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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한 딸의 첫날 밤 소식

아침 9시가 넘어서 아내가 말하길 "딸이 문자로 사진 보내왔어요"라며 보여준다. 그러면서 우유와 시리얼 사진을 보냈지만 왠지 맛이 없었다고 한다. 엄마에게는 첫날 밤의 소감이 마치 수학 여행을 간 듯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나에게는 잘 정리된 방과 부엌사진을 보냈다. 그러면서 엄마와 아빠가 오시면 파스타를 해준다고 한다. 

아침부터 기분이 짠하다. 드디어, 딸이 '가출'을 했다. 한 달 전에 취직을 했고, 회사 근처로 어제 이사를 했다. 그동안 초등학교 6학년부터 12년간 꿈 점검표를 통하여 매달 이별을 연습했는데도 불구하고, 그만 섭섭한 마음이 몰려오면서 마음이 무너지고 만다. 강심장인 나 역시 부모는 부모인가보다.

» '가출'한 딸의 아침식사. 사진 권오진.

딸은 보름 전부터 살 집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열흘 전에는 지인의 소개로 집을 봤는데 딸은 마음에 쏙 든다고 좋아했다. 하지만 아내는 밤에 가서 꼼꼼히 살펴봐야 한다며 딸과 함께 다시 그 집에 갔다. 그동안 이사를 6~7번 다니면서 전문가가 된 아내는 방문을 열어보고 적합하지 않음을 10가지나 체크한다. 더구나 그 집은 6개월간 비어 있었기에 방이나 부엌, 화장실의 상태가 좋지 않았으며 결정적으로 방문을 열자마자 동전만한 바퀴벌레를 보고 모녀는 동시에 소리를 질렀다. 결국 딸이 그 집은 포기했다. 


그리고 다시 딸은 인터넷을 통하여 집을 알아보기 시작했고, 주인이 부동산 자격증이 있기에 복비가 없는 집을 발견했다. 딸은 발칙하게도 집의 등기부등본까지 확인하는 치밀함을 보였으며 보증금이 부족하자 일부를 깎기도 했다. 물론 보증금의 전액은 딸이 준비했다. 하지만 딸이 혼자 가서 계약을 하려하자 아내는 이를 말렸고 결국 함께 가서 계약을 했다. 보이지 않는 안전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그리고 계약 전에 아내가 그 집의 상태에 대하여 치밀하게 확인을 했다. 그러면서 딸은 그동안 자신이 알고 있는 엄마가 아니라 계약에 있어서 탁월한 전문가로서의 진면목을 알게 되었다.

이사 전날밤, 딸이 책, 옷, 집기 등의 짐을 싸서 거실에 옮겨 놓으니 박스가 가득하다. 이날은 아들도 쉬는 주간이라 하숙집에서 돌아왔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집안의 집기들을 서로 가져가려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음을 발견했다. 엄마는 아이들이 가져간다고 하니 무조건 동의를 했다. 30년 전, 3명의 누이들이 시집을 간 후에 친정에 오면 어머니에게 하는 말이 생각났다. “엄마, 이거 가져가도 돼요?”라고 말하면 언제나 “그래”라고 쿨하게 말씀하셨다. 어머니에게는 그것이 비싼 것이든, 싼 것이든 상관이 없었다. 옛 말에 딸은 친정 도둑이라는 말이 있듯이, 아이들도 집에서 나가 살게 되니 사소한 것이 아쉽고, 부족하기에 가져가려는 듯하다. 아내가 동의하는 말속에서 돌아가신 어머니가 불현 듯 떠올랐다.

오전 11시 쯤 이사짐 차가 도착했다. 집에 있던 아들은 누나의 짐을 옮겨 주었고, 아내는 이삿짐 차와 함께 떠났다. 그리고 12시가 넘어서 문자가 왔다. ‘식탁에 박스가 있으니 가져오세요’ 그래서 미리 자동차에 실어 놨다. 저녁에 강의가 끝나고 딸이 이사 한 곳에 한걸음에 달려갔다. 그리고 그 박스를 주었다. 그런데 그 속에는 다름 아닌 5kg 정도의 쌀이 들어있었다. 딸은 별로 관심이 없어보인다. 그것은 분명히 쌀이었지만 혹시 딸이 굶지나 않을까 하는 노심초사에서 준비한 엄마의 마음이었다. 집안에 들어가보니 좁은 주방 겸 거실이 있었는데 주인이 설치해준 냉장고와 세탁기, 그리고 1구짜리 가스레인지가 보인다. 아내는 추석 후유증으로 어깨가 아프다고 하면서 오후 내내 나름 정리를 해주었고, 딸은 퇴근을 해서 마무리 정리를 하고 있다. 그러면서 ‘아빠, 저 이제 혼자서도 살 수 있어요’라는 당당한 표정과 눈빛으로 아빠를 쳐다본다. 하지만 아빠의 입장에선 집에 큰 방을 두고 이런 곳에 와서 살아야 한다는 사실이 애처롭기만 했다. 그동안 양육의 목표에 대하여 내가 항상 주장한 말은 ‘ 홀로서기’였다. 그리고 드디어 오늘 딸이 혼자 완전독립을 했다. 그러므로 부모의 역할을 제대로 한 듯한 생각이 든다.

밤 10시가 넘어서 딸의 집에서 출발하여 집으로 돌아왔다. 오늘 따라 어버지는 동생의 지방 출장에 동행을 해서 집에 없다. 아들도 없고, 딸도 없다. 집에 방은 많은데 달랑 부부만이 남아있다. 집안이 고요와 적막으로 가득찬다. 역시 아이들이란 품안에 있을 때의 자식이란 사실을 새삼 느낀다. 또한 품안에 있을 때, 올바른 양육과 훈육을 해야 하고, 많이 놀아주었을 때 그 가치가 들어난다는 것을 알게 된다. 딸의 자발적인 독립을 보면서 그래도 그동안 아빠 노릇을 제대로 했다는 자화자찬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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