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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까지 불어닥친 바둑 열풍, 교육효과 흑-백?

[‘이세돌-알파고’ 대결 이후]

» 서울 강서구의 한 어린이집 놀이바둑교실에서 아이들이 바둑을 배우며 즐거워하고 있다. 인터넷바둑사이트 사이버오로 제공 미생·응팔 때보다 더 뜨거워

“수강 문의 폭증하고 등록 늘어”

소년체전 이어 전국체전 정식종목

또 하나의 진로 선택지로

정부, 유치원 바둑교실 지원도 한몫

“집중력과 사고력 키우기 명목으로

놀이 통한 감각·움직임 발달 저해”

“함께 노래 부르고 춤도 추면서 배워

자기조절력과 언어 발달 도움”

이세돌 9단과 인공지능 ‘알파고’의 대결 이후 바둑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폭증하고 있다. 바둑계에서는 바둑의 르네상스 시대가 펼쳐지고 있다며 들뜬 분위기다. 바둑 열풍은 성인은 물론이고 청소년·유아에게까지 이어지고 있다. 바둑이 사고력과 집중력을 높이고 인내심을 높여준다는 말에 부모들의 귀가 솔깃해지면서 자기 아이에게도 바둑을 체험해보게 하려는 부모들이 늘고 있다.

지난 18일 찾은 서울 양천구 목동의 한 유명 바둑학원에는 5개의 방마다 바둑을 즐기는 아이들로 꽉 차 있었다. 70여명의 아이들이 빈자리 하나 없이 빼곡히 마주앉아 바둑판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7살 아이부터 초·중·고등학생까지 연령대는 다양했다. 이 학원에서는 프로기사가 되는 것을 목표로 전문적으로 바둑만 공부하는 학생들을 위한 반과 취미로 즐기기 위해 바둑에 입문하려는 학생들을 위한 반으로 나눠 수업을 하고 있었다. 학원 운영자는 “최근 이세돌과 알파고 대결 이후 수강 문의 전화는 열 배 이상, 학원 등록률은 20% 이상 늘었다”며 “바둑에 대한 열기가 드라마 , 때와 견줘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뜨겁다”며 놀라워했다.

대학 특기자 전형…관련 직업 다양

바둑의 인기는 이세돌-알파고 대국 이전에도 없었던 것은 아니다. 바둑계에 따르면 바둑이 지난해 소년체전에서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고, 올해는 전국체전에서도 정식 종목이 되면서 사회적 관심은 더 늘었다. 지금까지는 아무리 아이가 바둑을 좋아해도 학교 수업을 빠지고 대회 연습을 하는 게 부담이 컸지만, 이제는 바둑이 학교의 정식 스포츠 종목으로 인정받으면서 또 하나의 진로 선택지가 됐다.

김윤식 한국기원 과장은 “최근 초·중·고에 기존에 없던 바둑부가 공식적으로 생겨나고 있고, 대학 입학할 때도 특기자 전형 등으로 바둑학과에 지원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됐다”며 “바둑 관련 직업을 염두에 두고 일찍부터 바둑 관련 교육에 관심을 가지는 부모와 학생들이 늘었다”고 말했다. 현재 바둑학과는 명지대와 세한대에 있으며, 졸업생들은 바둑 선수, 바둑교실 사범을 비롯해 해외 바둑 보급자, 교사, 기자, 방송 해설자, 평론가, 소설가, 만화가, 게임개발자 등 다양한 바둑 관련 직업으로 진출하고 있다. 프로기사는 1년에 15명만 뽑아 경쟁이 치열한 편이다. 여자 프로기사는 남자 프로기사에 비해 적은 편인데다 여자 입단대회가 따로 치러져, 최근 여아를 키우는 부모들의 바둑에 대한 관심도 크게 늘었다.

정부의 예산 지원과 후원도 어린이 바둑 열풍에 한몫하고 있다. 한국기원은 지난해부터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민체육진흥공단의 예산 지원을 받아 전국 유치원·어린이집 가운데 정해진 심사를 거쳐 선정한 시설들의 만 5살 반 아이들을 대상으로 무료 놀이바둑교실을 열고 있다. 이 놀이교실에서는 바둑 교육을 위한 교구와 교재 등을 무료로 제공하고, 어린이 바둑 교육 전문가를 해당 기관에 파견해 수업을 해준다. 지난해 이 프로젝트에는 전국에서 225곳 유치원·어린이집이 신청해 50곳이 선정됐고, 올해에는 140곳이 신청해 87곳이 선정됐다.

김 과장은 “지난해보다 올해 신청 기관이 줄어든 것은 유료 바둑교실을 활용하는 기관들이 늘었기 때문”이라며 “유료 바둑교실을 운영하는 기관 400곳까지 포함하면 현재 500여곳의 유치원·어린이집에서 바둑교실을 운영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외에도 전국 5880여개 초등학교 가운데 1500여개 초등학교가 방과후 교실에서 바둑반을 운영하고 있다.

1500개 초등학교에 방과후 교실

전문가들은 최근 거세게 불고 있는 어린이 바둑 열풍에 엇갈린 반응을 보인다. 이정희 한국루돌프슈타이너인지학연구센터 대표는 “바둑 열풍을 타고 부모의 욕심으로 유아 시기에 의도를 갖고 일종의 게임인 바둑을 억지로 교육시키려는 흐름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유아 시기에는 아이들이 스스로 몸을 움직이면서 감각도 발달시키고 움직임을 발달시켜야 한다”며 “바둑 교육이 아니라도 아이들은 스스로 노는 과정에서 집중력·사고력·사회성은 얼마든지 키울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바둑학원의 상업성과 부모의 욕심이 결합해 집중력과 사고력 키우기라는 명목으로 유아들의 자연스러운 놀이 시간이 줄어드는 것을 우려했다.

반면 지난해 바둑 교육 프로그램의 효과성에 대해 연구한 바 있는 김바로미 명지대학교 객원교수(아동학 박사)는 “최근 정부가 지원하는 놀이바둑교실 프로그램은 가만히 앉아 바둑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과 함께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면서 바둑에 대해 알아가는 교육과정”이라며 “유아에게 적합하게 개발된 교육 프로그램이라면 유아의 발달에 긍정적 효과가 많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서울·경기 소재 유치원 15곳의 만 5살 유아 총 537명을 대상으로 약 8개월간 누리과정에 바탕을 둔 바둑놀이교실 프로그램 운영 효과를 분석한 결과, 이 프로그램 교육을 받은 유아들이 그렇지 않은 아이들보다 자기조절력과 언어 발달 수준이 높았다”고 말했다.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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