인 결점이므로 아무리 이야기하는 사람이 노력을 해도 그것을 만회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어떻게든 듣게 하려고, 아이들의 관심을 붙잡아 놓으려고 무리를 하면 질문에서 지적하셨듯이, 이야기 자체에서 나온 것이 아닌 다른 것, 즉 제스처나 목소리 혹은 그림이나 인형 같은 이야기 외의 요소로 아이들을 잡아놓으려고 노력하게 됩니다.

여기서 잘 생각해보셔야 할 것은, 이러한 이야기와는 별개인 수단은 결과적으로 그 이야기 자체를 충실하게 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여러분이 크게 몸을 움직이거나, 과장된 표정을 짓거나, 괴상한 소리를 낸다면 아이들은 여러분을 쳐다보겠지요. 그리고 끝날 때까지 조용히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끝나고 나서 아이들의 마음속에 남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선생님이 이상한 흉내를 냈다, 이상한 소리를 냈다 정도가 아닐까요. 그렇다면 그것은 선생님의 쇼일 뿐, 이야기와는 다른 것이 되고 맙니다. 듣지 않는 아이를 잡아놓으려는 수단이 이야기가 아닌 다른 것을 만드는 결과를 만들지 않도록 주의하세요.

이것은 아이들이 이야기를 잘 듣지 않는 세 번째 이유인 말하는 방법에 문제가 있는 경우와 관련이 있습니다. 말하는 방법이 엉망이라서 아이들이 듣지 않는 경우가 분명 존재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일반적으로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처럼 큰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아이들이 듣지 않으면 대부분 스스로 자신의 말하는 방법이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사실은 이야기 자체가 좋지 않았던 경우가 많지 않을까요. 

말하는 방법에 문제가 있다고 한다면 이야기 하는 사람이 열의가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하나의 문제는 말하는 속도의 문제일 것입니다. 여기서 열의라고 말했습니다만, 이것은 단순히 열정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지칭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야기가 그려내는 세계를 말하는 사람이 마음속에서 확실히 생생하게 떠올리고 말할 것, 그 세계의 아름다움, 즐거움을 듣고 있는 아이들이 알아줬으면 하는 의욕을 갖고 말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말로만 떠들어대는 이야기에 아이들이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것은 당연할 테니까 말이죠. 

이야기의 속도에 대한 문제는 중요한 것이므로 나중에 좀 더 자세히 다루고자 합니다만, 간단히 말씀드리면 이야기가 너무 빠르면 아이들은 따라올 수 가 없어져서 이야기로부터 점점 멀어집니다. 아이들을 보면서 이야기한다면 아이들이 이해했는지, 아닌지를 알 수 있을 테니 그것에 맞춰 속도를 조절하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환경적인 부분, 그때그때의 기분에 관한 것입니다. 이야기를 좋아하는 아이가 이야기를 잘 하는 사람으로부터 좋은 이야기를 듣는 경우라도 왔다 갔다 하거나 큰 소리를 내는 등 주변의 아이들의 방해 요인들이 있다면 이야기를 잘 듣지 못하겠지요. 또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열어보고 싶어 견딜 수 없는 선물 상자를 무릎에 놓고 이야기를 차분히 듣기는 힘들 것입니다. 또 발산하고자 하는 에너지가 많은 아이들도 이야기에 집중하기가 힘들 것입니다. 같은 방에 동물이 들어왔다든지, 갑자기 비가 오더라도 아이들의 마음은 이야기로부터 멀어집니다.

이렇듯, 이야기를 잘 못 듣는 아이들에게도 몇 가지 경우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여러분께서는 그 이유에 대해 먼저 생각해보십시오. 그리고 그것에 따라서 어떻게 하면 좋을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자꾸 말씀드리는 것 같습니다만, 아이들이 잘 안 듣는다고 해서 이야기 외적인 요소로 관심을 끌고자 하는 것은 안 좋습니다. 반드시 이야기 그 자체로 승부해 주시길 바랍니다.

*이 글은 일본 기독교 보육 연맹에서 발행한 잡지 《기독교 보육》에 1974년 4월부터 1975년 3월까지 연재된 것입니다.

*어린이도서연구회 회보 2006년 8월호, 9월호, 10월호에 연재되었습니다.

» 한겨레 자료 사진

아이들이 듣지 않으면 아무래도 주의를 끌기 위해 몸을 움직이거나 목소리를 바꾸게 됩니다. 주의력이 산만한 아이, 이야기에 집중하지 않는 아이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는 어떤 방법을 써야 할까요?

이거 참 골치 아픈 문제로군요. 저희 도서관 직원들처럼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자발적으로 찾아오는 아이들에게 이야기하는 것과는 달리, 보육자의 경우에는 한 반의 아이들(개중에는 이야기를 듣기 싫어하는 아이도 있겠죠.)을 상대로 이야기해야 하므로 이야기를 듣지 않는 아이, 듣는데 익숙하지 않은 아이들에 대한 문제는 더욱 크게 다가오겠군요.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여러분의 이야기 방법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이야기를 듣기 싫어하는 아이, 조용히 듣지 못하는 아이가 있을 경우 왜 그럴까라고 생각해보면 몇가지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첫째로 아이들이 이야기를 받아들이지 못하게 하는 원인이 있는 경우, 즉 연령에 맞지 않는다든지, 혹은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에 있거나 몸이 안 좋은 경우입니다. 이런 경우에는 이야기를 듣게 하는 것이 어려우므로 아이가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상태가 되도록 기다리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단순히 집단으로 이야기를 듣는 데 익숙하지 않다고 하는 경우도 존재합니다. 텔레비전 시대인 요즘 아이들이 처음부터 매끄럽게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아이들은 이야기를 좋아하고, 듣는 경험을 쌓아갈수록 듣는 태도가 좋아집니다. 그러므로 처음부터 잘 안 듣는다고 해서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지금부터 말씀드릴 몇 가지에 신경을 써서 반복해서 이야기를 하시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이야기를 듣지 않는 두 번째 이유는 바로 그 이야기가 좋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선택 부분에서 말씀드렸으므로 자세히 다루지 않겠습니다만, 아이의 연령, 흥미와 동떨어진 이야기, 심리묘사나 상황 설명이 많아서 아이의 마음에 확실히 그림이 떠오르지 않는 이야기, 다음에 어떻게 될까 하는 기대감을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이야기 등 한 마디로 아이들이 ‘재미없다’라고 느끼는 이야기라면 아이들이 이야기에 집중하지 않는 것도 당연하겠지요. 한 두 명이 아니라 전체가 늘어져버리는 경우에는 이야기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그리고 만일 이야기 자체가 아이들의 관심을 끌기에 부족하다고 생각이 든다면 그것은 이야기로서 치명적인 결점이므로 아무리 이야기하는 사람이 노력을 해도 그것을 만회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어떻게든 듣게 하려고, 아이들의 관심을 붙잡아 놓으려고 무리를 하면 질문에서 지적하셨듯이, 이야기 자체에서 나온 것이 아닌 다른 것, 즉 제스처나 목소리 혹은 그림이나 인형 같은 이야기 외의 요소로 아이들을 잡아놓으려고 노력하게 됩니다.

여기서 잘 생각해보셔야 할 것은, 이러한 이야기와는 별개인 수단은 결과적으로 그 이야기 자체를 충실하게 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여러분이 크게 몸을 움직이거나, 과장된 표정을 짓거나, 괴상한 소리를 낸다면 아이들은 여러분을 쳐다보겠지요. 그리고 끝날 때까지 조용히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끝나고 나서 아이들의 마음속에 남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선생님이 이상한 흉내를 냈다, 이상한 소리를 냈다 정도가 아닐까요. 그렇다면 그것은 선생님의 쇼일 뿐, 이야기와는 다른 것이 되고 맙니다. 듣지 않는 아이를 잡아놓으려는 수단이 이야기가 아닌 다른 것을 만드는 결과를 만들지 않도록 주의하세요.

이것은 아이들이 이야기를 잘 듣지 않는 세 번째 이유인 말하는 방법에 문제가 있는 경우와 관련이 있습니다. 말하는 방법이 엉망이라서 아이들이 듣지 않는 경우가 분명 존재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일반적으로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처럼 큰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아이들이 듣지 않으면 대부분 스스로 자신의 말하는 방법이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사실은 이야기 자체가 좋지 않았던 경우가 많지 않을까요. 

말하는 방법에 문제가 있다고 한다면 이야기 하는 사람이 열의가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하나의 문제는 말하는 속도의 문제일 것입니다. 여기서 열의라고 말했습니다만, 이것은 단순히 열정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지칭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야기가 그려내는 세계를 말하는 사람이 마음속에서 확실히 생생하게 떠올리고 말할 것, 그 세계의 아름다움, 즐거움을 듣고 있는 아이들이 알아줬으면 하는 의욕을 갖고 말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말로만 떠들어대는 이야기에 아이들이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것은 당연할 테니까 말이죠. 

이야기의 속도에 대한 문제는 중요한 것이므로 나중에 좀 더 자세히 다루고자 합니다만, 간단히 말씀드리면 이야기가 너무 빠르면 아이들은 따라올 수 가 없어져서 이야기로부터 점점 멀어집니다. 아이들을 보면서 이야기한다면 아이들이 이해했는지, 아닌지를 알 수 있을 테니 그것에 맞춰 속도를 조절하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환경적인 부분, 그때그때의 기분에 관한 것입니다. 이야기를 좋아하는 아이가 이야기를 잘 하는 사람으로부터 좋은 이야기를 듣는 경우라도 왔다 갔다 하거나 큰 소리를 내는 등 주변의 아이들의 방해 요인들이 있다면 이야기를 잘 듣지 못하겠지요. 또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열어보고 싶어 견딜 수 없는 선물 상자를 무릎에 놓고 이야기를 차분히 듣기는 힘들 것입니다. 또 발산하고자 하는 에너지가 많은 아이들도 이야기에 집중하기가 힘들 것입니다. 같은 방에 동물이 들어왔다든지, 갑자기 비가 오더라도 아이들의 마음은 이야기로부터 멀어집니다.

이렇듯, 이야기를 잘 못 듣는 아이들에게도 몇 가지 경우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여러분께서는 그 이유에 대해 먼저 생각해보십시오. 그리고 그것에 따라서 어떻게 하면 좋을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자꾸 말씀드리는 것 같습니다만, 아이들이 잘 안 듣는다고 해서 이야기 외적인 요소로 관심을 끌고자 하는 것은 안 좋습니다. 반드시 이야기 그 자체로 승부해 주시길 바랍니다.

*이 글은 일본 기독교 보육 연맹에서 발행한 잡지 《기독교 보육》에 1974년 4월부터 1975년 3월까지 연재된 것입니다.

*어린이도서연구회 회보 2006년 8월호, 9월호, 10월호에 연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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