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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 황혼 육아, 또 하나의 문을 열다

 

젊은 시절 ‘남편은 바깥 일을 하고, 아이 키우는 것은 아내 몫’이라고 생각했던 한 남자가 맞벌이하는 딸의 자식을 아내와 함께 키우며 60대에 육아 일기를 썼다. “손주 키우며 뒤늦게 철이 들었다”는 한 할아버지의 고백을 들어본다.


“오늘 재영이가 제가 싼 똥을 제 발로 밟았다. (중략) 그런데 녀석의 얼굴을 보니 똥 밟은 표정이 전혀 아니었다. 그보다 ‘이게 뭘까?’ 하는 표정, 따뜻하고 쫀득쫀뜩한 그 감촉을 발바닥으로 음미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엄마가 쓴 육아 일기가 아니다. 할아버지가 쓴 손자 육아 일기의 한 대목이다. 25년 동안 댄 브라운의 등 100여 권의 책을 번역해온 작가 이창식(65·성균관대 번역대학원 겸임교수)씨가 최근 아내와 함께 돌 갓 지난 손자를 돌보며 써온 일기를 모아 를 펴냈다. 이 육아 일기에는 자장가를 부르며 손자를 안아 재우는 할아버지, 놀이터에 나가 아이처럼 노는 할아버지, 율동을 하며 동요를 부르는 할아버지, 뽀로로와 친구들의 이름을 줄줄 외우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오롯이 담겨 있다.


흔히 직장맘의 성공은 또 다른 여성의 희생이 있어야 가능하다고 한다. 맞벌이 부부가 손자를 친정이나 시댁에 맡기면, 대개 할머니들이 육아를 전담한다. 할머니가 손주를 돌보느라 끙끙대는 동안, 할아버지는 친구들과 장기나 바둑을 두거나 술을 즐기는 것이 우리에게 익숙한 광경이다. 그런데 최근 이씨처럼 손주 돌보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할아버지들이 늘고 있다. 지자체에서 실시하는 조부모 육아 교실에도 할머니뿐만 아니라 할아버지의 참가가 늘고 있다. 가사와 육아는 남녀 모두가 분담해야 한다는 사회적 인식의 변화가 조부모 육아에도 반영되고 있는 셈이다.

 
초등학교 이후로 일기를 써본 적이 없다는 그는 아내와 함께 손주를 돌보며 비로소 ‘육아의 고통’을 알게 됐다. 그는 “딸을 키울 때는 아이에게 이렇게 많은 손이 가는 줄 몰랐다”고 고백했다. 이씨는 “뒤늦게 아내에게 미안함도 느끼고 동료 의식도 생겼다. 글 쓰는 것은 익숙하니 나중에 손자가 크면 ‘함매’와 ‘하찌’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글로 기록해 증거로 보여주려고 일기를 썼다”고 말했다.

젊은 시절 그는 다른 남자들처럼 회사 일로 바빴다. 아이는 저절로 크는 줄 알았다. 남자는 바깥 일을 하고, 아이를 키우는 것은 여자 몫이라 생각했다. 번역 작가를 하기 전 세탁기와 냉장고를 파는 영업을 했는데, 오후 6시에 퇴근하면 동료들과 밤 12시까지 술을 마셨다. 아내는 전업주부였는데, 아이와 관련한 문제라도 생기면 “도대체 집에서 뭐하냐?”는 무식한 소리도 했다. 아이 데리고 나가 놀아주고 아이에게 무엇이든 허용적인 자신이 좋은 아빠라 착각했다. 


그런데 손주를 키워보니 아이 밥 먹이기조차 힘든 노동이고, 아이를 키우려면 얼마나 세심한 노력들이 필요한지 알게 됐다. 손자는 자꾸 밥을 뱉어냈다. 무공해 밀가루로 빚은 국수를 홍합 국물에 말아 계란 노른자로 만든 고명을 얹고 깨소금과 햇김을 살살 뿌려 대령해도 고개를 싹싹 돌렸다. 이씨는 아내에게 “굶기면 되지”라고 말했다가 아내에게 된통 당했다. 결국 그도 손자 밥먹이기 작전에 합류했다. 밥을 콩고물에 묻혀 먹여보기도 하고, 그가 장난감으로 손자의 주의를 빼앗으면 아내는 숟가락을 손자 입에 들이밀었다. 인터넷에 ‘밥을 뱉는 아이’를 검색해보기도 하고, 놀이터에서 미끄럼틀을 오르내리면서 김밥과 치즈를 먹이려 안간힘을 썼다. 하루는 밥을 먹인 뒤 바로 샤워를 시키면 안 된다는 사실을 모르고 샤워을 시켰다 아이가 자고 일어나 음식을 몽땅 토해낸 적도 있다. 

손자를 키우며 가슴이 출렁거릴 때도 많았다. 거실에서 방방 뛰놀던 아이가 이마를 벽 모서리에 찧어 상처가 심하게 나 응급실에 가기도 했다. 돌잔치 전날 오랜만에 모인 친척들에게 밤늦도록 손자의 재롱을 보여주다 정작 돌잔치 날 아이가 아파 잔치를 제대로 치르지 못했다. 아이가 아픈 날에는 딸 내외가 출근해야 하니 노부부가 아이를 데리고 잤는데, 밤새 애간장을 태우기도 했다. 그는 “지금이라도 인생의 황혼기를 함께 걷는 아내의 에너지가 너무 고갈되지 않도록 손주 육아를 거들고 있다”고 말했다.

‘육아의 고통’만 알게 된 것은 아니다. ‘육아의 기쁨’도 재발견했다. 자신이 하는 행동 모든 것을 그대로 따라하는 손자의 모습은 사랑스럽기만 하다. 할아버지가 뒷짐 지고 걸으면 손자도 뒷짐 지고 걷고, 맨손체조를 하면 그대로 따라한다. 커피를 후후 불고 한 모금 마신 뒤 “하아~” 하는 것도 흉내낸다. 그는 어렸을 적 자신이 불렀던 동요나 딸에게 배웠던 노래를 손자에게 들려주며 동심으로 돌아간다. 어린 시절 산딸기 따러 다니고, 산으로 들로 놀러다니던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율동을 곁들여 노래를 부르면 손자는 울다가도 울음을 뚝 그친다. 노래는 손자와 친해질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그는 “딸 내외가 아이 맡기고 난 뒤 부모 고생하는 줄 알며 고마워한다. 또 엄마에게 한 번씩 톡톡 쏘던 딸의 못된 버릇도 사라졌다. 손주 돌보는 것이 절대 밑지는 장사는 아니다. 또 자식들이 내게 하는 것을 보며 내가 우리 부모에게 어떻게 했는가도 돌아보게 된다. 아버지 돌아가시기 전 효도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러지 못한 것도 손주를 키우면서 반성했다. 이제야 철이 드는 것 같다”고 말했다.

조부모 육아를 하는 가정에서는 자녀와 양육 방식에 대한 의견 차이로 갈등을 빚곤 한다. 이씨 역시 딸과 사소한 충돌은 있어왔다. 손자가 서재로 들어와 “사탕 없어?”하면 이씨는 사탕을 꺼내주곤 했다. 아내와 딸은 치아에 해롭다며 절대 못하게 했다. 이씨는 “양육 방식에서 이견이 있으면 십중 팔구 내가 물러섰다. 그래야 갈등이 증폭 안 되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25년간 번역을 해왔는데 얼마 전 은퇴 선언을 했어요. 대수롭지 않게 육아 일기를 썼는데, 책으로 펴내니 못난 자식이라도 내 자식이라 그런지 그저 예쁘더군요. 육아 일기를 시작으로 이제는 수필이나 아이들을 위한 동화 같은 내 글을 써보고 싶어요. 하나의 문을 닫고 또 하나의 문을 연 것이죠. 손자는 이렇게 제게 새로운 인생을 선물해줬어요.”

허리, 관절, 어깨 등 자꾸 고장나는 몸이 걱정은 되지만, 그는 오늘도 일본의 베스트셀러 작가인 소노 아야코가 쓴 을 들춰보며 비장한 결심을 한다. 첫째, 늘 인생의 결재를 해둘 것. 둘째, 푸념하지 말 것. 셋째, 젊음을 시기하지 말고 참된 삶을 살 것. 넷째, 남이 해줄 거라는 기대감은 버릴 것. 다섯째, 쓸데없이 참견하지 말 것. 여섯째, 지난 이야기는 정도껏 할 것. 입곱째, 홀로 서고 혼자 즐기는 습관을 기를 것. 여덟째, 몸이 아프면 가족에게 기대지 말고 전문가를 찾을 것.

 

젊은 시절 ‘남편은 바깥 일을 하고, 아이 키우는 것은 아내 몫’이라고 생각했던 한 남자가 맞벌이하는 딸의 자식을 아내와 함께 키우며 60대에 육아 일기를 썼다. “손주 키우며 뒤늦게 철이 들었다”는 한 할아버지의 고백을 들어본다.


“오늘 재영이가 제가 싼 똥을 제 발로 밟았다. (중략) 그런데 녀석의 얼굴을 보니 똥 밟은 표정이 전혀 아니었다. 그보다 ‘이게 뭘까?’ 하는 표정, 따뜻하고 쫀득쫀뜩한 그 감촉을 발바닥으로 음미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엄마가 쓴 육아 일기가 아니다. 할아버지가 쓴 손자 육아 일기의 한 대목이다. 25년 동안 댄 브라운의 등 100여 권의 책을 번역해온 작가 이창식(65·성균관대 번역대학원 겸임교수)씨가 최근 아내와 함께 돌 갓 지난 손자를 돌보며 써온 일기를 모아 를 펴냈다. 이 육아 일기에는 자장가를 부르며 손자를 안아 재우는 할아버지, 놀이터에 나가 아이처럼 노는 할아버지, 율동을 하며 동요를 부르는 할아버지, 뽀로로와 친구들의 이름을 줄줄 외우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오롯이 담겨 있다.


흔히 직장맘의 성공은 또 다른 여성의 희생이 있어야 가능하다고 한다. 맞벌이 부부가 손자를 친정이나 시댁에 맡기면, 대개 할머니들이 육아를 전담한다. 할머니가 손주를 돌보느라 끙끙대는 동안, 할아버지는 친구들과 장기나 바둑을 두거나 술을 즐기는 것이 우리에게 익숙한 광경이다. 그런데 최근 이씨처럼 손주 돌보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할아버지들이 늘고 있다. 지자체에서 실시하는 조부모 육아 교실에도 할머니뿐만 아니라 할아버지의 참가가 늘고 있다. 가사와 육아는 남녀 모두가 분담해야 한다는 사회적 인식의 변화가 조부모 육아에도 반영되고 있는 셈이다.

 
초등학교 이후로 일기를 써본 적이 없다는 그는 아내와 함께 손주를 돌보며 비로소 ‘육아의 고통’을 알게 됐다. 그는 “딸을 키울 때는 아이에게 이렇게 많은 손이 가는 줄 몰랐다”고 고백했다. 이씨는 “뒤늦게 아내에게 미안함도 느끼고 동료 의식도 생겼다. 글 쓰는 것은 익숙하니 나중에 손자가 크면 ‘함매’와 ‘하찌’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글로 기록해 증거로 보여주려고 일기를 썼다”고 말했다.

젊은 시절 그는 다른 남자들처럼 회사 일로 바빴다. 아이는 저절로 크는 줄 알았다. 남자는 바깥 일을 하고, 아이를 키우는 것은 여자 몫이라 생각했다. 번역 작가를 하기 전 세탁기와 냉장고를 파는 영업을 했는데, 오후 6시에 퇴근하면 동료들과 밤 12시까지 술을 마셨다. 아내는 전업주부였는데, 아이와 관련한 문제라도 생기면 “도대체 집에서 뭐하냐?”는 무식한 소리도 했다. 아이 데리고 나가 놀아주고 아이에게 무엇이든 허용적인 자신이 좋은 아빠라 착각했다. 


그런데 손주를 키워보니 아이 밥 먹이기조차 힘든 노동이고, 아이를 키우려면 얼마나 세심한 노력들이 필요한지 알게 됐다. 손자는 자꾸 밥을 뱉어냈다. 무공해 밀가루로 빚은 국수를 홍합 국물에 말아 계란 노른자로 만든 고명을 얹고 깨소금과 햇김을 살살 뿌려 대령해도 고개를 싹싹 돌렸다. 이씨는 아내에게 “굶기면 되지”라고 말했다가 아내에게 된통 당했다. 결국 그도 손자 밥먹이기 작전에 합류했다. 밥을 콩고물에 묻혀 먹여보기도 하고, 그가 장난감으로 손자의 주의를 빼앗으면 아내는 숟가락을 손자 입에 들이밀었다. 인터넷에 ‘밥을 뱉는 아이’를 검색해보기도 하고, 놀이터에서 미끄럼틀을 오르내리면서 김밥과 치즈를 먹이려 안간힘을 썼다. 하루는 밥을 먹인 뒤 바로 샤워를 시키면 안 된다는 사실을 모르고 샤워을 시켰다 아이가 자고 일어나 음식을 몽땅 토해낸 적도 있다. 

손자를 키우며 가슴이 출렁거릴 때도 많았다. 거실에서 방방 뛰놀던 아이가 이마를 벽 모서리에 찧어 상처가 심하게 나 응급실에 가기도 했다. 돌잔치 전날 오랜만에 모인 친척들에게 밤늦도록 손자의 재롱을 보여주다 정작 돌잔치 날 아이가 아파 잔치를 제대로 치르지 못했다. 아이가 아픈 날에는 딸 내외가 출근해야 하니 노부부가 아이를 데리고 잤는데, 밤새 애간장을 태우기도 했다. 그는 “지금이라도 인생의 황혼기를 함께 걷는 아내의 에너지가 너무 고갈되지 않도록 손주 육아를 거들고 있다”고 말했다.

‘육아의 고통’만 알게 된 것은 아니다. ‘육아의 기쁨’도 재발견했다. 자신이 하는 행동 모든 것을 그대로 따라하는 손자의 모습은 사랑스럽기만 하다. 할아버지가 뒷짐 지고 걸으면 손자도 뒷짐 지고 걷고, 맨손체조를 하면 그대로 따라한다. 커피를 후후 불고 한 모금 마신 뒤 “하아~” 하는 것도 흉내낸다. 그는 어렸을 적 자신이 불렀던 동요나 딸에게 배웠던 노래를 손자에게 들려주며 동심으로 돌아간다. 어린 시절 산딸기 따러 다니고, 산으로 들로 놀러다니던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율동을 곁들여 노래를 부르면 손자는 울다가도 울음을 뚝 그친다. 노래는 손자와 친해질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그는 “딸 내외가 아이 맡기고 난 뒤 부모 고생하는 줄 알며 고마워한다. 또 엄마에게 한 번씩 톡톡 쏘던 딸의 못된 버릇도 사라졌다. 손주 돌보는 것이 절대 밑지는 장사는 아니다. 또 자식들이 내게 하는 것을 보며 내가 우리 부모에게 어떻게 했는가도 돌아보게 된다. 아버지 돌아가시기 전 효도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러지 못한 것도 손주를 키우면서 반성했다. 이제야 철이 드는 것 같다”고 말했다.

조부모 육아를 하는 가정에서는 자녀와 양육 방식에 대한 의견 차이로 갈등을 빚곤 한다. 이씨 역시 딸과 사소한 충돌은 있어왔다. 손자가 서재로 들어와 “사탕 없어?”하면 이씨는 사탕을 꺼내주곤 했다. 아내와 딸은 치아에 해롭다며 절대 못하게 했다. 이씨는 “양육 방식에서 이견이 있으면 십중 팔구 내가 물러섰다. 그래야 갈등이 증폭 안 되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25년간 번역을 해왔는데 얼마 전 은퇴 선언을 했어요. 대수롭지 않게 육아 일기를 썼는데, 책으로 펴내니 못난 자식이라도 내 자식이라 그런지 그저 예쁘더군요. 육아 일기를 시작으로 이제는 수필이나 아이들을 위한 동화 같은 내 글을 써보고 싶어요. 하나의 문을 닫고 또 하나의 문을 연 것이죠. 손자는 이렇게 제게 새로운 인생을 선물해줬어요.”

허리, 관절, 어깨 등 자꾸 고장나는 몸이 걱정은 되지만, 그는 오늘도 일본의 베스트셀러 작가인 소노 아야코가 쓴 을 들춰보며 비장한 결심을 한다. 첫째, 늘 인생의 결재를 해둘 것. 둘째, 푸념하지 말 것. 셋째, 젊음을 시기하지 말고 참된 삶을 살 것. 넷째, 남이 해줄 거라는 기대감은 버릴 것. 다섯째, 쓸데없이 참견하지 말 것. 여섯째, 지난 이야기는 정도껏 할 것. 입곱째, 홀로 서고 혼자 즐기는 습관을 기를 것. 여덟째, 몸이 아프면 가족에게 기대지 말고 전문가를 찾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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