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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탄의 ‘개 엄마’…자식이 273마리

왼쪽부터 간호사 ‘남게’, 부탄에서 19년 산 프랑스인 마리안 기예. 사진 김소민 제공

[매거진 esc] 김소민의 부탄살이

어떤 인연인지 모르겠다. 개 공포 있는 내가 이 개에게 안달이다. 갈색 꼬리 때문인지, 처연한 늙음 때문인지 알 길이 없다. 이 길거리개 이름은 ‘브라우니’다. 내가 지었다. 석달째 먹이 줘도 나한테 꼬리 한번 안 흔든다. 팀푸 길거리개 5000마리 중에 브라우니는 아무 이유 없이 내게 특별한 존재다.

햄으로도 사로잡을 수 없는 브라우니의 마음은 어디쯤에 있을까. 팀푸에서 유명한 ‘로치 아마’(개 엄마)한테 이것저것 물어봤다. 부탄에서 19년 산 프랑스인 마리안 기예(50·사진 오른쪽)다. 그 집은 내게 공포의 소굴이다. 개가 273마리다. 게다가 원숭이 25마리, 고양이 7마리 산다. 마리안하고 20년째 남자친구 헨드릭이 사는 이 집은 ‘부탄 동물 보호’(www.bhutananimalrescue.org) 시민단체이자 종합병동이다. 수술실도 있다. 회복한 개들은 산등성이를 점령한 이 집 마당을 어슬렁거린다. 집 안엔 아픈 개들이 버티고 있는데 문 열자마자 한쪽 다리가 부러져 부목을 댄 ‘치치’가 달려든다. 미친 듯 꼬리를 흔든다. 강아지 때 수영장에서 구조돼 이름이 ‘풀리’인 검정개는 앉아 있는 내 허리춤에 몸을 돌돌 말아 들이댔다.

마리안이랑 이야기할 때는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 “내가 다른 사람하고 다르다는 건 한 대여섯살 때부터 알게 됐지. 수영장에 가면 모기들이 익사중인데 사람들은 본 척도 안 하는 거야. 어떻게 그 고통을 지켜만 보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어. 나는 이렇게 온몸으로 느끼는데. 어릴 때 쥐, 나비, 새… 닥치는 대로 구했어. 아, 잠깐만. 풀리!” 그새 검정개 풀리가 소파를 물어뜯고 있다. 새끼들과 함께 구조된 개 ‘소남’이 슬쩍 들어오는 바람에 책상 위 파일이 우르르 쏟아져내렸다.

“어디까지 했지?” “나비랑 새.” “수의사는 되고 싶지 않았어. 동물 죽는 걸 견딜 수 없을 거 같았거든. 건축학을 택했지. 박사학위 연구 때문에 이집트 카이로에 갔는데 거기서 고양이를 50마리 정도 구했어. 그때 참 애인이 많았지. 수의사, 약사, 마취과 의사였는데 동물 구조하는 데 다 한몫했지. 카이로에서 동물 수술이며 뭐며 배우지 않았겠어. 하하. 참 좋은 애인들이었어. 내가 옛 애인 파일만 따로 가지고 있잖아. 보여줄게. 그게 어디 있더라….” 마리안은 개 소남이 쓰러뜨려놓은 파일 더미를 뒤지기 시작했다. 그새 덩치 큰 개 ‘보보’가 들어와 거대한 꼬리를 흔드는 통에 파일 폐허 위로 연필이 우르르 떨어졌다.

“어디까지 했지?” “카이로 애인.” “맞아. 거기서 헨드릭을 만나고 이 사람이란 걸 알았지. 헨드릭이 부탄 깡촌에 발전기 만드는 일을 하게 돼 같이 왔어. 1997년 오니까 안개밖에 없어. 전기, 시장 아무것도 없어. 바가지 하나 구한 날은 땡잡은 거야. 어느날 개 한마리가 장기가 쏟아져 나와 있는 거야. 카이로에서 배운 걸 동원해 우리집 부엌에서 수술했어. 그 개는 살았지.”

그때 간호사 ‘남게’(사진 왼쪽)가 들어왔다. 간호사 남게는 원숭이다. 전선에 걸려 몸 3분의 1에 화상을 입은 걸 살렸다. 다른 원숭이들을 잘 돌봐준다. 남게가 나도 제 종족인 줄 아는지 내 손에 자기 손을 얹는다. 우리 할머니 손 같다. “시스터 남게 안녕. 어디까지 했어?” “부엌 수술.” “그러다 여기까지 오게 된 거야. 하루에 한번씩 시내에 가. 음식점들에서 남은 음식을 챙겨 트럭에 싣고 오지.” 그때 직원 한명이 들어온다. 이번엔 사람이다. 어느 식당에서 남은 음식 가져가란다고 전한다. “대박이네. 그 음식을 그냥 못 주지. 유리조각이나 담배꽁초 걸러내야 해. 또 신장이 아픈 개들한텐 소금이 안 들어간 것만 주지. 건강해지면 광고해 입양 보내. 수술실이랑 보여줄까?”

마당으로 나가자마자 마리안의 자녀들이 몰려든다. 힘차게 흔들어대는 꼬리들에 모터를 달면 발전소를 차릴 수 있겠다. 옴에 걸려 털이 다 빠져버린 개가 엄마에게 매달렸다. 마리안은 얘들의 이름을 다 외운다. 수술실엔 개 환자 이름과 처치 내용이 빼곡하다.

“나는 사람이 만물의 영장이란 말 제일 싫어. 우리 다 동물이고 서로 의지해 살잖아. 왜 동물을 구하냐 하는데 나는 불행하지 않기 위해 싸우는 거야. 주변이 행복해야 나도 행복한 거잖아. 동물도 사람도 그 무엇도 쓰레기더미에서 죽게 해선 안 돼. 나는 그렇게 생각해. 사람은 한 일로만 평가받아선 안 돼. 안 한 일로도 평가받아야 해. 구할 수 있는데 구하지 않았는지 물어야지.”

그리고 드디어, 원숭이 간호사 남게와 개 풀리 사이에 싸움이 벌어진 그 틈바구니에서 마리안은 내게 브라우니의 마음을 얻는 방법을 알려줬다. “브라우니는 아마 사람한테 학대를 받았을 거야. 그러니 믿지 못하는 거야. 내가 교통사고로 턱이 세 조각 난 개를 치료한 적이 있어. 그 개 턱이 다 낫고 처음 한 일이 뭐게? 날 문 거지. 하하하. 아주 수술이 잘됐더군. 그 개가 나를 따르는 데 3년이 걸렸어. 상처가 컸던 거지. 사람하고 똑같아. 브라우니에게 시간을 줘. 네 진짜 사랑의 에너지를 브라우니에게 쏘라고.”

마리안이랑 다섯시간 넘게 떠들었는데 당최 모르겠다. 사랑의 에너지를 브라우니에게 대체 어떻게 쏘란 말인가. 그래도 마리안이 있어 다행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쓰레기장에서 꼬물꼬물하는 작은 더미를 발견했다. 피부병이 난 강아지 한마리 혼자다. 몸이 바들바들하다. 마리안에게 데려다줬다. 강아지는 살았다.

김소민 자유기고가

왼쪽부터 간호사 ‘남게’, 부탄에서 19년 산 프랑스인 마리안 기예. 사진 김소민 제공

[매거진 esc] 김소민의 부탄살이

어떤 인연인지 모르겠다. 개 공포 있는 내가 이 개에게 안달이다. 갈색 꼬리 때문인지, 처연한 늙음 때문인지 알 길이 없다. 이 길거리개 이름은 ‘브라우니’다. 내가 지었다. 석달째 먹이 줘도 나한테 꼬리 한번 안 흔든다. 팀푸 길거리개 5000마리 중에 브라우니는 아무 이유 없이 내게 특별한 존재다.

햄으로도 사로잡을 수 없는 브라우니의 마음은 어디쯤에 있을까. 팀푸에서 유명한 ‘로치 아마’(개 엄마)한테 이것저것 물어봤다. 부탄에서 19년 산 프랑스인 마리안 기예(50·사진 오른쪽)다. 그 집은 내게 공포의 소굴이다. 개가 273마리다. 게다가 원숭이 25마리, 고양이 7마리 산다. 마리안하고 20년째 남자친구 헨드릭이 사는 이 집은 ‘부탄 동물 보호’(www.bhutananimalrescue.org) 시민단체이자 종합병동이다. 수술실도 있다. 회복한 개들은 산등성이를 점령한 이 집 마당을 어슬렁거린다. 집 안엔 아픈 개들이 버티고 있는데 문 열자마자 한쪽 다리가 부러져 부목을 댄 ‘치치’가 달려든다. 미친 듯 꼬리를 흔든다. 강아지 때 수영장에서 구조돼 이름이 ‘풀리’인 검정개는 앉아 있는 내 허리춤에 몸을 돌돌 말아 들이댔다.

마리안이랑 이야기할 때는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 “내가 다른 사람하고 다르다는 건 한 대여섯살 때부터 알게 됐지. 수영장에 가면 모기들이 익사중인데 사람들은 본 척도 안 하는 거야. 어떻게 그 고통을 지켜만 보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어. 나는 이렇게 온몸으로 느끼는데. 어릴 때 쥐, 나비, 새… 닥치는 대로 구했어. 아, 잠깐만. 풀리!” 그새 검정개 풀리가 소파를 물어뜯고 있다. 새끼들과 함께 구조된 개 ‘소남’이 슬쩍 들어오는 바람에 책상 위 파일이 우르르 쏟아져내렸다.

“어디까지 했지?” “나비랑 새.” “수의사는 되고 싶지 않았어. 동물 죽는 걸 견딜 수 없을 거 같았거든. 건축학을 택했지. 박사학위 연구 때문에 이집트 카이로에 갔는데 거기서 고양이를 50마리 정도 구했어. 그때 참 애인이 많았지. 수의사, 약사, 마취과 의사였는데 동물 구조하는 데 다 한몫했지. 카이로에서 동물 수술이며 뭐며 배우지 않았겠어. 하하. 참 좋은 애인들이었어. 내가 옛 애인 파일만 따로 가지고 있잖아. 보여줄게. 그게 어디 있더라….” 마리안은 개 소남이 쓰러뜨려놓은 파일 더미를 뒤지기 시작했다. 그새 덩치 큰 개 ‘보보’가 들어와 거대한 꼬리를 흔드는 통에 파일 폐허 위로 연필이 우르르 떨어졌다.

“어디까지 했지?” “카이로 애인.” “맞아. 거기서 헨드릭을 만나고 이 사람이란 걸 알았지. 헨드릭이 부탄 깡촌에 발전기 만드는 일을 하게 돼 같이 왔어. 1997년 오니까 안개밖에 없어. 전기, 시장 아무것도 없어. 바가지 하나 구한 날은 땡잡은 거야. 어느날 개 한마리가 장기가 쏟아져 나와 있는 거야. 카이로에서 배운 걸 동원해 우리집 부엌에서 수술했어. 그 개는 살았지.”

그때 간호사 ‘남게’(사진 왼쪽)가 들어왔다. 간호사 남게는 원숭이다. 전선에 걸려 몸 3분의 1에 화상을 입은 걸 살렸다. 다른 원숭이들을 잘 돌봐준다. 남게가 나도 제 종족인 줄 아는지 내 손에 자기 손을 얹는다. 우리 할머니 손 같다. “시스터 남게 안녕. 어디까지 했어?” “부엌 수술.” “그러다 여기까지 오게 된 거야. 하루에 한번씩 시내에 가. 음식점들에서 남은 음식을 챙겨 트럭에 싣고 오지.” 그때 직원 한명이 들어온다. 이번엔 사람이다. 어느 식당에서 남은 음식 가져가란다고 전한다. “대박이네. 그 음식을 그냥 못 주지. 유리조각이나 담배꽁초 걸러내야 해. 또 신장이 아픈 개들한텐 소금이 안 들어간 것만 주지. 건강해지면 광고해 입양 보내. 수술실이랑 보여줄까?”

마당으로 나가자마자 마리안의 자녀들이 몰려든다. 힘차게 흔들어대는 꼬리들에 모터를 달면 발전소를 차릴 수 있겠다. 옴에 걸려 털이 다 빠져버린 개가 엄마에게 매달렸다. 마리안은 얘들의 이름을 다 외운다. 수술실엔 개 환자 이름과 처치 내용이 빼곡하다.

“나는 사람이 만물의 영장이란 말 제일 싫어. 우리 다 동물이고 서로 의지해 살잖아. 왜 동물을 구하냐 하는데 나는 불행하지 않기 위해 싸우는 거야. 주변이 행복해야 나도 행복한 거잖아. 동물도 사람도 그 무엇도 쓰레기더미에서 죽게 해선 안 돼. 나는 그렇게 생각해. 사람은 한 일로만 평가받아선 안 돼. 안 한 일로도 평가받아야 해. 구할 수 있는데 구하지 않았는지 물어야지.”

그리고 드디어, 원숭이 간호사 남게와 개 풀리 사이에 싸움이 벌어진 그 틈바구니에서 마리안은 내게 브라우니의 마음을 얻는 방법을 알려줬다. “브라우니는 아마 사람한테 학대를 받았을 거야. 그러니 믿지 못하는 거야. 내가 교통사고로 턱이 세 조각 난 개를 치료한 적이 있어. 그 개 턱이 다 낫고 처음 한 일이 뭐게? 날 문 거지. 하하하. 아주 수술이 잘됐더군. 그 개가 나를 따르는 데 3년이 걸렸어. 상처가 컸던 거지. 사람하고 똑같아. 브라우니에게 시간을 줘. 네 진짜 사랑의 에너지를 브라우니에게 쏘라고.”

마리안이랑 다섯시간 넘게 떠들었는데 당최 모르겠다. 사랑의 에너지를 브라우니에게 대체 어떻게 쏘란 말인가. 그래도 마리안이 있어 다행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쓰레기장에서 꼬물꼬물하는 작은 더미를 발견했다. 피부병이 난 강아지 한마리 혼자다. 몸이 바들바들하다. 마리안에게 데려다줬다. 강아지는 살았다.

김소민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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