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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성과 양육2] 아이는 부모 하기 나름? 너무 단순한 발상!

» 영화 한겨레 자료사진

 
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어서 '양육결정론'의 문제점에 대해서 자세히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30-40대의 젊은 부모들은 대부분 아이들과 자주 시간을 보내며 놀아주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그렇게 하지 못하는 바쁜 아버지나 맞벌이 어머니들은 죄책감을 숨기며 오늘도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는 듯합니다. '애착 육아'니 '감성 지능(emotional intelligence)'이니 하는 말이 어느 정도 상식이 되었다고 하면 과언일까요? 엊그제 대형서점에 가니 이런 제목의 책이 가판대 맨 앞을 장식하고 있더군요. "0-3세, 아빠 육아가 아이 미래를 결정한다."" 이제 아빠들까지 죄책감으로 몰아세우는 '불안 마케팅'을 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유아교육학과나 아동심리학과 등에서 공부할 때 교과서에 꼭 등장하는 연구 이야기로 논의를 시작해보겠습니다. 한국 유학생이 많고 60년대 학생운동으로도 유서가 깊은 UC 버클리의 바움린드(Diana Baumrind) 교수의 연구이지요. 이 연구는 1967년에 발표가 되었고, 32명의 미 서부 중산층 아이들과 그 어머니를 대상으로 연구가 진행되었습니다. 여담이지만, 이 아이들의 평균 IQ가 123이었다니까 버클리에서 운영하는 명문 유치원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닌가 짐작되네요. 아무튼 연구 결과는 명쾌하게 이런 결과를 말해준다고 주장합니다. 부모의 양육태도는 크게 3가지 유형으로 구별된다. 이에 따라 아이들도 3가지 행동 유형 및 태도를 보인다. 첫째, 부모가 통제는 많이 하지만 사랑이나 허용이 부족한 경우(독재형)에, 아이들은 쉽게 짜증내고 스트레스에 약하며 우울해하고 자존감이 낮다. 둘째, 부모가 사랑과 관심을 가지면서도 적절한 통제를 가하는 경우(권위형)에, 아이들은 대체로 활발하고 우호적이며 자립적이고 성취 지향적이다. 셋째, 부모가 사랑과 허용을 강조하며 아이에게 통제나 요구를 하지 않는 경우(허용형)에, 아이들은 자기중심적이고 공격적이 되며 자립심이나 자제력이 약하다. 일면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는 내용입니다.
저도 의과대학에서 수년간 학생들에게 이 내용을 강의하며, 자녀 양육에 대해서 정말 중요한 내용을 내가 가르쳤구나 하며 뿌듯해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실제 그 후로 아이 둘을 낳고 키워보니 바움린드 할머니의 가르침이 별 도움이 되지 않더라는 깨달음을 얻게 되었습니다. 아이는 내가 양육하는 대로 그렇게 멋지게(?) 자라주지 않더라는 것이지요. 이런 경우에 아마도 저보다 경험이 많으신 놀이치료의 대가님들은 아마도 저에게 더 잘해보시라고, 공감을 더 해주고 훈육의 일관성에 더 신경을 쓰라고 예의 친절한 조언을 해주실 것 같습니다. 고맙기는 하지만, 저는 좀 다른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은 부모의 양육에 의해서 그렇게 쉽게 변하는 찰흙 같은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부모의 양육 태도도 중요하지만, 아이들의 타고난 본성을 무시한 양육은 부모의 마음처럼 그렇게 원하는 대로 결과가 나오지는 않는 것입니다.
기질 및 본성을 강조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바움린드 교수의 연구를 비롯하여 그 동안의 수많은 양육 관련 사회화 연구(socialization study)들의 문제점들을 여기서 몇 가지 지적하겠습니다. 첫째는 부모와 아이가 공유하는 유전자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었다는 한계를 지적합니다. 이 연구는 권위형 부모의 아이가 활발하고 우호적인 것이 부모의 양육 때문인지, 아니면 부모와 아이가 공유한 성격 유전자의 발현에 의한 것인지 구별하지 못합니다. 아이를 영어천재로 키워냈다는 양육서의 양육법에 우리가 쉽게 동의하고 따라하지 못하는 것도, 그것이 양육법 때문이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 아닌가요? 최근 행동 유전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중산층에서 부모의 양육 방식은 아이의 성격에 차별적인 영향을 거의 미치지 못한다고 보고하고 있습니다. 중산층의 성격 양육에서는 유전의 영향이 더 크다는 결론이지요!
둘째는 아동 효과(child effect)에 대한 고려가 없다는 것입니다. 1950년대에 자폐증 아동에 대한 연구 중에서 가장 어처구니가 없는 것 1위를 꼽자면, 단연 미국의 아동양육가인 베텔하임(Bruno Bettelheim)의 냉장고 엄마(refrigerator mother) 이론일 것입니다. 엄마의 냉정한 마음과 아이에 대한 공감의 부족이 자폐증을 유발했다고 하는 것이지요. 아직도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지는 않겠지만, 여기에서의 교훈은 양육을 통해 어머니가 아이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반대로 아이도 타고난 기질 및 태도로 인해 어머니의 양육태도 및 감정(더 나아가서는 우울증까지)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일 것입니다. 자폐증 아동의 누구와도 대화하지 않으려는 병리적 태도가 어머니의 무기력증을 유발했듯이, 아동의 타고난 기질도 어머니에게 나름 개별적인 반응을 유발하게 됩니다. 산만하고 부잡한 아이들은 어머니로부터 큰소리치게 만들고, 조용하고 느린 아이는 부모를 답답함을 못 참는 잔소리꾼으로 만들 수 있지요. 형제 많은 친구에게 들은 재미있는 속담이 생각나네요. "아들 셋을 키우면 엄마가 장군이 된다!"
'문제아 뒤에는 언제나 문제 엄마가 있다' 라는 말을 우리는 흔히 듣게 되고 직관적으로 수긍하곤 합니다. 그러나 문제아 뒤에서 홀로 열심히 노력하지만 잘 되지 않아서 힘들어하는 많은 ‘좋은’ 엄마들을 생각해보신 적은 있으신가요? 올해 여름에 우리나라에 상영되었지만 거의 대중의 주목을 받지 못했던 영화 한 편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영화 이름은 '케빈에 대하여(We need to talk about Kevin)' 입니다. 이 영화는 사춘기 아들 케빈과 그의 어머니 에바의 악연(惡緣)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줄거리는 잘나가는 여행 작가인 에바가 우연한 만남과 관계로 인해 케빈을 임신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에바는 처음에는 당혹해하지만 모성을 받아들이고, 정착하여 가정을 이루고 케빈을 낳아 기르기로 합니다. 그러나 케빈은 처음부터 에바가 생각하는 그런 평범한 아이가 아니었습니다. 어려서부터 울음을 그치지 않고 엄마에게 유독 반항적 행동을 일삼으며, 엄마의 사랑을 부정하고 비웃습니다. 케빈은 계속 자라며 자잘한 악행을 이어가고, 마침내 고교생이 되어서 자신의 모교에서 석궁으로 또래들과 선생님들을 살해하는 끔찍한 사건을 저지르게 됩니다. 에바는 피해자의 부모들로부터 비난받고, 경찰서와 방송국을 전전하며 공개적으로 살인자를 길러낸 어머니라는 집단 멸시를 당하게 됩니다. 에바는 자신에게 닥친 불행을 담담하게 감수하려고 하지만, 한편으로 왜 자신에게 이런 일이 생겼는가 그 원인을 찾고 싶어하지만 아무도 알려주지 않습니다.
이 영화에 대해 어떤 블로거는 다음과 같이 평했습니다. "모성이 준비되지 않은 엄마에게서 애착관계가 형성되지 않은 아들이 끔찍한 일을 저지르게 되고, 그로 인해서 엄마가 겪어야만 하는 많은 일들을 잘 보여주는 영화!" 과연 케빈이 에바와 애착관계가 안정되게 형성되지 않아서 그런 끔찍한 일을 저지르게 되었을까요? 독자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제 생각은 좀 다릅니다. 물론 사이코패스 아들을 가지게 된 어머니의 잘못이 있다면 마땅히 따지고 반성해야 할 일이겠지만, 과학적으로 따져본다면 타고난 기질의 문제, 양육의 문제, 학교 및 또래관계의 문제, 마을 및 이웃의 문제, 입시 및 빈부격차, 불평등의 사회적 문제 등 다양한 요인들이 사이코패스를 낳고 기르고 있는 것이지, 결코 이 모든 문제를 엄마가 짊어지고 가야하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이 영화의 원작이 소설인지라 실제로 어떤 원인으로 아이가 사이코패스가 되었는지 알 수가 없답니다)
이야기가 다소 장황해진 듯합니다. 정리해보죠. 최근 미국 심리학계에서는 그동안 '양육결정론'을 뒷받침해왔던 1980년대 이전의 사회화 연구의 문제점들에 대해 깊이 반성하며, 새롭게 유전, 기질, 가족 내 양육, 사회적 영향 등을 다각도로 고려한 연구 디자인을 개발하고 이를 통해서 아동의 성격 발달에 미치는 다양한 영향력들을 세밀하게 연구하고 있습니다. 이로써 부모의 양육 실패가 아동 문제의 모든 원인이라는 일방적인 결론은 이제 그 유용성을 다했으며, 보다 새로운 시각으로 아동의 문제를 바라봐야 할 시점이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이 새로운 시각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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