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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4등하면 안돼요?

영화 ‘4등’이 말하는 스포츠폭력
수영이 즐거운 ‘만년 4등’ 12살 준호
폭력싫어 수영관둔 코치는 매 들고
등수가 못마땅한 엄마는 체벌 묵인
어른들 모두 가해자이면서 피해자
코치역 맡은 박해준 “많이 반성해” 

영화 제목이 참 묘하다.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는 말도 있지만, 그래도 3등까지는 어디 가서 얘기라도 할 수 있다. 차라리 꼴찌라면 포기라도 하지, ‘4등’은 대체 어쩌란 말인가.

(감독 정지우)에서 열두 살 수영 선수 ‘준호’(유재상)는 수영을 너무나 좋아하지만 대회에 나가면 계속 4등만 한다. 엄마 ‘정애’(이항나)는 아들한테 “야, 4등!”이라고 하면서 분통을 터뜨린다. 아이는 주눅이 들고, 엄마는 어렵게 소개받은 새로운 코치 ‘광수’(박해준)를 찾아간다.

광수는 어린 준호를 가르쳐 0.02초 차이의 아슬아슬한 2등 자리에 오르게 한다. 과연 좋은 코치를 만난 것인가. 집안 잔치를 벌이는데, 준호의 동생이 무심결에 “예전엔 안 맞아서 맨날 4등했던 거야, 형?”이라고 한다. 아빠 ‘영훈’(최무성)이 아이의 옷을 벗겨보니 매질 자국이 선명하다. 영화는 스포츠 폭력이라는 문제의 한가운데로 들어간다.

영화 ‘4등’. 사진 ㈜프레인글로벌 제공

영화는 어린 준호와 별도로 코치 광수의 삶을 그린다. 선수 시절 비공인 한국신기록도 세울 만큼 촉망받는 수영 천재였으나, 중도에 운동을 접고 이제는 작은 구립체육관에서 코치 생활을 하고 있다. 광수가 그렇게 추락한 것은 태릉선수촌 안에서 벌어진 매질 때문이다. 매질이 싫어 운동을 포기했음에도, 이제 광수는 아이한테 매질을 한다. 폭력의 대물림인 셈이다. 선수 시절 광수는 정가람이 연기했다.

문제는 스포츠 폭력을 둘러싼 주위의 반응이다. 엄마는 “난 준호가 맞는 것보다 4등 하는 게 더 무서워”라면서 아이가 매맞는 것을 외면한다. 드라마 에서 ‘택이 아빠’로 출연했던 아빠 영훈은 아이가 매질 당했음을 알고 눈에 불똥이 튀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다. 그는 젊은 시절 신문기자로서 코치 광수가 선수촌에서 매질받았음을 제보 받고도 “맞을 짓을 했다”면서 외면했던 사람이다. 어린 준호는 광수 코치가 “네가 (훈련에) 집중을 안 해서 그래”라고 하면서 때릴 때 자신의 잘못으로 매를 맞는다고 생각한다. ‘1등’을 위해 무언가 큰 것을 잃고 있는 우리 시대의 자화상들이다.

영화는 국가인권위원회가 기획 및 제작한 영화로서, 6억원의 저예산을 들였음에도 일정 수준 이상의 만듦새를 성취했다. 상업영화라 해도 손색이 없을 수준이다. 어린 준호와 코치, 엄마, 아빠가 모두 살아있는 캐릭터로서 우리네 삶을 뒤돌아보게 하는 힘을 갖는다. 여기에 준호가 코치의 혹독한 훈련을 피해 수영장 물 속에서 자유롭게 헤엄치는 장면은 쏟아지는 햇살과 투명한 물빛, 수영장 한편에 모아놓은 레인의 원색 등이 조화를 이뤄 아름다우면서도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2000)에서 소년이 제 흥에 겨워 춤을 추는 장면을 떠올릴 수도 있겠다.

(2012), (1999) 등을 연출했던 정지우 감독은 시사회 뒤 “여러 체육인들을 만났는데, 4등에 대해 많이 얘기하셨다. 수영장은 경쟁의 장이지만 레인을 걷어내면 물을 즐기는 장소가 되기도 한다. 다르게 사는 법에 대한 고민을 나누고 싶었다”고 말했다. 감독은 이어 “코치와 엄마, 아빠는 모두 가해자이면서 피해자이다. 영화 속 어른들은 모두 결함을 갖고 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버틸 수 없는 사회인 것 같다”고 덧붙였다.

■ 배우 박해준, “저도 많이 반성했어요” 지난 1일 시사회 뒤 서울 용산의 한 찻집에서 에서 ‘광수’를 연기한 배우 박해준(40)을 만났다.

박해준은 멍하니 허공을 쳐다보는 모습으로 영화에 처음 등장한다. 국가대표로 촉망 받았으나, 이제는 게임과 술에 빠져 폐인처럼 산다. 그런데 어린 준호가 수영에 소질을 보이자 그 아이를 가르치는 데 열정을 불태운다. 그리고 매를 든다. 자신이 맞았던 것처럼…. 박해준은 “저도 중고등학생 때 대걸레 자루로 많이 맞았지요. 촬영 전까지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다르게 생각하게 됐어요”라고 했다.

박해준은 모순을 온몸으로 끌어안고 사는 ‘인생 실패자’를 연기했다. 과장 없는 자연스런 연기 덕분인지, 그런 성격에 그런 삶을 살고 있는 듯하다. 매질한 뒤에는 아이의 뭉친 근육을 풀어주는 마사지까지 해주고 “1등을 위해선 어쩔 수 없다”고 하는 대목에선, 하나의 삶이 오롯히 느껴진다.

박해준은 영화 후반부에 별 흔적을 남기지 않고 사라진다. 미국 할리우드 영화라면 막판에 다시 등장할 것 같은데, 이번 영화는 나타나지 않음으로서 오히려 긴 여운을 남긴다.

2007년 연극 무대로 데뷔한 박해준은 서울 대학로 극단 차이무의 무대에서 실력을 쌓았고, 영화 (2012)에서 악덕 사채업자로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드라마 의 ‘천 과장’을 연기하면서 대중에게 얼굴을 본격적으로 알렸고, 이번 영화는 출연 직전에 촬영을 마무리지었다고 한다. 그는 “동네 식당에 들어갔는데, 우연히 그곳이 맛집인 거예요. 저희 영화가 그런 식당에서 맛있는 것을 먹고나오는 것 같았으면 합니다”라고 했다.

안창현 기자 blue@hani.co.kr

영화 제목이 참 묘하다.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는 말도 있지만, 그래도 3등까지는 어디 가서 얘기라도 할 수 있다. 차라리 꼴찌라면 포기라도 하지, ‘4등’은 대체 어쩌란 말인가.

(감독 정지우)에서 열두 살 수영 선수 ‘준호’(유재상)는 수영을 너무나 좋아하지만 대회에 나가면 계속 4등만 한다. 엄마 ‘정애’(이항나)는 아들한테 “야, 4등!”이라고 하면서 분통을 터뜨린다. 아이는 주눅이 들고, 엄마는 어렵게 소개받은 새로운 코치 ‘광수’(박해준)를 찾아간다.

광수는 어린 준호를 가르쳐 0.02초 차이의 아슬아슬한 2등 자리에 오르게 한다. 과연 좋은 코치를 만난 것인가. 집안 잔치를 벌이는데, 준호의 동생이 무심결에 “예전엔 안 맞아서 맨날 4등했던 거야, 형?”이라고 한다. 아빠 ‘영훈’(최무성)이 아이의 옷을 벗겨보니 매질 자국이 선명하다. 영화는 스포츠 폭력이라는 문제의 한가운데로 들어간다.

영화 ‘4등’. 사진 ㈜프레인글로벌 제공

영화는 어린 준호와 별도로 코치 광수의 삶을 그린다. 선수 시절 비공인 한국신기록도 세울 만큼 촉망받는 수영 천재였으나, 중도에 운동을 접고 이제는 작은 구립체육관에서 코치 생활을 하고 있다. 광수가 그렇게 추락한 것은 태릉선수촌 안에서 벌어진 매질 때문이다. 매질이 싫어 운동을 포기했음에도, 이제 광수는 아이한테 매질을 한다. 폭력의 대물림인 셈이다. 선수 시절 광수는 정가람이 연기했다.

문제는 스포츠 폭력을 둘러싼 주위의 반응이다. 엄마는 “난 준호가 맞는 것보다 4등 하는 게 더 무서워”라면서 아이가 매맞는 것을 외면한다. 드라마 에서 ‘택이 아빠’로 출연했던 아빠 영훈은 아이가 매질 당했음을 알고 눈에 불똥이 튀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다. 그는 젊은 시절 신문기자로서 코치 광수가 선수촌에서 매질받았음을 제보 받고도 “맞을 짓을 했다”면서 외면했던 사람이다. 어린 준호는 광수 코치가 “네가 (훈련에) 집중을 안 해서 그래”라고 하면서 때릴 때 자신의 잘못으로 매를 맞는다고 생각한다. ‘1등’을 위해 무언가 큰 것을 잃고 있는 우리 시대의 자화상들이다.

영화는 국가인권위원회가 기획 및 제작한 영화로서, 6억원의 저예산을 들였음에도 일정 수준 이상의 만듦새를 성취했다. 상업영화라 해도 손색이 없을 수준이다. 어린 준호와 코치, 엄마, 아빠가 모두 살아있는 캐릭터로서 우리네 삶을 뒤돌아보게 하는 힘을 갖는다. 여기에 준호가 코치의 혹독한 훈련을 피해 수영장 물 속에서 자유롭게 헤엄치는 장면은 쏟아지는 햇살과 투명한 물빛, 수영장 한편에 모아놓은 레인의 원색 등이 조화를 이뤄 아름다우면서도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2000)에서 소년이 제 흥에 겨워 춤을 추는 장면을 떠올릴 수도 있겠다.

(2012), (1999) 등을 연출했던 정지우 감독은 시사회 뒤 “여러 체육인들을 만났는데, 4등에 대해 많이 얘기하셨다. 수영장은 경쟁의 장이지만 레인을 걷어내면 물을 즐기는 장소가 되기도 한다. 다르게 사는 법에 대한 고민을 나누고 싶었다”고 말했다. 감독은 이어 “코치와 엄마, 아빠는 모두 가해자이면서 피해자이다. 영화 속 어른들은 모두 결함을 갖고 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버틸 수 없는 사회인 것 같다”고 덧붙였다.

■ 배우 박해준, “저도 많이 반성했어요” 지난 1일 시사회 뒤 서울 용산의 한 찻집에서 에서 ‘광수’를 연기한 배우 박해준(40)을 만났다.

박해준은 멍하니 허공을 쳐다보는 모습으로 영화에 처음 등장한다. 국가대표로 촉망 받았으나, 이제는 게임과 술에 빠져 폐인처럼 산다. 그런데 어린 준호가 수영에 소질을 보이자 그 아이를 가르치는 데 열정을 불태운다. 그리고 매를 든다. 자신이 맞았던 것처럼…. 박해준은 “저도 중고등학생 때 대걸레 자루로 많이 맞았지요. 촬영 전까지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다르게 생각하게 됐어요”라고 했다.

박해준은 모순을 온몸으로 끌어안고 사는 ‘인생 실패자’를 연기했다. 과장 없는 자연스런 연기 덕분인지, 그런 성격에 그런 삶을 살고 있는 듯하다. 매질한 뒤에는 아이의 뭉친 근육을 풀어주는 마사지까지 해주고 “1등을 위해선 어쩔 수 없다”고 하는 대목에선, 하나의 삶이 오롯히 느껴진다.

박해준은 영화 후반부에 별 흔적을 남기지 않고 사라진다. 미국 할리우드 영화라면 막판에 다시 등장할 것 같은데, 이번 영화는 나타나지 않음으로서 오히려 긴 여운을 남긴다.

2007년 연극 무대로 데뷔한 박해준은 서울 대학로 극단 차이무의 무대에서 실력을 쌓았고, 영화 (2012)에서 악덕 사채업자로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드라마 의 ‘천 과장’을 연기하면서 대중에게 얼굴을 본격적으로 알렸고, 이번 영화는 출연 직전에 촬영을 마무리지었다고 한다. 그는 “동네 식당에 들어갔는데, 우연히 그곳이 맛집인 거예요. 저희 영화가 그런 식당에서 맛있는 것을 먹고나오는 것 같았으면 합니다”라고 했다.

안창현 기자 blu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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