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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아 된 중2…“친구의 ‘혼내는 아빠’가 부러웠어요”


[기획] 저녁 있는 삶

③ ‘중2병’의 숨은 이유

‘저녁이 없는’ 아버지들의 삶을 보며 아이들은 지울 수 없는 상실감과 함께 커간다.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단기교육을 받는 경기새울학교에서 장시간 노동하는 아버지 아래서 크고 있는 16살 학생을 소개받아 인터뷰한 내용을 독백 형식으로 재구성했다.

민준(16·가명)이는 아빠에 대한 분노에 사로잡혀 있었다. 어린 시절 아빠는 얼굴을 볼 수 없을 정도로 바빴다. 지금은 아빠와 남처럼 지낸다. 아빠와 잘 지내고 싶은 생각이 없는 건 아니지만 아직도 아빠가 자기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믿지 못한다. 중학교 1학년 때까지는 집과 학교와 학원만 알던 ‘범생이’였다. 그러다 지독한 ‘중2병’을 앓으며 돌변했다. 친구들을 때리거나 돈을 뺏지는 않았지만 화가 나면 책상과 의자를 집어던져 교실을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선생님의 말이나 행동이 거슬릴 때는 막말을 쏟아내기도 했다. 자신의 이런 일탈조차 ‘방관’한 아빠를 보며 분노는 더 커졌다. 민준이는 ‘분노조절 장애’로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 결국 학교폭력 가해 학생이나 학교 부적응 학생이 단기교육을 받는 경기 새울학교로 가게 됐다. 거기서 상담 선생님을 만나 ‘중2병’에서 겨우 벗어나기 시작했다.

#굴욕

의사: “민준아, 담배는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거야?”

민준: “처음엔 호기심에, 두번째는 멋으로, 세번째는 친구들이랑 같이….”

의사: “아빠 때문에 피우게 된 건 아니고?”

민준: “…….”

의사: “민준이는 아빠 얘기만 나오면 입을 닫아버리네. 왜 그런 거야?”

민준: “아이, 씨…. 저게 아빠예요? 내가 같이 온 사람이 아빠예요?”

의사 선생님이 또 아빠 이야기를 꺼내 성질을 돋운다. 처음 병원에 왔을 때부터 의사 선생님은 나한테 아빠 얘기를 물었다. 그때 떠오른 건 아빠에 대한 기억이 아니라 “너희 아빠는 네 기저귀 한번 안 갈아줬다”는 엄마의 원망이었다. 기저귀 가는 게 뭐라고, 그걸 한번도 안 했다는 아빠가 나는 싫었다. 아빠는 나보다 일과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어린 시절 사진 속 나는 늘 혼자이거나 누나랑 단 둘이다. 아빠가 없어서 엄마가 카메라를 들었고, 나랑 누나만 사진에 찍혔다.

바쁜 아빠 책 한번 안 읽어줘 

의사 앞에서 “저게 아빠예요?” 

함께 가출했던 친구가 

아빠한테 잡혀가던 게 부러워

아빠에 대한 얘기를 시작하면 더 큰 굴욕을 맛봐야 한다는 걸 나는 알고 있다. 중학교 입학 선물로 할머니가 동남아 가족여행을 보내줬다. ‘더럽게’ 더웠고, 아빠랑 한 방에서 자는 게 ‘더럽게’ 어색했다. 아빠랑 단 둘이 잠을 잔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망고 먹을래?” 아빠가 물었다. “아니, 나 망고 싫어.” 그게 기억에 남은 대화의 전부다. 나는 지금도 처음 만난 여학생보다 아빠가 더 어색하고 낯설다.

어릴 적 기억 속의 나는 늘 혼자다. 어렸을 때 살았던 아파트는 꽤 커서 방이 5개나 됐는데, 그 큰 집에서 혼자 놀았다. 아무도 책을 읽어주지 않아서 내가 나에게 큰소리로 책을 읽어줬다. 책 읽어주는 게 뭐라고, 그걸 한번도 안 해준 아빠가 싫다. 나는 얼마 있지도 않은 아빠와의 기억을 지워버릴 거다.

#분노

선생님: “민준이, 너 이거 안 갖고 왔어? 그럼 교무실 가서 복사라도 해와.”

민준: “네.”

선생님: “에휴~.”

민준: “선생님, 뭐라고 했어요? 왜 한숨 쉬어요? 늙었어요?”

선생님: “뭐야? 야!”

민준: “왜요? 그러고도 선생이예요?”

선생님이 쉬는 한숨은 ‘너한테 실망이다’라는 말보다 더 치욕스럽다. 특히 등 뒤에서 한숨을 쉬는 건 눈 앞에서 내 뺨을 때리는 것보다 날 더 수치스럽게 만든다. 어른들은 늘 몰래 할 수 없는 걸 몰래 하려다 사고를 친다. 엄마는 ‘아빠가 다 널 사랑해서 그런 거야’라고 말했지만, 아빠는 자식 사랑을 너무 몰래했다. 선생님이나 아빠나 다 똑같다. 그냥 때려부수는 게 낫다. 책상이고 의자고 손에 잡히는 대로 던지고 부순 뒤 엉망진창이 된 교실을 보면 마음이 한결 낫다. 아빠는 전혀 끄떡도 안 하지만, 교실 정도는 내 마음대로 망가뜨릴 수 있어야 한다. 어른들은 망가진 내 마음을 확인하는 과정을 ‘분노조절 장애’라고 부른다.

»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이 등교하는 모습. 한겨레 강창광 기자

선생님한테 불려 온 아빠는 ‘죄송하다’고만 했다. 기저귀 한번 갈지 않고, 책 한번 안 읽어준 아빠가 선생님 앞에선 자존심을 참 쉽게도 내팽개쳐버렸다. 아빠는 날 싫어하는 선생님의 잘못은 따지지 않았다. 그래서 아빠와 선생님은 한통속이다. 아빠는 사과해야 할 대상을 잘못 골랐다.

아빠를 때릴 수 없어서 난 벽을 친다. 주먹에서 피가 뚝뚝 흐르면 그제야 마음이 가라앉는다. 아빠를 부숴버릴 수 없어서 난 교실을 부순다. 그런데도 어른들은 ‘분노를 조절하지 못한다’며 나를 걱정한다. 나의 분노를 이해하지 못하는 게 분명하다.

#기대

아빠: “민준아….”

민준: “…….”

아빠: “민준아….”

민준: “어? 어? 왜…?”

아빠: “밥 먹을래?”

민준: “어? 어….”

처음엔 엄마가 부르는 줄 알았다. 그런데 남자 목소리였다. 엄마가 부르는 내 이름과 아빠가 부르는 내 이름은 달랐다. 아빠가 굵은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부르자 갑자기 또 다른 내가 생긴 것처럼 느껴졌다. 또 다른 나는 아빠랑 다시 잘해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도 고프지 않은데 아빠가 차려준 밥을 먹었다. 하지만 아빠는 나랑 같이 식탁에 앉지 않았다. 아빠도 나를 어색해한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영식이와 영식이 아빠는 서로 싸우지만 어색해하지는 않은 것 같다. 축구선수인 영식이는 나에게 ‘아빠와 축구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 친구다. 영식이는 아빠와 옷도 사러 간다. 나는 뭐든지 엄마하고만 같이했다. 이제는 어떤 것도 아빠와 할 수가 없다.

아빠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얼마 전 아빠는 길거리에서 담배를 피고 있는 나를 보고도 못 본 척 가버렸다. 집에서 사흘 동안 아빠는 내 이름을 부르지도, 나를 보지도 않았다. 아빠는 나를 혼내지 않는다. 아빠는 나에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영식이한테는 ‘혼내는 아빠’가 있다. 영식이는 무릎을 다쳐 축구를 못하고 집에서 쉴 때 나와 함께 ‘가출’을 했다. 영식이 아빠는 영식이를 잡아다가 미용실에 데리고 가서 ‘반삭발’을 시켰다. 반삭발은 부럽지 않았다. ‘혼내는 아빠’가 부러웠다.

학교 부적응으로 새울학교 와 

폭력 말리던 선생님 포옹에 눈물 

중2병 나으니 “아빠는 좋은 사람 

다만 시간이 없었을 뿐”

#연민

민준: “아, 이거 놓으라구요! 이거 놔요!”

선생님: “민준아, 민준아. 괜찮아, 괜찮아, 민준아.”

민준: “아, 씨. 놔요! 놓으라구요!”

선생님: “민준아, 진정해. 괜찮아.”

내가 교실을 때려부술 때 아무도 나를 말리지 않았다. 새울학교에서 만난 최기영 선생님은 달랐다. ‘돌아버린’ 내가 책상과 의자를 손에 잡히는대로 던질 때 뛰어들어 나를 뒤에서 꽉 잡았다. 그리고 내 이름을 열심히 불렀다. ‘괜찮다’고 했다. 선생님의 넓은 가슴과 강한 팔은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선생님이 나를 놓지 않을 거라는 사실이 좋았다. 선생님을 울리면 울렸지 선생님 앞에서 운 적이 없었는데 ‘기영쌤’한테 잡힌 채 어린애처럼 울어버렸다. 그 뒤로는 교실을 때려부수는 게 귀찮아졌다. ‘중2병’에 걸렸던 게 창피했다.

새울학교에 다니면서 일주일에 한번씩 아빠와 정신과에 간다. 아빠는 가끔 “아들”하며 날 부르고 말을 건넨다. 의사 선생님이 시킨 모양이다. 사람이 바뀌면 죽는다는데 아빠가 죽을까봐 겁도 난다. 아빠와 ‘같이’ 있는 건 아직도 익숙하지 않다. 그래도 집에 아빠가 ‘있는’ 건 좋다.

하지만 나와 달리 일을 그만두고 집에만 있는 아빠는 불행해 보인다. 아빠는 집에서 늘 혼자서 밥을 먹는다. 아빠는 집 밖에서 계속 바빴어야 했다. 아빠는 집에 돌아오지 말았어야 했다. 이렇게 돌아올 줄 알았다면, 집 밖에만 있으면 안 되는 거였다.

아빠는 좋은 사람이다. 열심히 일하고 돈도 잘 벌었다. 다만 시간이 없었을 뿐이다. 그런데 슈퍼맨 같은 아빠가 유독 시간만 낼 수 없었던 것인지에 대해선 아직 이해가 되지 않는다.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

(*한겨레 신문 2014년 10월 21일자)


[기획] 저녁 있는 삶

③ ‘중2병’의 숨은 이유

‘저녁이 없는’ 아버지들의 삶을 보며 아이들은 지울 수 없는 상실감과 함께 커간다.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단기교육을 받는 경기새울학교에서 장시간 노동하는 아버지 아래서 크고 있는 16살 학생을 소개받아 인터뷰한 내용을 독백 형식으로 재구성했다.

민준(16·가명)이는 아빠에 대한 분노에 사로잡혀 있었다. 어린 시절 아빠는 얼굴을 볼 수 없을 정도로 바빴다. 지금은 아빠와 남처럼 지낸다. 아빠와 잘 지내고 싶은 생각이 없는 건 아니지만 아직도 아빠가 자기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믿지 못한다. 중학교 1학년 때까지는 집과 학교와 학원만 알던 ‘범생이’였다. 그러다 지독한 ‘중2병’을 앓으며 돌변했다. 친구들을 때리거나 돈을 뺏지는 않았지만 화가 나면 책상과 의자를 집어던져 교실을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선생님의 말이나 행동이 거슬릴 때는 막말을 쏟아내기도 했다. 자신의 이런 일탈조차 ‘방관’한 아빠를 보며 분노는 더 커졌다. 민준이는 ‘분노조절 장애’로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 결국 학교폭력 가해 학생이나 학교 부적응 학생이 단기교육을 받는 경기 새울학교로 가게 됐다. 거기서 상담 선생님을 만나 ‘중2병’에서 겨우 벗어나기 시작했다.

#굴욕

의사: “민준아, 담배는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거야?”

민준: “처음엔 호기심에, 두번째는 멋으로, 세번째는 친구들이랑 같이….”

의사: “아빠 때문에 피우게 된 건 아니고?”

민준: “…….”

의사: “민준이는 아빠 얘기만 나오면 입을 닫아버리네. 왜 그런 거야?”

민준: “아이, 씨…. 저게 아빠예요? 내가 같이 온 사람이 아빠예요?”

의사 선생님이 또 아빠 이야기를 꺼내 성질을 돋운다. 처음 병원에 왔을 때부터 의사 선생님은 나한테 아빠 얘기를 물었다. 그때 떠오른 건 아빠에 대한 기억이 아니라 “너희 아빠는 네 기저귀 한번 안 갈아줬다”는 엄마의 원망이었다. 기저귀 가는 게 뭐라고, 그걸 한번도 안 했다는 아빠가 나는 싫었다. 아빠는 나보다 일과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어린 시절 사진 속 나는 늘 혼자이거나 누나랑 단 둘이다. 아빠가 없어서 엄마가 카메라를 들었고, 나랑 누나만 사진에 찍혔다.

바쁜 아빠 책 한번 안 읽어줘 

의사 앞에서 “저게 아빠예요?” 

함께 가출했던 친구가 

아빠한테 잡혀가던 게 부러워

아빠에 대한 얘기를 시작하면 더 큰 굴욕을 맛봐야 한다는 걸 나는 알고 있다. 중학교 입학 선물로 할머니가 동남아 가족여행을 보내줬다. ‘더럽게’ 더웠고, 아빠랑 한 방에서 자는 게 ‘더럽게’ 어색했다. 아빠랑 단 둘이 잠을 잔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망고 먹을래?” 아빠가 물었다. “아니, 나 망고 싫어.” 그게 기억에 남은 대화의 전부다. 나는 지금도 처음 만난 여학생보다 아빠가 더 어색하고 낯설다.

어릴 적 기억 속의 나는 늘 혼자다. 어렸을 때 살았던 아파트는 꽤 커서 방이 5개나 됐는데, 그 큰 집에서 혼자 놀았다. 아무도 책을 읽어주지 않아서 내가 나에게 큰소리로 책을 읽어줬다. 책 읽어주는 게 뭐라고, 그걸 한번도 안 해준 아빠가 싫다. 나는 얼마 있지도 않은 아빠와의 기억을 지워버릴 거다.

#분노

선생님: “민준이, 너 이거 안 갖고 왔어? 그럼 교무실 가서 복사라도 해와.”

민준: “네.”

선생님: “에휴~.”

민준: “선생님, 뭐라고 했어요? 왜 한숨 쉬어요? 늙었어요?”

선생님: “뭐야? 야!”

민준: “왜요? 그러고도 선생이예요?”

선생님이 쉬는 한숨은 ‘너한테 실망이다’라는 말보다 더 치욕스럽다. 특히 등 뒤에서 한숨을 쉬는 건 눈 앞에서 내 뺨을 때리는 것보다 날 더 수치스럽게 만든다. 어른들은 늘 몰래 할 수 없는 걸 몰래 하려다 사고를 친다. 엄마는 ‘아빠가 다 널 사랑해서 그런 거야’라고 말했지만, 아빠는 자식 사랑을 너무 몰래했다. 선생님이나 아빠나 다 똑같다. 그냥 때려부수는 게 낫다. 책상이고 의자고 손에 잡히는 대로 던지고 부순 뒤 엉망진창이 된 교실을 보면 마음이 한결 낫다. 아빠는 전혀 끄떡도 안 하지만, 교실 정도는 내 마음대로 망가뜨릴 수 있어야 한다. 어른들은 망가진 내 마음을 확인하는 과정을 ‘분노조절 장애’라고 부른다.

»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이 등교하는 모습. 한겨레 강창광 기자

선생님한테 불려 온 아빠는 ‘죄송하다’고만 했다. 기저귀 한번 갈지 않고, 책 한번 안 읽어준 아빠가 선생님 앞에선 자존심을 참 쉽게도 내팽개쳐버렸다. 아빠는 날 싫어하는 선생님의 잘못은 따지지 않았다. 그래서 아빠와 선생님은 한통속이다. 아빠는 사과해야 할 대상을 잘못 골랐다.

아빠를 때릴 수 없어서 난 벽을 친다. 주먹에서 피가 뚝뚝 흐르면 그제야 마음이 가라앉는다. 아빠를 부숴버릴 수 없어서 난 교실을 부순다. 그런데도 어른들은 ‘분노를 조절하지 못한다’며 나를 걱정한다. 나의 분노를 이해하지 못하는 게 분명하다.

#기대

아빠: “민준아….”

민준: “…….”

아빠: “민준아….”

민준: “어? 어? 왜…?”

아빠: “밥 먹을래?”

민준: “어? 어….”

처음엔 엄마가 부르는 줄 알았다. 그런데 남자 목소리였다. 엄마가 부르는 내 이름과 아빠가 부르는 내 이름은 달랐다. 아빠가 굵은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부르자 갑자기 또 다른 내가 생긴 것처럼 느껴졌다. 또 다른 나는 아빠랑 다시 잘해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도 고프지 않은데 아빠가 차려준 밥을 먹었다. 하지만 아빠는 나랑 같이 식탁에 앉지 않았다. 아빠도 나를 어색해한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영식이와 영식이 아빠는 서로 싸우지만 어색해하지는 않은 것 같다. 축구선수인 영식이는 나에게 ‘아빠와 축구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 친구다. 영식이는 아빠와 옷도 사러 간다. 나는 뭐든지 엄마하고만 같이했다. 이제는 어떤 것도 아빠와 할 수가 없다.

아빠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얼마 전 아빠는 길거리에서 담배를 피고 있는 나를 보고도 못 본 척 가버렸다. 집에서 사흘 동안 아빠는 내 이름을 부르지도, 나를 보지도 않았다. 아빠는 나를 혼내지 않는다. 아빠는 나에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영식이한테는 ‘혼내는 아빠’가 있다. 영식이는 무릎을 다쳐 축구를 못하고 집에서 쉴 때 나와 함께 ‘가출’을 했다. 영식이 아빠는 영식이를 잡아다가 미용실에 데리고 가서 ‘반삭발’을 시켰다. 반삭발은 부럽지 않았다. ‘혼내는 아빠’가 부러웠다.

학교 부적응으로 새울학교 와 

폭력 말리던 선생님 포옹에 눈물 

중2병 나으니 “아빠는 좋은 사람 

다만 시간이 없었을 뿐”

#연민

민준: “아, 이거 놓으라구요! 이거 놔요!”

선생님: “민준아, 민준아. 괜찮아, 괜찮아, 민준아.”

민준: “아, 씨. 놔요! 놓으라구요!”

선생님: “민준아, 진정해. 괜찮아.”

내가 교실을 때려부술 때 아무도 나를 말리지 않았다. 새울학교에서 만난 최기영 선생님은 달랐다. ‘돌아버린’ 내가 책상과 의자를 손에 잡히는대로 던질 때 뛰어들어 나를 뒤에서 꽉 잡았다. 그리고 내 이름을 열심히 불렀다. ‘괜찮다’고 했다. 선생님의 넓은 가슴과 강한 팔은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선생님이 나를 놓지 않을 거라는 사실이 좋았다. 선생님을 울리면 울렸지 선생님 앞에서 운 적이 없었는데 ‘기영쌤’한테 잡힌 채 어린애처럼 울어버렸다. 그 뒤로는 교실을 때려부수는 게 귀찮아졌다. ‘중2병’에 걸렸던 게 창피했다.

새울학교에 다니면서 일주일에 한번씩 아빠와 정신과에 간다. 아빠는 가끔 “아들”하며 날 부르고 말을 건넨다. 의사 선생님이 시킨 모양이다. 사람이 바뀌면 죽는다는데 아빠가 죽을까봐 겁도 난다. 아빠와 ‘같이’ 있는 건 아직도 익숙하지 않다. 그래도 집에 아빠가 ‘있는’ 건 좋다.

하지만 나와 달리 일을 그만두고 집에만 있는 아빠는 불행해 보인다. 아빠는 집에서 늘 혼자서 밥을 먹는다. 아빠는 집 밖에서 계속 바빴어야 했다. 아빠는 집에 돌아오지 말았어야 했다. 이렇게 돌아올 줄 알았다면, 집 밖에만 있으면 안 되는 거였다.

아빠는 좋은 사람이다. 열심히 일하고 돈도 잘 벌었다. 다만 시간이 없었을 뿐이다. 그런데 슈퍼맨 같은 아빠가 유독 시간만 낼 수 없었던 것인지에 대해선 아직 이해가 되지 않는다.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

(*한겨레 신문 2014년 10월 2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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