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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가만히 있는 엄마는 되지 않겠습니다


세월호 참사 1주기를 추모하는 분당 지역 어머니들이 15일 오전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야탑역광장에서 세월호 인양과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플래시몹을 하고 있다. 성남/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세월호 1년] (4) 공감과 기억
평범한 엄마들의 공감과 행동

“내 자식 집 밖에서 한대 얻어맞고만 와도 억장이 무너지는데, 자식이 바닷속으로 가라앉는 모습을 속절없이 지켜봐야만 했던 분들에게 손가락질을 하면 도대체 어쩌란 말입니까….”

경기도 양평군에 사는 쌍둥이 엄마 문희정(45)씨. 5년 전 건강이 좋지 않은 아이들을 위해 물 맑고 공기 좋은 이곳으로 서울에서 이사했다. 이후 아이들 데리고 병원과 학교를 오가고, 밥 짓고 빨래하는 평범한 시골 아줌마로 살았다.

하지만 지난해 4월16일, 세월호 참사는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놨다. 까르르 웃는 아이들만 봐도 금세 눈시울이 붉어지고, 노란색 택시만 지나가도 가슴이 먹먹해졌다. 한없는 무력감에 시달리다가도 갑자기 분노가 치밀어 일상생활을 하지 못했다.

절규하는 엄마들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참 많이도 울었다는 문씨. 그는 ‘이 땅의 엄마로서 더는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굳혔고, 세월호 참사 한 달이 지나갈 무렵 처음으로 촛불을 들었다.

농촌이라는 지역적 한계 때문에 ‘나 혼자만 이러는 건 아닌지…’ 하는 두려움도 없지 않았지만, 당시 그나마 참담한 마음을 달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기에 촛불을 들었다고 문씨는 털어놨다. 걱정과 달리 엄마들의 마음은 똑같았다. 10여명에 불과했던 사람들이 100명에서 200명으로, 다시 300명으로 늘어났다, 이후 문씨는 ‘세월호 활동가’로 다시 태어났다.

‘바람개비가 꿈꾸는 세상(바꿈세)’이란 동호회를 꾸렸고, 날마다 거리에 나가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서명지를 돌리고 있다. 실종자가 돌아오길 바라며 시민들에게 풍선을 나눠주고, 밤새 노란 리본을 만들어 매단다. ‘바꿈세’ 엄마들은 최근까지 실종자 가족들을 위해 음식을 만들어 진도 팽목항까지 나르기도 했다. 지난해 11월엔 지난한 싸움에 지쳐 있던 세월호 유가족 30여명을 양평 성공회수련원으로 초대해 따뜻한 밥과 잠자리를 제공하며 위로했다.

문씨는 “내가 변하지 않으면 국가도 변하지 않는다는 교훈을 얻었고, 세상은 혼자 사는 게 아니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고 말했다.

세월호뒤 노란색만 봐도 먹먹
‘더는 가만 있으면 안 되겠다’
바꿈세·엄마말 등 모임 만들고
선량한 방관자서 행동하는 시민으로

지금 침묵하면 다음 희생자는
나란 걸 마음 속에 되새긴다

전 국민을 슬픔과 절망의 늪으로 밀어 넣은 세월호 참사는 문씨와 같은 엄마들을 끊임없이 만들어내고 있다. 온·오프라인을 누비며 치유와 공감의 릴레이를 펼치고 있는 엄마들의 활동은 작지만 세상의 변화를 이끌고 있다.

0~3살배기 아이를 둔 서울 엄마들로 꾸려진 인터넷 카페 ‘엄마라서 말할 수 있다(약칭 엄마말)’의 카페매니저(운영자) 김미애씨는 “어린 학생들이 아무런 잘못도 없이 죽음에 내몰리는 것을 보고 암울한 현실에 맞서게 됐다. 그야말로 엄마이기 때문에 가만히 있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해 다른 엄마들과 행동을 함께하게 됐다. 이제 세상과 사회의 변화가 필요한 시점인 것 같다”고 했다.

집으로 날아든 선거 공보물이나 한 번 휙 훑어보는 게 고작이었다는 김씨는 “세월호 참사 이후 나와 내 아이, 그리고 우리 가족이 먹고 자고 입는 소소한 일상 모두가 정치와 관련이 있고 사회와 연계돼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세월호 인양은 정부가 당연히 나서서 해야 할 일이고 앞으로 우리가 할 일은 참상을 잊지 않도록 노력하는 일”이라고 각오를 밝히기도 했다.

지난해 4월30일 서울 강남역에서 유모차를 끌고 거리에 나섰던 김씨 등 ‘엄마말’ 회원들은 1년 내내 세월호 희생자 추모와 진상규명을 위한 거리시위와 서명을 이어왔다. ‘유모차 부대’란 별명이 따라붙은 ‘엄마말’ 카페 회원은 현재 서울만 500명을 넘어선 상태다. 엄마말은 수도권은 물론 제주도와 국외에서까지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김씨는 “우리 국민 모두가 지난해 이맘때 약속했던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다짐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직장에 다니다 그만두고 평범한 가정주부로 살던 엄마가 참사 이후 자신의 전공을 살려 세월호 활동가로 나선 경우도 있다. 광고회사와 출판사에서 디자이너로 일한 적이 있는 염정선(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씨는 참사 이후 수많은 엄마가 손팻말에 적어 흔들고 있는 문구를 만들어냈다. ‘별이 된 아이들이 묻습니다. 지금은 안전한가요? 지금은 책임지나요?. 지금은 밝혀졌나요?’라는 등의 호소가 섞인 구호가 그것이다.

염씨는 “1년을 되돌아보면 후회밖에 남지 않는다.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때도, 성수대교 붕괴사고 때도 그저 남의 일로 치부하며 방관자로 살았던 것이 후회스럽다”고 했다. 그는 “그때부터 엄마들이 ‘안전한 나라를 만들자’고 외쳤다면 세월호와 같은 비극은 없었을 것”고 설명했다. 염씨는 “더는 방관자로 살지 않겠다. 정치를 바꾸고 사회를 바꾸는 참여가 이 나라 국민의 의무인 것을 이제야 깨달은 만큼, 세월호 문제를 해결하는 일에 결코 등을 돌리지 않겠다”고 밝혔다.

지난 1년 내내 전철역 앞에서 세월호 관련 서명을 받아 ‘서명지기’로 불리는 이상순씨. 그는 “일련의 활동이 엄마들을 무기력에서 벗어나게 했다. 내가 했던, 그리고 내가 하고 있는 일은 세월호에서 희생된 어린 학생들에게 진 빚을 갚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3만명 이상 서명을 받았다는 이씨는 “서명지를 들고 나설 때마다 ‘내 발밑에 차오르는 물이 어떤 이에게는 목에 차오를 수 있다. 그리고 그 물이 내 목에 차오를 수도 있다’는 말을 되새긴다. 세상의 모든 엄마들이 가만히 있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한 시대가 됐다”고 1년를 되짚었다.

사비를 털어 ‘세월호 기억 엽서’ 3만2천장을 만들어 나눠주고 있는 최복희씨는 “지금 소리 내지 않으면 또다시 몇년 뒤 내 아이의 생존이 위협받을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이 엄마들의 삶을 바꿔놓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나중에 아이가 ‘엄만 그때 뭐했어’라고 물을 때 부끄럽지 않게 살 것”이라고 덧붙였다.

‘바꿈세’ 등 행동하는 엄마들은 오는 18일 낮 12시 서울역 광장에서 ‘대한민국 엄마대회’를 연다. 이들은 “생명과 안전은 인간 존엄의 최고 가치이며 이를 위반한 대한민국 미래는 실종됐다. 불신으로 가득 찬 이 사회에서 우리 아이들을 살려내는 것은 엄마들”이라고 강조했다.

김기성 김일우 기자 player00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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