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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이민 엄마, 아이와 말길 트는데 도움 됐으면…”

[한겨레 짬] ‘다문화 그림책’ 펴낸 신정숙씨 

(중국), (베트남), (필리핀). 최근 ‘다문화 그림책’이란 시리즈 이름을 달고 단비출판사에서 나온 중국과 베트남, 필리핀의 옛이야기책이다.

이 그림책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글이 두 개의 언어로 되어 있다. 필리핀 편을 보면 우리말 다음에 필리핀 공용어인 타갈로그어가 따라 나온다. 한글에 익숙하지 않은 ‘필리핀 엄마’라고 하더라도 타갈로그어를 알면 자녀와 함께 책을 읽을 수 있다. ‘결혼이민’을 온 엄마 나라 출신이면서 한국에 머물고 있는 화가가 직접 그림을 그린 것도 남다르다. 각 나라의 삶과 문화를 리얼하게 반영하고 있어 상상 속 그림과는 느낌이 다를 수밖에 없다. 책에 들어간 기획자의 공력 또한 주목할 만하다. 한 권의 그림책을 위해 나라별로 100편의 이야기를 모아 이 가운데 하나를 그림책용으로 새로 썼다. 기획에서 출간까지 이어진 사연도 곡진하다.

이 시리즈 기획자이며 중국과 필리핀 편 글을 쓴 신정숙(45·사진 왼쪽)씨를 지난 11일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났다. 필리핀 편 그림을 그리고 타갈로그어로 옮긴 베얼루즈 로아 빌라비센시오(32·오른쪽)도 자리를 함께했다.

엄마나라 말과 한글 함께 표기
중국, 베트남, 필리핀 편 출간
그림은 엄마나라 출신 화가가
애초 기획 10권 중 3권만 나와

“엄마 나라에도 좋은 스토리
좋은 그림 있다는 걸 알려주고파”

신씨는 이 시리즈 기획을 에서 교열기자로 일하던 2009년에 했다. “‘한겨레’에서 2009년 결혼이민 여성에 대한 심층 기획기사를 낸 적이 있었죠. 우리 필요에 의해 한국에 오신 분들인데 한국말을 배울 곳이 없어 아이들과 제대로 말을 하지 못한다고 하더군요. 마음이 아팠어요. 말을 못하는 삶은 숨을 못 쉬는 삶과 다름없으니까요.”

그는 진주 경상대를 졸업한 뒤 고 이오덕(1925~2003) 선생이 운영하던 우리말연구소에서 10년 가까이 일했다. “우리말 바로쓰기에 관심이 많았어요. 대학 졸업을 앞두고 이 선생님께 편지를 드려 배우러 가겠다고 했죠. 선생님이 졸업 전에 한번 오라고 해서 간 게 인연이 돼 10년 가까이 연구소에서 회보도 만들고 함께 일했죠.” 어린이 문학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당시 이 선생의 가르침을 통해서다.

그는 애초 결혼이민이 많은 나라 10개국을 추려 나라별로 그림책을 내고 또 나라별 옛이야기 모음집을 10권의 단행본 시리즈로 내려 했다. 당시 전국국어교사모임 교사들이 꾸려나가던 출판사 나라말도 신씨의 취지에 호응해 2010년 출판 계약을 맺었다. “교사모임의 정신적 지주였던 김수업 경상대 명예교수께서 꼭 해야 할 일이라면서 많이 격려해주셨죠.”

그는 이 기획을 위해 3년 이상 다니던 한겨레신문사를 퇴사했다. “책을 꼭 만들고 싶었어요. 야근이 잦은 신문사 부서 업무 특성상 시간을 내기 힘들었죠.”

1차로 그림책 세 권이 거의 완성된 시점에 돌발변수가 터졌다. 당시 조전혁 새누리당 의원이 나라말 출판사 경영에 현직 교사가 관여하고 있다는 점을 들추며 문제삼은 것이다. 현직 교사의 영리행위 금지 규정 위반이라는 것이다. 결국 출판사가 다른 곳으로 넘어갔다. 시리즈 기획을 책으로 펴낼 다른 출판사를 찾았지만 쉽지 않았다. “큰 출판사들은 이구동성으로 다문화 어린이책은 시장 규모가 작고 특히 그림책은 투자금 회수율도 느리다면서 난색을 보였죠.” 이미 완성된 세 권의 그림책만 우선 출판한 사연이다.

“다른 나라는 몰라도 몽골, 타이, 우즈베크, 캄보디아 쪽은 꼭 하고 싶어요. 중국과 베트남, 필리핀이 결혼이민 여성의 80%를 차지하지만, 최근엔 캄보디아 출신이 늘고 있어요.” 그는 최근 강원도교육청에서 관내 초등학교에 이번에 나온 그림책 3권을 비치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책이 다문화 가정에도 보급되면 좋겠다”고 했다.

빌라비센시오는 필리핀에서 대학을 나온 뒤 2009년 한국에 왔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디자인 전공 석사과정을 마치고 지금은 서울의 한 남성복 회사에서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다. “필리핀에서 한국에 오면 전혀 다른 세상입니다. 이 그림책을 통해 반은 필리핀인, 반은 한국인인 아이에게 필리핀은 이런 곳이고, 이런 스토리와 이런 느낌이 있다는 걸 가르쳐줄 수 있어요.”(빌라비센시오) 다문화 아이가 가진 정체성의 절반을 채우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얘기다.

그가 그림을 그린 은 오랜 옛날 무시무시한 거인에게서 불을 훔쳐낸 슈퍼영웅 라망의 이야기다. “필리핀 사람들은 슈퍼히어로 이야기를 좋아해요. 제가 그린 ‘화산 괴물’ 모습에서 돌 느낌이 나는데요. 한국인에겐 낮설지만 필리핀에선 익숙합니다. 색도 필리핀인들이 좋아하는 진한 색을 사용했죠.” 중국 편인 (그림 송춘남)엔 비단에 붓으로 그린 그림이 들어갔다. 한국과 크게 다른 중국식 정원이나 서당 풍경의 세부를 꼼꼼히 그려냈다.

“필리핀의 한국 유학생이나 한국에 유학 중인 필리핀 학생들을 통해 이야기를 수집했죠. 그런데 모은 이야기들의 상당수가 300년 이상 필리핀을 지배한 스페인에서 온 것이어서 추려내야 했죠.”(신정숙)

책에 대한 주변 반응을 묻자 신씨는 이렇게 답했다. “선생님들이 좋아하는 것 같아요. 초등 2학년 교과과정에 ‘다문화 가정’이 포함되어 있거든요. 같이 보면서 이야기하면 좋은 교재가 되겠다고 해요.” 그는 이번 책이 다문화 가정에 대한 편견을 깨는 데도 보탬이 됐으면 했다. “다문화 엄마의 나라에도 좋은 스토리와 그림이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어요. (그래서) 깔봐선 안 된다고요.”

강성만 선임기자 , 사진 이정아 기자 

(중국), (베트남), (필리핀). 최근 ‘다문화 그림책’이란 시리즈 이름을 달고 단비출판사에서 나온 중국과 베트남, 필리핀의 옛이야기책이다.

이 그림책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글이 두 개의 언어로 되어 있다. 필리핀 편을 보면 우리말 다음에 필리핀 공용어인 타갈로그어가 따라 나온다. 한글에 익숙하지 않은 ‘필리핀 엄마’라고 하더라도 타갈로그어를 알면 자녀와 함께 책을 읽을 수 있다. ‘결혼이민’을 온 엄마 나라 출신이면서 한국에 머물고 있는 화가가 직접 그림을 그린 것도 남다르다. 각 나라의 삶과 문화를 리얼하게 반영하고 있어 상상 속 그림과는 느낌이 다를 수밖에 없다. 책에 들어간 기획자의 공력 또한 주목할 만하다. 한 권의 그림책을 위해 나라별로 100편의 이야기를 모아 이 가운데 하나를 그림책용으로 새로 썼다. 기획에서 출간까지 이어진 사연도 곡진하다.

이 시리즈 기획자이며 중국과 필리핀 편 글을 쓴 신정숙(45·사진 왼쪽)씨를 지난 11일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났다. 필리핀 편 그림을 그리고 타갈로그어로 옮긴 베얼루즈 로아 빌라비센시오(32·오른쪽)도 자리를 함께했다.

엄마나라 말과 한글 함께 표기
중국, 베트남, 필리핀 편 출간
그림은 엄마나라 출신 화가가
애초 기획 10권 중 3권만 나와

“엄마 나라에도 좋은 스토리
좋은 그림 있다는 걸 알려주고파”

신씨는 이 시리즈 기획을 에서 교열기자로 일하던 2009년에 했다. “‘한겨레’에서 2009년 결혼이민 여성에 대한 심층 기획기사를 낸 적이 있었죠. 우리 필요에 의해 한국에 오신 분들인데 한국말을 배울 곳이 없어 아이들과 제대로 말을 하지 못한다고 하더군요. 마음이 아팠어요. 말을 못하는 삶은 숨을 못 쉬는 삶과 다름없으니까요.”

그는 진주 경상대를 졸업한 뒤 고 이오덕(1925~2003) 선생이 운영하던 우리말연구소에서 10년 가까이 일했다. “우리말 바로쓰기에 관심이 많았어요. 대학 졸업을 앞두고 이 선생님께 편지를 드려 배우러 가겠다고 했죠. 선생님이 졸업 전에 한번 오라고 해서 간 게 인연이 돼 10년 가까이 연구소에서 회보도 만들고 함께 일했죠.” 어린이 문학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당시 이 선생의 가르침을 통해서다.

그는 애초 결혼이민이 많은 나라 10개국을 추려 나라별로 그림책을 내고 또 나라별 옛이야기 모음집을 10권의 단행본 시리즈로 내려 했다. 당시 전국국어교사모임 교사들이 꾸려나가던 출판사 나라말도 신씨의 취지에 호응해 2010년 출판 계약을 맺었다. “교사모임의 정신적 지주였던 김수업 경상대 명예교수께서 꼭 해야 할 일이라면서 많이 격려해주셨죠.”

그는 이 기획을 위해 3년 이상 다니던 한겨레신문사를 퇴사했다. “책을 꼭 만들고 싶었어요. 야근이 잦은 신문사 부서 업무 특성상 시간을 내기 힘들었죠.”

1차로 그림책 세 권이 거의 완성된 시점에 돌발변수가 터졌다. 당시 조전혁 새누리당 의원이 나라말 출판사 경영에 현직 교사가 관여하고 있다는 점을 들추며 문제삼은 것이다. 현직 교사의 영리행위 금지 규정 위반이라는 것이다. 결국 출판사가 다른 곳으로 넘어갔다. 시리즈 기획을 책으로 펴낼 다른 출판사를 찾았지만 쉽지 않았다. “큰 출판사들은 이구동성으로 다문화 어린이책은 시장 규모가 작고 특히 그림책은 투자금 회수율도 느리다면서 난색을 보였죠.” 이미 완성된 세 권의 그림책만 우선 출판한 사연이다.

“다른 나라는 몰라도 몽골, 타이, 우즈베크, 캄보디아 쪽은 꼭 하고 싶어요. 중국과 베트남, 필리핀이 결혼이민 여성의 80%를 차지하지만, 최근엔 캄보디아 출신이 늘고 있어요.” 그는 최근 강원도교육청에서 관내 초등학교에 이번에 나온 그림책 3권을 비치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책이 다문화 가정에도 보급되면 좋겠다”고 했다.

빌라비센시오는 필리핀에서 대학을 나온 뒤 2009년 한국에 왔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디자인 전공 석사과정을 마치고 지금은 서울의 한 남성복 회사에서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다. “필리핀에서 한국에 오면 전혀 다른 세상입니다. 이 그림책을 통해 반은 필리핀인, 반은 한국인인 아이에게 필리핀은 이런 곳이고, 이런 스토리와 이런 느낌이 있다는 걸 가르쳐줄 수 있어요.”(빌라비센시오) 다문화 아이가 가진 정체성의 절반을 채우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얘기다.

그가 그림을 그린 은 오랜 옛날 무시무시한 거인에게서 불을 훔쳐낸 슈퍼영웅 라망의 이야기다. “필리핀 사람들은 슈퍼히어로 이야기를 좋아해요. 제가 그린 ‘화산 괴물’ 모습에서 돌 느낌이 나는데요. 한국인에겐 낮설지만 필리핀에선 익숙합니다. 색도 필리핀인들이 좋아하는 진한 색을 사용했죠.” 중국 편인 (그림 송춘남)엔 비단에 붓으로 그린 그림이 들어갔다. 한국과 크게 다른 중국식 정원이나 서당 풍경의 세부를 꼼꼼히 그려냈다.

“필리핀의 한국 유학생이나 한국에 유학 중인 필리핀 학생들을 통해 이야기를 수집했죠. 그런데 모은 이야기들의 상당수가 300년 이상 필리핀을 지배한 스페인에서 온 것이어서 추려내야 했죠.”(신정숙)

책에 대한 주변 반응을 묻자 신씨는 이렇게 답했다. “선생님들이 좋아하는 것 같아요. 초등 2학년 교과과정에 ‘다문화 가정’이 포함되어 있거든요. 같이 보면서 이야기하면 좋은 교재가 되겠다고 해요.” 그는 이번 책이 다문화 가정에 대한 편견을 깨는 데도 보탬이 됐으면 했다. “다문화 엄마의 나라에도 좋은 스토리와 그림이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어요. (그래서) 깔봐선 안 된다고요.”

강성만 선임기자 , 사진 이정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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