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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 스타트업 열풍…실리콘밸리를 꿈꾼다

지난달 27일 파리시내 창업보육공간 누마에서 창업 준비자들이 작업에 열중하고 있다.

파리 곳곳 ‘창업 인큐베이터’ 공간
최고 인재들 취업 대신 창업 택해
남부도시 툴루즈까지 확산 중
중소기업 창업 절차 간소화로
5일만에 ‘뚝딱’ 유럽서 가장 쉬워
정부 신산업 육성 위해 적극 투자
연 1500만유로 지원 ‘프렌치테크’도“유치원 및 초등학교가 당사의 우선순위입니다. ‘스카이’(SKY) 대학 수준에 도달하려면 아이들은 유아원 때부터 준비해야 합니다.”

지난달 28일 프랑스 파리의 기업 클러스터인 ‘캡 디지털’(cap digital)에서 만난 유아용 수학 학습 프로그램 애플리케이션 스타트업 업체 ‘마이블리’의 설립자인 레티시아 그레일은 서툰 한국어로 쓴 프레젠테이션 문서를 들고 한국에서 찾아간 기자에게 열심히 자신의 기업 제품을 설명했다. 그는 “한국의 사교육 열풍을 알고 있다. 한국 투자자를 찾고 있다”고도 말했다. 그래서 이른바 ‘스카이’를 알고 있었다. 지난달 30일 프랑스 남부 도시 툴루즈에서 만난 또다른 스타트업 업체 관계자는 미슐랭 가이드의 별을 받은 유명 레스토랑 셰프의 조리법과 식재료를 소비자가 구입해 집에서 그대로 유명 레스토랑 요리를 따라할 수 있게 하는 앱을 소개했다.

스타트업이란 정확한 정의는 없는 용어지만 1990년대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쓰이기 시작한 말로 대규모 자금 조달을 하기 전의 벤처기업을 지칭한다. 간단히 말하면 신생기업인데 주로 정보기술(IT) 관련 기업이 많다. 오랫동안 스타트업 창업을 대표하는 곳은 실리콘밸리였지만, 미식과 관광, 예술의 나라라는 이미지가 강한 프랑스에서도 젊은이들의 스타트업 창업 열정이 최근 뜨겁다.

지난달 27일 찾아간 파리 시내에 있는 창업보육공간인 누마에서도 스타트업 창업 열기를 느낄 수 있었다. 6층짜리 이 건물은 층별로 스타트업 창업 단계에 따라 이용자를 나누어 놓았다. 입구에 있는 1층은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하는 곳으로 한편에는 커피를 주문할 수 있는 공간도 있어서, 얼핏 보면 일반 카페와 별반 달라 보이지 않는다. 누마 관계자는 “프로젝트별로 팀을 이루고 시제품도 만들어본다. 나중에 구체화 단계까지 간 사람은 투자금도 유치한다. 1년 예산으로 250만유로 정도가 드는데 70%는 사용자에게 부과하는 요금 등으로 들어오는 자체 예산이고 30%는 기업 파트너와 공공기관 지원으로 충당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파리에 누마 같은 스타트업 창업 공간이 여럿 있다. 최근에는 낡은 창고건물 ‘알 프레시네’를 1000개 이상의 스타트업이 입주하는 공간으로 탈바꿈시키는 프로젝트도 진행 중으로 알고 있다”며 “요새는 최고의 인재들은 취업 대신 창업을 하려는 경향이 많아서 대기업 채용 담당자들이 인재 채용에 애를 먹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고 말했다.

디지털 기업 클러스터인 캡 디지털 관계자는 “우리는 일종의 협회로 스타트업과 대기업 간의 만남 등을 주선하고 있다. 우리와 함께했던 기업 중에는 일본 소프트뱅크의 투자를 받아 페퍼라는 로봇을 만든 기업인 알데바란도 있다”고 말했다. 프랑스의 스타트업 열기는 파리와 주변 도시를 넘어 지방으로도 확산되고 있다. 대표적인 도시가 남부 도시 툴루즈다. 툴루즈 지역에는 디지털 분야에 2000여개 기업이 있다. 에어버스 본사가 위치한 툴루즈는 전통적 항공우주산업 지역이라는 장점과 파리 다음으로 많은 10만여명의 대학생이 집중돼 있는 이점을 활용해 항공우주·의료 등 분야의 스타트업을 집중 육성하고 있다.

프랑스 스타트업 열풍 뒤에는 정부의 강력한 육성 지원도 한몫을 한다. 수출진흥청과 투자진흥청이 통합된 정부기관인 비즈니스프랑스의 뮈리엘 페니코는 “올해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소비자가전전시회(CES)에 프랑스 스타트업 66곳이 참여했는데 이는 미국 다음으로 많은 수”라며 “중소기업 창업 절차 등을 간소화해 스타트업 같은 중소기업은 4~5일 만에 창업이 가능하게 했다. 이는 유럽 내에서는 창업에 걸리는 시간이 가장 빠른 경우”라고 말했다.

프랑스 재무부의 프렌치 테크 담당 국장인 다비드 몽토는 프랑스 스타트업 발전을 지원하는 이유로 프랑스 산업구조 문제를 꼽았다. 프렌치 테크란 신생기업의 창업을 촉진하기 위해 프랑스 정부가 올해부터 연간 1500만유로를 지원하는 제도로, 프렌치 테크에 선정된 기업들을 위해 자금조달, 공공기관과의 협업 등을 연결해준다. 프랑스는 프렌치 테크를 파리 외에 툴루즈, 릴, 보르도, 낭트 등 9개 도시에 두고 있다. 몽토 국장은 “ 100대 기업으로 꼽힌 기업 중 프랑스 기업이 유럽에서는 제일 많다. 그런데 이 대기업들이 속한 전통산업 분야가 전부 디지털 전환에 문제가 있는 분야다. (명품 기업인) 에르메스, 루이뷔통, (에너지기업) 토탈 같은 대기업들이 스스로 디지털로 전환하기는 쉽지 않다. 심지어 미국의 페이스북도 혁신을 위해 끊임없이 스타트업들을 사들이고 있지 않나”라고 말했다. 그는 “스타트업이 고용에도 가장 많이 이바지하기 때문에 눈여겨보고 있다”고 말했다. 몽토 국장은 파리에만 스타트업이 약 4000개 있으며 이는 영국 런던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했다.

현재 프랑스의 경제 전망이 아주 밝은 것만은 아니다. 프랑스의 지난해 12월 실업률은 10.3%로 유로존(유로화를 쓰는 유럽 19개국) 평균 11.4%보다 약간 나은 정도다. 유럽통계청에 따르면 유로존 물가상승률은 1월에도 -0.6%를 기록할 것으로 보여, 디플레이션 우려가 커지고 있다.

파리·툴루즈/글·사진 조기원 기자 garden@hani.co.kr

파리의 괴짜 IT 교육기관 에콜42, 졸업장 안보고 선발, 실습으로만 교육

150개 프로젝트로 스스로 깨쳐
기업에 스카우트되거나 학교 내 창업

지난달 26일 프랑스 파리에 있는 정보기술(IT) 교육기관 에콜42로 들어서자 컴퓨터 수백대가 있는 큰 방에 젊은이들이 각자 프로그램을 짜거나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교육기관이라고는 하지만 건물 어디에서도 강의를 하는 모습은 눈에 띄지 않았다. 교실과 칠판 같은 전통적 교육기관의 시설 자체가 없었다. 오히려 건물 한편에는 게임기 몇 대까지 놓여 있었다. 학생은 2500명인데 교수는 5명뿐이다. 학생들이 계단 난간 등에 빨래까지 널어놓은 모습도 보였다.

니콜라 사디라크 에콜42 교장.

에콜42는 프랑스 통신기업의 회장인 그자비에 니엘이 내놓은 돈으로 2013년에 설립된 사립 교육기관으로 프랑스 교육제도 안에서도 이례적인 존재다. 프랑스 고등교육은 보통 고등학교 졸업시험인 바칼로레아에 합격해 일반 대학에 가거나, 아니면 프레파로 불리는 2년짜리 중간 준비과정을 거쳐 엘리트 교육기관인 그랑제콜에 들어가는 식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에콜42의 입학 요건에는 바칼로레아는 물론 어떤 학력 제한도 없다.

에콜42가 학력 파괴와 기존 학교교육 탈피를 주장하게 된 데는 특별한 계기가 있었다. 에콜42의 공동설립자인 니콜라 사디라크 교장은 이날 “니엘 회장이 운영하는 회사에 방리외(빈민층 등이 많이 거주하는 교외지역) 출신 학생이 있었는데 일을 상당히 잘했다. 니엘 회장이 면담에서 이 학생이 원래는 기존 교육과정에서 탈락해 방리외에서 햄스터를 팔며 생활하다가 우연히 학교 중퇴자 선발 프로그램으로 교육과정을 이수한 사실을 알게 됐다. 기존 교육과정에서 탈락한 아이들 중에서도 재능 있는 아이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에 새로운 학교를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사디라크 교장은 학교 한편에서 키우는 햄스터를 가리키며 “그래서 이 햄스터가 우리 학교의 마스코트”라고도 말했다.

사디라크 교장은 “프랑스 교육은 대부분 무상이지만 사회구조적 불평등은 있다”며 “다만, 에콜42의 교육 목표가 불평등 해소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 학교의 교육 목표는 기존 교과과정을 이수했는지 여부로 차별은 하지 않되, 정보기술 분야에 재능이 있는 아이들을 자유롭게 교육하는 데 있으며 선발도 까다롭다. 학생 선발은 18~30살 지원자를 대상으로 인터넷으로 시험을 치러 우선 4000명을 걸러낸다. 지금까지 지원자는 7만여명이었다고 사디라크 교장은 말했다. 이렇게 뽑힌 4000명을 대상으로 합숙하며 팀 프로젝트를 하는 시험을 통해 1000명을 다시 추린다. 이렇게 선발된 학생들은 무료로 학교에 다니며 24시간 학교 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 졸업할 때까지 약 150개의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3~5년간의 수학 과정을 거치도록 되어 있다. 이 학교에서 공부한 학생들의 일부는 세계적 정보기술 기업에 스카우트되기도 했고, 일부는 학교 내에서 창업하기도 했다.

사디라크 교장은 “우리 교육과정은 워크래프트 게임을 하듯 학생들이 단계 단계를 깨나가는 식으로 이뤄진다. 연구자 수준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고 활용 능력과 통합 능력을 본다. 우리가 패션학교 등과 협업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프랑스는 세계 5위 경제대국이지만 정보기술 분야에서는 세계 25위밖에 되지 않는다. 우리 교육을 통해 한해 정보기술 관련 인재 1000여명이 새로운 일자리를 찾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 학교 학생 레미 압레스(19)는 “바칼로레아에 합격하고 프레파를 다니다 이론 위주 교육이 싫어서 1년 반 만에 그만뒀다”며 “현재 3D 시뮬레이션 등에 대해 공부하고 있는데 이론을 현실에 적용해보는 게 재미있다”고 말했다.

파리/글·사진 조기원 기자

지난달 27일 파리시내 창업보육공간 누마에서 창업 준비자들이 작업에 열중하고 있다.

파리 곳곳 ‘창업 인큐베이터’ 공간
최고 인재들 취업 대신 창업 택해
남부도시 툴루즈까지 확산 중
중소기업 창업 절차 간소화로
5일만에 ‘뚝딱’ 유럽서 가장 쉬워
정부 신산업 육성 위해 적극 투자
연 1500만유로 지원 ‘프렌치테크’도“유치원 및 초등학교가 당사의 우선순위입니다. ‘스카이’(SKY) 대학 수준에 도달하려면 아이들은 유아원 때부터 준비해야 합니다.”

지난달 28일 프랑스 파리의 기업 클러스터인 ‘캡 디지털’(cap digital)에서 만난 유아용 수학 학습 프로그램 애플리케이션 스타트업 업체 ‘마이블리’의 설립자인 레티시아 그레일은 서툰 한국어로 쓴 프레젠테이션 문서를 들고 한국에서 찾아간 기자에게 열심히 자신의 기업 제품을 설명했다. 그는 “한국의 사교육 열풍을 알고 있다. 한국 투자자를 찾고 있다”고도 말했다. 그래서 이른바 ‘스카이’를 알고 있었다. 지난달 30일 프랑스 남부 도시 툴루즈에서 만난 또다른 스타트업 업체 관계자는 미슐랭 가이드의 별을 받은 유명 레스토랑 셰프의 조리법과 식재료를 소비자가 구입해 집에서 그대로 유명 레스토랑 요리를 따라할 수 있게 하는 앱을 소개했다.

스타트업이란 정확한 정의는 없는 용어지만 1990년대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쓰이기 시작한 말로 대규모 자금 조달을 하기 전의 벤처기업을 지칭한다. 간단히 말하면 신생기업인데 주로 정보기술(IT) 관련 기업이 많다. 오랫동안 스타트업 창업을 대표하는 곳은 실리콘밸리였지만, 미식과 관광, 예술의 나라라는 이미지가 강한 프랑스에서도 젊은이들의 스타트업 창업 열정이 최근 뜨겁다.

지난달 27일 찾아간 파리 시내에 있는 창업보육공간인 누마에서도 스타트업 창업 열기를 느낄 수 있었다. 6층짜리 이 건물은 층별로 스타트업 창업 단계에 따라 이용자를 나누어 놓았다. 입구에 있는 1층은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하는 곳으로 한편에는 커피를 주문할 수 있는 공간도 있어서, 얼핏 보면 일반 카페와 별반 달라 보이지 않는다. 누마 관계자는 “프로젝트별로 팀을 이루고 시제품도 만들어본다. 나중에 구체화 단계까지 간 사람은 투자금도 유치한다. 1년 예산으로 250만유로 정도가 드는데 70%는 사용자에게 부과하는 요금 등으로 들어오는 자체 예산이고 30%는 기업 파트너와 공공기관 지원으로 충당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파리에 누마 같은 스타트업 창업 공간이 여럿 있다. 최근에는 낡은 창고건물 ‘알 프레시네’를 1000개 이상의 스타트업이 입주하는 공간으로 탈바꿈시키는 프로젝트도 진행 중으로 알고 있다”며 “요새는 최고의 인재들은 취업 대신 창업을 하려는 경향이 많아서 대기업 채용 담당자들이 인재 채용에 애를 먹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고 말했다.

디지털 기업 클러스터인 캡 디지털 관계자는 “우리는 일종의 협회로 스타트업과 대기업 간의 만남 등을 주선하고 있다. 우리와 함께했던 기업 중에는 일본 소프트뱅크의 투자를 받아 페퍼라는 로봇을 만든 기업인 알데바란도 있다”고 말했다. 프랑스의 스타트업 열기는 파리와 주변 도시를 넘어 지방으로도 확산되고 있다. 대표적인 도시가 남부 도시 툴루즈다. 툴루즈 지역에는 디지털 분야에 2000여개 기업이 있다. 에어버스 본사가 위치한 툴루즈는 전통적 항공우주산업 지역이라는 장점과 파리 다음으로 많은 10만여명의 대학생이 집중돼 있는 이점을 활용해 항공우주·의료 등 분야의 스타트업을 집중 육성하고 있다.

프랑스 스타트업 열풍 뒤에는 정부의 강력한 육성 지원도 한몫을 한다. 수출진흥청과 투자진흥청이 통합된 정부기관인 비즈니스프랑스의 뮈리엘 페니코는 “올해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소비자가전전시회(CES)에 프랑스 스타트업 66곳이 참여했는데 이는 미국 다음으로 많은 수”라며 “중소기업 창업 절차 등을 간소화해 스타트업 같은 중소기업은 4~5일 만에 창업이 가능하게 했다. 이는 유럽 내에서는 창업에 걸리는 시간이 가장 빠른 경우”라고 말했다.

프랑스 재무부의 프렌치 테크 담당 국장인 다비드 몽토는 프랑스 스타트업 발전을 지원하는 이유로 프랑스 산업구조 문제를 꼽았다. 프렌치 테크란 신생기업의 창업을 촉진하기 위해 프랑스 정부가 올해부터 연간 1500만유로를 지원하는 제도로, 프렌치 테크에 선정된 기업들을 위해 자금조달, 공공기관과의 협업 등을 연결해준다. 프랑스는 프렌치 테크를 파리 외에 툴루즈, 릴, 보르도, 낭트 등 9개 도시에 두고 있다. 몽토 국장은 “ 100대 기업으로 꼽힌 기업 중 프랑스 기업이 유럽에서는 제일 많다. 그런데 이 대기업들이 속한 전통산업 분야가 전부 디지털 전환에 문제가 있는 분야다. (명품 기업인) 에르메스, 루이뷔통, (에너지기업) 토탈 같은 대기업들이 스스로 디지털로 전환하기는 쉽지 않다. 심지어 미국의 페이스북도 혁신을 위해 끊임없이 스타트업들을 사들이고 있지 않나”라고 말했다. 그는 “스타트업이 고용에도 가장 많이 이바지하기 때문에 눈여겨보고 있다”고 말했다. 몽토 국장은 파리에만 스타트업이 약 4000개 있으며 이는 영국 런던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했다.

현재 프랑스의 경제 전망이 아주 밝은 것만은 아니다. 프랑스의 지난해 12월 실업률은 10.3%로 유로존(유로화를 쓰는 유럽 19개국) 평균 11.4%보다 약간 나은 정도다. 유럽통계청에 따르면 유로존 물가상승률은 1월에도 -0.6%를 기록할 것으로 보여, 디플레이션 우려가 커지고 있다.

파리·툴루즈/글·사진 조기원 기자 garden@hani.co.kr

파리의 괴짜 IT 교육기관 에콜42, 졸업장 안보고 선발, 실습으로만 교육

150개 프로젝트로 스스로 깨쳐
기업에 스카우트되거나 학교 내 창업

지난달 26일 프랑스 파리에 있는 정보기술(IT) 교육기관 에콜42로 들어서자 컴퓨터 수백대가 있는 큰 방에 젊은이들이 각자 프로그램을 짜거나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교육기관이라고는 하지만 건물 어디에서도 강의를 하는 모습은 눈에 띄지 않았다. 교실과 칠판 같은 전통적 교육기관의 시설 자체가 없었다. 오히려 건물 한편에는 게임기 몇 대까지 놓여 있었다. 학생은 2500명인데 교수는 5명뿐이다. 학생들이 계단 난간 등에 빨래까지 널어놓은 모습도 보였다.

니콜라 사디라크 에콜42 교장.

에콜42는 프랑스 통신기업의 회장인 그자비에 니엘이 내놓은 돈으로 2013년에 설립된 사립 교육기관으로 프랑스 교육제도 안에서도 이례적인 존재다. 프랑스 고등교육은 보통 고등학교 졸업시험인 바칼로레아에 합격해 일반 대학에 가거나, 아니면 프레파로 불리는 2년짜리 중간 준비과정을 거쳐 엘리트 교육기관인 그랑제콜에 들어가는 식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에콜42의 입학 요건에는 바칼로레아는 물론 어떤 학력 제한도 없다.

에콜42가 학력 파괴와 기존 학교교육 탈피를 주장하게 된 데는 특별한 계기가 있었다. 에콜42의 공동설립자인 니콜라 사디라크 교장은 이날 “니엘 회장이 운영하는 회사에 방리외(빈민층 등이 많이 거주하는 교외지역) 출신 학생이 있었는데 일을 상당히 잘했다. 니엘 회장이 면담에서 이 학생이 원래는 기존 교육과정에서 탈락해 방리외에서 햄스터를 팔며 생활하다가 우연히 학교 중퇴자 선발 프로그램으로 교육과정을 이수한 사실을 알게 됐다. 기존 교육과정에서 탈락한 아이들 중에서도 재능 있는 아이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에 새로운 학교를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사디라크 교장은 학교 한편에서 키우는 햄스터를 가리키며 “그래서 이 햄스터가 우리 학교의 마스코트”라고도 말했다.

사디라크 교장은 “프랑스 교육은 대부분 무상이지만 사회구조적 불평등은 있다”며 “다만, 에콜42의 교육 목표가 불평등 해소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 학교의 교육 목표는 기존 교과과정을 이수했는지 여부로 차별은 하지 않되, 정보기술 분야에 재능이 있는 아이들을 자유롭게 교육하는 데 있으며 선발도 까다롭다. 학생 선발은 18~30살 지원자를 대상으로 인터넷으로 시험을 치러 우선 4000명을 걸러낸다. 지금까지 지원자는 7만여명이었다고 사디라크 교장은 말했다. 이렇게 뽑힌 4000명을 대상으로 합숙하며 팀 프로젝트를 하는 시험을 통해 1000명을 다시 추린다. 이렇게 선발된 학생들은 무료로 학교에 다니며 24시간 학교 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 졸업할 때까지 약 150개의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3~5년간의 수학 과정을 거치도록 되어 있다. 이 학교에서 공부한 학생들의 일부는 세계적 정보기술 기업에 스카우트되기도 했고, 일부는 학교 내에서 창업하기도 했다.

사디라크 교장은 “우리 교육과정은 워크래프트 게임을 하듯 학생들이 단계 단계를 깨나가는 식으로 이뤄진다. 연구자 수준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고 활용 능력과 통합 능력을 본다. 우리가 패션학교 등과 협업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프랑스는 세계 5위 경제대국이지만 정보기술 분야에서는 세계 25위밖에 되지 않는다. 우리 교육을 통해 한해 정보기술 관련 인재 1000여명이 새로운 일자리를 찾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 학교 학생 레미 압레스(19)는 “바칼로레아에 합격하고 프레파를 다니다 이론 위주 교육이 싫어서 1년 반 만에 그만뒀다”며 “현재 3D 시뮬레이션 등에 대해 공부하고 있는데 이론을 현실에 적용해보는 게 재미있다”고 말했다.

파리/글·사진 조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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