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위치:»뉴스»콘텐츠

[김경락의 초딩 이코노미] 빚 1130조원은 시한폭탄일까 암세포일까

김경락기자의 초딩 이코노미를 소개합니다.

김경락기자의 초딩 이코노미는 초등학교 4학년 수준의 눈높이에서 경제 현상의 이면을 설명해주는 '친절한' 한겨레 기사입니다. 현재 한겨레신문 토요판에 6회까지 소개가 되었습니다. 격주로 소개되고 있는 김경락기자의 초딩 이코노미 기사를 베이비트리 부모가 알아야할 뉴스에서 만나보세요. 김경락 경제부 기자는 세종특별자치시에서 기획재정부를 출입하며 재정·금융 분야를 다루고 있으며, 알려지지 않은 소식을 전하는 것만큼이나 알기 쉽게 경제 현상을 소개하는 데 관심이 많습니다. 쓴 책으로 (사계절), 번역한 책으로 (메디치미디어)가 있습니다.

[토요판] 김경락의 초딩 이코노미
(4) 가계부채

지난 한 해 동안 전체 가계가 번 돈은 789조원쯤 되는데, 가계빚은 1130조원에 이른다. 2012년 9월6일엔 가계빚에 대한 문제의식을 지닌 시민단체들이 가계부채 탕감 운동본부를 출범시키기도 했다. 금융소비자협회 등 시민사회단체 대표들이 서울 세종로 정부청사 들머리에서 본부 출범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이다.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토요판] 김경락의 초딩 이코노미
(5) 가계부채

얼마 전 세계적인 신용평가사(스탠더드앤푸어스·S&P) 한 곳이 우리나라의 신용등급을 A+에서 AA-로 한 단계 올렸어요.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높은 신용등급이며 웬만한 다른 나라에 견줘도 전혀 손색없는 등급이에요. 우리나라와 같은 등급인 나라가 미국, 독일,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등 8개국으로 손에 꼽지요. 일본보다도 한 수 위랍니다.

경기가 ‘안 좋다’ ‘나쁘다’는 말은 많지만, 그래도 우리나라의 전반적인 신용도는 괜찮다고 국제사회가 봤다는 거지요. 사실 우리나라 경제에 대한 시선은 나라 안보다 밖이 좀더 후한 것 같아요. 신용평가회사뿐만 아니라 국제통화기금(IMF) 같은 국제기구도 우리나라 경제에 큰 우려를 드러내지 않지요.

전반적인 호평 속에서도 언제나 빠지지 않고 지목되는 우리나라의 치명적인 약점이 하나 있어요. 바로 ‘가계빚’이지요. 가계란 사람들이 꾸린 집안살림의 수입과 지출 상태를 말하는 거잖아요. 주요 국제기구나 신용평가사들이 우리나라 경제를 평가한 보고서를 보면, 언제나 가계빚에 대한 경고가 빠지지 않아요. 여러분도 가계빚이 시한폭탄이라는 뉴스를 제법 들어봤을 거예요.

이번 회에는 가계빚에 대해 알아보려 해요. 특히 가계빚이 왜 시한폭탄으로 불리는지, 현재 우리나라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중심으로 살펴봅니다.

집값이 빛의 속도로 오르던 시절

우리나라 가계빚은 1130조원쯤 되어요. 가계가 은행이나 카드회사 같은 금융회사에서 빌린 돈이 이만큼 된다는 뜻이에요. 여기엔 친척이나 이웃집에서 꾼 돈이나 대부업체 등에서 빌린 돈은 빠져 있어요.

1130조원, 선뜻 감이 안 오죠? 이렇게 한 번 따져보지요. 지난해 한 해 동안 전체 가계가 번 돈은 789조원쯤 돼요. 빌린 돈이 한 해 동안 번 돈보다 더 많지요? 한 해 번 돈을 모두 빚 갚는 데 써도 다 갚지 못해요.

물론 한 해 번 돈이 빚보다 적은 나라는 제법 있어요. 선진국들이 가입한다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절반 정도나 여기에 해당하지요.

하지만 그 수준은 우리나라가 세계 최고랍니다. 2012년 말 기준으로 우리나라보다 소득에 견준 빚의 비율이 더 높은 나라는 선진국 중에서는 덴마크와 노르웨이, 아이슬란드, 스웨덴 등이 손에 꼽히죠. 미국이나 일본, 독일은 물론 경제 불안에 신음하고 있는 그리스나 이탈리아보다도 더 심각하지요. 더구나 2012년 이후 우리나라 가계빚이 200조원 가까이 더 불어났으니, 소득에 견준 빚 비율 순위가 몇 단계 더 올라갔을 거예요.

우리나라 가계빚은 왜 이렇게나 많을까요? 답을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거예요. 맞아요, 바로 집 때문이죠. 가계빚 중 주택을 사기 위해서이거나 주택을 은행에 맡기고 다른 용도로 빌린 돈이 절반에 이릅니다. 집 때문에 가계가 돈을 빌리려 하거나 빌릴 수 있었던 배경은 집값이 계속 올라서입니다. 가계는 돈을 빌려서라도 집을 산 뒤에 나중에 값이 오른 뒤 판다면 남는 장사라고 생각했어요. 집투기라고요? 뭐라고 부르든 간에 이런 생각은 정말 틀리지 않았죠. 집값이 가장 비싸다는 서울 강남권을 살펴볼게요.

강남 아파트는 많이 오를 땐 1년 만에 22%(2007년 1월) 올랐어요. 1억짜리 집을 산 사람은 가만히 앉아서 1년 만에 2200만원을, 5억원짜리 집을 산 사람은 1억1000만원을 번 거죠. 이렇게 2000년대 초반부터 2008년까지 7~8년간 집값이 빠르게 올랐어요. 빚을 빨리 그리고 많이 내어 비싼 집을 살수록 가장 빨리 부자가 될 수 있던 시기였지요.

돈을 빌려준 은행도 같은 생각이었어요. 가계가 앞다퉈 돈을 빌리려 한 만큼 은행들도 너나 할 것 없이 돈을 빌려주려 경쟁했지요. 돈을 빌리러 온 사람의 신용도도 따지지 않을 정도였어요. 집값만 오른다면 얼마든지 빌려준 돈을 되돌려받을 수 있다고 믿었던 거예요. 돈을 많이 빌려준 은행이 더 많은 돈을 벌었고, 돈을 많이 빌려준 직원은 두둑한 보너스를 받았지요.

가계는 돈을 빌리기 위해 경쟁을, 은행은 돈을 빌려주려 경쟁을 했으니 가계빚이 빠르게 불어난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죠. 2002년부터 2014년까지 나라 경제 규모는 1.9배 커졌는데, 이 기간 동안 가계빚 규모는 2.4배나 불어났지요.

환영받던 빚내기와 빚내어주기가 우리 경제에 불안 요소로 모습을 드러낸 건 2008년 미국에서 출발한 금융위기 때였어요. 집값이 계속 오를 거라는 믿음이 흔들리기 시작한 때지요. 큰 폭의 하락은 없었으나 일부 지역이나 아파트 값이 조금씩 내리면서 빚을 내서 집을 산 사람들이 불안하지 않을 수가 없었죠. 또 집값이 올라도 그 이전과 같은 초고속 상승은 찾아보기 힘들게 됐어요.

물론 가계빚 불안이 고개를 쳐든 지 5년 남짓 흘렀지만, 가계빚 폭탄이 터지지는 않고 있어요. 집값이 본격적으로 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지요.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앞으로도 집값이 조금씩은 오를 거라는 주장과 곧 폭락할 거라는 주장이 엇갈려요. 아직까지는 집값의 미래를 장담하기는 어렵다는 뜻이지요.

우리나라 가계빚은 1130조원쯤
은행과 카드회사에서 빌린 건데
그 수준이 세계 최고라고 해요
경제 불안한 그리스보다 많아요
왜 이럴까요, 바로 집 때문이죠

갑자기 집값이 내리면 어떨까요
집 팔아도 빚 못 갚는 사람 늘고
은행은 돈을 떼이며 부실해져요
그럼 기업은 도미노처럼 무너지고
거리는 실업자들로 가득 차는데…

은행에 뛰어가면 안되겠죠?

가계빚에 대한 가장 큰 우려는 혹시라도 집값이 크게 내리는 상황을 바탕에 깔고 있어요. 만에 하나라도 집값이 내리기 시작하면 그 이후에 불어닥칠 후폭풍이 감당하기 힘들 거라는 데는 많은 전문가가 고개를 끄덕입니다.

차근차근 생각해보죠. 집값이 내리면 당장 빚을 낸 사람들은 빚을 갚으라는 요구를 받게 될 수 있습니다. 집값이 30% 정도 떨어질 때 본격적으로 은행들이 이런 요구를 할 것으로 보지요. 지금껏 은행들이 집값의 70%까지 돈을 빌려준 경우가 많았거든요. 빌려준 돈보다 집값이 더 낮으면 돈을 떼일 수도 있다는 우려에 은행들이 빚 갚으라고 요구하는 겁니다.

벌어 놓은 돈이 부족할 때 빚을 갚을 수 있는 뾰족한 다른 방법은 없어요. 그렇지요, 집을 팔아 빚 갚아야 해요. 여기서부터 첫번째 소용돌이가 일어요. 빚을 갚으려고 집을 팔려는 사람이 늘수록 집값이 더 빨리 떨어지게 되고, 집값이 더 떨어지니 빚 갚으라는 독촉은 더 강해지고, 그래서 다시 집을 팔려는 사람이 늘어나지요.

집을 사려는 사람이 그간 많아서 집값이 수직상승했듯이, 그 반대의 경우에도 같은 현상이 벌어지는 거예요. 이런 현상은 한번 일어나면 소용돌이가 일어나는 것처럼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기 마련이에요. 이런 집값 하락 소용돌이가 한차례 지나가고 나면 집을 팔아도 빚을 다 갚지 못하는 사람이 여기저기 넘쳐나게 됩니다.

“무리하게 돈을 빌려 집을 산 책임을 져야 하는 건 당연하지 않나요?” 당연하죠. 하지만 돈을 빌린 개별 가계 선에서 문제가 그치지 않는다는 데 가계빚 공포가 자리잡고 있어요.

빚을 다 갚지 못한 사람이 늘어난다는 의미는 달리 말하면 빌려준 돈을 떼인 은행도 많다는 걸 뜻합니다. 가계뿐만 아니라 은행도 부실해지는 거지요. 은행이 부실해지면 어떻게 될까요?

은행에 돈을 맡긴 사람들이 앞다퉈 돈을 빼가려 할 거예요. 언제든지 맡긴 돈을 찾을 수 있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은행에 돈을 맡겼는데, 은행이 부실해지면 맡긴 돈을 되찾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죠. 되찾지 못하는 때가 오기 전에 다른 사람보다 한발 빨리 돈을 찾으려고 은행 문을 두드리는 거지요.

이런 현상은 너무나도 순식간에 일어나기 때문에 ‘뱅크런’(Bank Run)이라고 불러요. 은행(Bank)에 돈 찾으러 사람들이 달려간다(Run)는 걸 표현하는 말이에요. 뱅크런은 전염성도 높아서 튼튼한 은행도 이 소용돌이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아요. 모든 은행이 부실해지거나 부실 위험에 빠지는 상황이 돼요. 집값 하락이 불러온 두번째 소용돌이예요.

은행이 부실에 빠져 제구실을 하지 못하게 되면 경제 전체가 마비가 됩니다. 피가 제대로 돌지 않으면 우리 몸이 견뎌낼 수 없는 것처럼, 경제의 피라고 할 수 있는 돈을 맡고 빌려주는 은행이 고장 나면 경제도 멈추게 되어요. 기업은 도미노처럼 무너지고, 거리는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로 가득 차게 된다는 겁니다.

정리를 하면 가계빚이 과도하게 많은 상황에서는 집값 하락이 연쇄 소용돌이를 일으켜 경제 전체를 망가뜨리는 결과를 낳을 수 있어요. 실제 이런 일은 드물지 않습니다. 가까이는 2008년 미국의 금융위기가 이러한 과정을 거쳤고, 1990년대 초에는 일본에서 이와 유사한 일이 벌어졌지요. 모두 가계빚이 넘치게 많았고, 집값이 갑자기 폭락했으며, 은행은 부실화됐고, 경제 전체가 망가지는 과정이 이어졌어요.

그래도 다행인 점 한 가지

아직까지 우리나라에는 이런 소용돌이가 본격적으로 일어나지는 않았어요. 또 가까운 장래에 이런 일이 나타난다고 장담할 수도 없지요. 앞서 말했듯이 집값이 언제 떨어질지 알기 어렵기 때문이에요. 그렇다면 가계빚은 ‘현재’ 아무런 문제도 일으키지 않는 걸까요?

우리 경제는 2~3년 동안 꾸준히 활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어요. 위기는 아니지만 호황도 아니라는 거고, 조금씩 조금씩 상황이 나빠지고 있다는 이야기예요. 여기엔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그중 하나로 가계의 소비 부진이 꼽힙니다. 가계의 씀씀이가 준다는 뜻이죠. 예전보다 물건도 덜 사고 여행도 덜 가요. 그러다 보니 기업도 돈을 잘 벌지 못하고, 기업이 돈을 못 버니 일자리도 안 늘고, 노동자들 봉급도 안 오르고 있어요. 장사하시는 분들 형편도 나아지지 않지요.

가계가 씀씀이를 줄인 이유에 대해서도 여러가지 풀이가 있어요. 그중 가장 유력한 풀이가 바로 넘치는 가계빚이죠. 빚 갚을 걱정이 한가득인데 어떻게 돈을 마음껏 쓸 수 있겠느냐는 거지요. 허리띠를 졸라매는 건 당연한 선택이라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경기가 좋다면야 앞으로 벌어들일 돈이 늘어날 것이라는 기대감에 미리 돈을 쓸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그런 상황도 아니에요.

이런 점에서 우리나라의 가계빚은 현재로선 한번에 빵 하고 터지는 폭탄은 아닌 거 같아요. 또 집값 하락 시점이 언제인지 가늠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터질 때가 정해진 시한폭탄이라고 단정하기도 쉽지 않아요. 오히려 가계빚은 암세포에 비유하는 게 더 적절한 것 아닌가 싶어요. 서서히 숨통을 죄어오는 암세포 말이에요. 가계빚이 경제의 활력을 서서히 떨어뜨려 가고 있으니까요.

지금껏 우울한 이야기만 했나요? 그럼 우리나라 가계빚이 그나마 다행인 점을 소개하는 걸로 이 글을 마칠게요.

우리나라 가계빚은 부유한 계층에 쏠려 있어요. 소득이 적은 사람보다 많은 사람이 더 많은 빚을 지고 있다는 뜻이에요. 좀더 정확히 살펴보면, 소득 상위 20%에 속하는 가구가 전체 가계빚의 절반쯤(46.5%) 안고 있어요. 아무래도 돈이 있는 사람들이 비싼 집을 사려 했을 테니, 이 계층에 빚이 많은 건 자연스러운 일이죠. 빚이 많아도 소득도 함께 많다면 가계빚 불안은 다소간 줄어들지요. 빚 갚을 능력이 상대적으로 크다는 거니까요.

사실 2008년 미국에 금융위기가 온 이유도 소득 수준이 낮은 사람들이 빚을 많이 안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미국에선 소득이 적은 사람들도 손쉽게 돈을 빌릴 수 있었거든요. 집값이 조금 떨어지자 걷잡을 수 없이 소용돌이가 발생한 배경이지요. 미국은 물론 우리나라보다 가계빚이 더 많은 나라 중 하나인 덴마크는 이와 정반대 경우예요. 이 나라가 여태껏 가계빚 폭탄이 폭발하지 않은 것은 우리나라처럼 부유층이 주로 가계빚을 지고 있기 때문이에요. 이런 점에 비춰보면 가계빚을 많이 안고 있는 고소득층이 앞으로 빚을 더 내지 않고 서서히 갚아 나가도록 유도한다면 가계빚 공포는 얼마간 줄어들 수가 있겠지요.

또 집값이 빚을 낼 당시보다 20~30% 떨어지기 전까지는 본격적인 소용돌이가 일지 않을 거라는 점도 그나마 다행인 대목이에요. 집값이 20~30% 이상 떨어지지 않는다면 전반적인 가계부실이나 은행부실로 확산되어 경제가 마비가 되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 거라는 얘기죠. 왜냐고요? 2003년에 집값 대비 70%까지만 빚을 낼 수 있도록 정부가 규제를 만들어놓았기 때문이죠. 당시에는 이 규제에 많은 반발이 있었으나, 지금은 가계빚 공포를 줄인 안전판이라고들 모두 생각한답니다. 이런 이유로 우리나라엔 가계빚 폭탄을 처리할 시간이 어느 정도 남아 있다고 볼 수 있어요.

지난 한 해 동안 전체 가계가 번 돈은 789조원쯤 되는데, 가계빚은 1130조원에 이른다. 2012년 9월6일엔 가계빚에 대한 문제의식을 지닌 시민단체들이 가계부채 탕감 운동본부를 출범시키기도 했다. 금융소비자협회 등 시민사회단체 대표들이 서울 세종로 정부청사 들머리에서 본부 출범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이다.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토요판] 김경락의 초딩 이코노미
(5) 가계부채

얼마 전 세계적인 신용평가사(스탠더드앤푸어스·S&P) 한 곳이 우리나라의 신용등급을 A+에서 AA-로 한 단계 올렸어요.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높은 신용등급이며 웬만한 다른 나라에 견줘도 전혀 손색없는 등급이에요. 우리나라와 같은 등급인 나라가 미국, 독일,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등 8개국으로 손에 꼽지요. 일본보다도 한 수 위랍니다.

경기가 ‘안 좋다’ ‘나쁘다’는 말은 많지만, 그래도 우리나라의 전반적인 신용도는 괜찮다고 국제사회가 봤다는 거지요. 사실 우리나라 경제에 대한 시선은 나라 안보다 밖이 좀더 후한 것 같아요. 신용평가회사뿐만 아니라 국제통화기금(IMF) 같은 국제기구도 우리나라 경제에 큰 우려를 드러내지 않지요.

전반적인 호평 속에서도 언제나 빠지지 않고 지목되는 우리나라의 치명적인 약점이 하나 있어요. 바로 ‘가계빚’이지요. 가계란 사람들이 꾸린 집안살림의 수입과 지출 상태를 말하는 거잖아요. 주요 국제기구나 신용평가사들이 우리나라 경제를 평가한 보고서를 보면, 언제나 가계빚에 대한 경고가 빠지지 않아요. 여러분도 가계빚이 시한폭탄이라는 뉴스를 제법 들어봤을 거예요.

이번 회에는 가계빚에 대해 알아보려 해요. 특히 가계빚이 왜 시한폭탄으로 불리는지, 현재 우리나라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중심으로 살펴봅니다.

집값이 빛의 속도로 오르던 시절

우리나라 가계빚은 1130조원쯤 되어요. 가계가 은행이나 카드회사 같은 금융회사에서 빌린 돈이 이만큼 된다는 뜻이에요. 여기엔 친척이나 이웃집에서 꾼 돈이나 대부업체 등에서 빌린 돈은 빠져 있어요.

1130조원, 선뜻 감이 안 오죠? 이렇게 한 번 따져보지요. 지난해 한 해 동안 전체 가계가 번 돈은 789조원쯤 돼요. 빌린 돈이 한 해 동안 번 돈보다 더 많지요? 한 해 번 돈을 모두 빚 갚는 데 써도 다 갚지 못해요.

물론 한 해 번 돈이 빚보다 적은 나라는 제법 있어요. 선진국들이 가입한다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절반 정도나 여기에 해당하지요.

하지만 그 수준은 우리나라가 세계 최고랍니다. 2012년 말 기준으로 우리나라보다 소득에 견준 빚의 비율이 더 높은 나라는 선진국 중에서는 덴마크와 노르웨이, 아이슬란드, 스웨덴 등이 손에 꼽히죠. 미국이나 일본, 독일은 물론 경제 불안에 신음하고 있는 그리스나 이탈리아보다도 더 심각하지요. 더구나 2012년 이후 우리나라 가계빚이 200조원 가까이 더 불어났으니, 소득에 견준 빚 비율 순위가 몇 단계 더 올라갔을 거예요.

우리나라 가계빚은 왜 이렇게나 많을까요? 답을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거예요. 맞아요, 바로 집 때문이죠. 가계빚 중 주택을 사기 위해서이거나 주택을 은행에 맡기고 다른 용도로 빌린 돈이 절반에 이릅니다. 집 때문에 가계가 돈을 빌리려 하거나 빌릴 수 있었던 배경은 집값이 계속 올라서입니다. 가계는 돈을 빌려서라도 집을 산 뒤에 나중에 값이 오른 뒤 판다면 남는 장사라고 생각했어요. 집투기라고요? 뭐라고 부르든 간에 이런 생각은 정말 틀리지 않았죠. 집값이 가장 비싸다는 서울 강남권을 살펴볼게요.

강남 아파트는 많이 오를 땐 1년 만에 22%(2007년 1월) 올랐어요. 1억짜리 집을 산 사람은 가만히 앉아서 1년 만에 2200만원을, 5억원짜리 집을 산 사람은 1억1000만원을 번 거죠. 이렇게 2000년대 초반부터 2008년까지 7~8년간 집값이 빠르게 올랐어요. 빚을 빨리 그리고 많이 내어 비싼 집을 살수록 가장 빨리 부자가 될 수 있던 시기였지요.

돈을 빌려준 은행도 같은 생각이었어요. 가계가 앞다퉈 돈을 빌리려 한 만큼 은행들도 너나 할 것 없이 돈을 빌려주려 경쟁했지요. 돈을 빌리러 온 사람의 신용도도 따지지 않을 정도였어요. 집값만 오른다면 얼마든지 빌려준 돈을 되돌려받을 수 있다고 믿었던 거예요. 돈을 많이 빌려준 은행이 더 많은 돈을 벌었고, 돈을 많이 빌려준 직원은 두둑한 보너스를 받았지요.

가계는 돈을 빌리기 위해 경쟁을, 은행은 돈을 빌려주려 경쟁을 했으니 가계빚이 빠르게 불어난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죠. 2002년부터 2014년까지 나라 경제 규모는 1.9배 커졌는데, 이 기간 동안 가계빚 규모는 2.4배나 불어났지요.

환영받던 빚내기와 빚내어주기가 우리 경제에 불안 요소로 모습을 드러낸 건 2008년 미국에서 출발한 금융위기 때였어요. 집값이 계속 오를 거라는 믿음이 흔들리기 시작한 때지요. 큰 폭의 하락은 없었으나 일부 지역이나 아파트 값이 조금씩 내리면서 빚을 내서 집을 산 사람들이 불안하지 않을 수가 없었죠. 또 집값이 올라도 그 이전과 같은 초고속 상승은 찾아보기 힘들게 됐어요.

물론 가계빚 불안이 고개를 쳐든 지 5년 남짓 흘렀지만, 가계빚 폭탄이 터지지는 않고 있어요. 집값이 본격적으로 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지요.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앞으로도 집값이 조금씩은 오를 거라는 주장과 곧 폭락할 거라는 주장이 엇갈려요. 아직까지는 집값의 미래를 장담하기는 어렵다는 뜻이지요.

우리나라 가계빚은 1130조원쯤
은행과 카드회사에서 빌린 건데
그 수준이 세계 최고라고 해요
경제 불안한 그리스보다 많아요
왜 이럴까요, 바로 집 때문이죠

갑자기 집값이 내리면 어떨까요
집 팔아도 빚 못 갚는 사람 늘고
은행은 돈을 떼이며 부실해져요
그럼 기업은 도미노처럼 무너지고
거리는 실업자들로 가득 차는데…

은행에 뛰어가면 안되겠죠?

가계빚에 대한 가장 큰 우려는 혹시라도 집값이 크게 내리는 상황을 바탕에 깔고 있어요. 만에 하나라도 집값이 내리기 시작하면 그 이후에 불어닥칠 후폭풍이 감당하기 힘들 거라는 데는 많은 전문가가 고개를 끄덕입니다.

차근차근 생각해보죠. 집값이 내리면 당장 빚을 낸 사람들은 빚을 갚으라는 요구를 받게 될 수 있습니다. 집값이 30% 정도 떨어질 때 본격적으로 은행들이 이런 요구를 할 것으로 보지요. 지금껏 은행들이 집값의 70%까지 돈을 빌려준 경우가 많았거든요. 빌려준 돈보다 집값이 더 낮으면 돈을 떼일 수도 있다는 우려에 은행들이 빚 갚으라고 요구하는 겁니다.

벌어 놓은 돈이 부족할 때 빚을 갚을 수 있는 뾰족한 다른 방법은 없어요. 그렇지요, 집을 팔아 빚 갚아야 해요. 여기서부터 첫번째 소용돌이가 일어요. 빚을 갚으려고 집을 팔려는 사람이 늘수록 집값이 더 빨리 떨어지게 되고, 집값이 더 떨어지니 빚 갚으라는 독촉은 더 강해지고, 그래서 다시 집을 팔려는 사람이 늘어나지요.

집을 사려는 사람이 그간 많아서 집값이 수직상승했듯이, 그 반대의 경우에도 같은 현상이 벌어지는 거예요. 이런 현상은 한번 일어나면 소용돌이가 일어나는 것처럼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기 마련이에요. 이런 집값 하락 소용돌이가 한차례 지나가고 나면 집을 팔아도 빚을 다 갚지 못하는 사람이 여기저기 넘쳐나게 됩니다.

“무리하게 돈을 빌려 집을 산 책임을 져야 하는 건 당연하지 않나요?” 당연하죠. 하지만 돈을 빌린 개별 가계 선에서 문제가 그치지 않는다는 데 가계빚 공포가 자리잡고 있어요.

빚을 다 갚지 못한 사람이 늘어난다는 의미는 달리 말하면 빌려준 돈을 떼인 은행도 많다는 걸 뜻합니다. 가계뿐만 아니라 은행도 부실해지는 거지요. 은행이 부실해지면 어떻게 될까요?

은행에 돈을 맡긴 사람들이 앞다퉈 돈을 빼가려 할 거예요. 언제든지 맡긴 돈을 찾을 수 있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은행에 돈을 맡겼는데, 은행이 부실해지면 맡긴 돈을 되찾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죠. 되찾지 못하는 때가 오기 전에 다른 사람보다 한발 빨리 돈을 찾으려고 은행 문을 두드리는 거지요.

이런 현상은 너무나도 순식간에 일어나기 때문에 ‘뱅크런’(Bank Run)이라고 불러요. 은행(Bank)에 돈 찾으러 사람들이 달려간다(Run)는 걸 표현하는 말이에요. 뱅크런은 전염성도 높아서 튼튼한 은행도 이 소용돌이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아요. 모든 은행이 부실해지거나 부실 위험에 빠지는 상황이 돼요. 집값 하락이 불러온 두번째 소용돌이예요.

은행이 부실에 빠져 제구실을 하지 못하게 되면 경제 전체가 마비가 됩니다. 피가 제대로 돌지 않으면 우리 몸이 견뎌낼 수 없는 것처럼, 경제의 피라고 할 수 있는 돈을 맡고 빌려주는 은행이 고장 나면 경제도 멈추게 되어요. 기업은 도미노처럼 무너지고, 거리는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로 가득 차게 된다는 겁니다.

정리를 하면 가계빚이 과도하게 많은 상황에서는 집값 하락이 연쇄 소용돌이를 일으켜 경제 전체를 망가뜨리는 결과를 낳을 수 있어요. 실제 이런 일은 드물지 않습니다. 가까이는 2008년 미국의 금융위기가 이러한 과정을 거쳤고, 1990년대 초에는 일본에서 이와 유사한 일이 벌어졌지요. 모두 가계빚이 넘치게 많았고, 집값이 갑자기 폭락했으며, 은행은 부실화됐고, 경제 전체가 망가지는 과정이 이어졌어요.

그래도 다행인 점 한 가지

아직까지 우리나라에는 이런 소용돌이가 본격적으로 일어나지는 않았어요. 또 가까운 장래에 이런 일이 나타난다고 장담할 수도 없지요. 앞서 말했듯이 집값이 언제 떨어질지 알기 어렵기 때문이에요. 그렇다면 가계빚은 ‘현재’ 아무런 문제도 일으키지 않는 걸까요?

우리 경제는 2~3년 동안 꾸준히 활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어요. 위기는 아니지만 호황도 아니라는 거고, 조금씩 조금씩 상황이 나빠지고 있다는 이야기예요. 여기엔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그중 하나로 가계의 소비 부진이 꼽힙니다. 가계의 씀씀이가 준다는 뜻이죠. 예전보다 물건도 덜 사고 여행도 덜 가요. 그러다 보니 기업도 돈을 잘 벌지 못하고, 기업이 돈을 못 버니 일자리도 안 늘고, 노동자들 봉급도 안 오르고 있어요. 장사하시는 분들 형편도 나아지지 않지요.

가계가 씀씀이를 줄인 이유에 대해서도 여러가지 풀이가 있어요. 그중 가장 유력한 풀이가 바로 넘치는 가계빚이죠. 빚 갚을 걱정이 한가득인데 어떻게 돈을 마음껏 쓸 수 있겠느냐는 거지요. 허리띠를 졸라매는 건 당연한 선택이라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경기가 좋다면야 앞으로 벌어들일 돈이 늘어날 것이라는 기대감에 미리 돈을 쓸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그런 상황도 아니에요.

이런 점에서 우리나라의 가계빚은 현재로선 한번에 빵 하고 터지는 폭탄은 아닌 거 같아요. 또 집값 하락 시점이 언제인지 가늠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터질 때가 정해진 시한폭탄이라고 단정하기도 쉽지 않아요. 오히려 가계빚은 암세포에 비유하는 게 더 적절한 것 아닌가 싶어요. 서서히 숨통을 죄어오는 암세포 말이에요. 가계빚이 경제의 활력을 서서히 떨어뜨려 가고 있으니까요.

지금껏 우울한 이야기만 했나요? 그럼 우리나라 가계빚이 그나마 다행인 점을 소개하는 걸로 이 글을 마칠게요.

우리나라 가계빚은 부유한 계층에 쏠려 있어요. 소득이 적은 사람보다 많은 사람이 더 많은 빚을 지고 있다는 뜻이에요. 좀더 정확히 살펴보면, 소득 상위 20%에 속하는 가구가 전체 가계빚의 절반쯤(46.5%) 안고 있어요. 아무래도 돈이 있는 사람들이 비싼 집을 사려 했을 테니, 이 계층에 빚이 많은 건 자연스러운 일이죠. 빚이 많아도 소득도 함께 많다면 가계빚 불안은 다소간 줄어들지요. 빚 갚을 능력이 상대적으로 크다는 거니까요.

사실 2008년 미국에 금융위기가 온 이유도 소득 수준이 낮은 사람들이 빚을 많이 안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미국에선 소득이 적은 사람들도 손쉽게 돈을 빌릴 수 있었거든요. 집값이 조금 떨어지자 걷잡을 수 없이 소용돌이가 발생한 배경이지요. 미국은 물론 우리나라보다 가계빚이 더 많은 나라 중 하나인 덴마크는 이와 정반대 경우예요. 이 나라가 여태껏 가계빚 폭탄이 폭발하지 않은 것은 우리나라처럼 부유층이 주로 가계빚을 지고 있기 때문이에요. 이런 점에 비춰보면 가계빚을 많이 안고 있는 고소득층이 앞으로 빚을 더 내지 않고 서서히 갚아 나가도록 유도한다면 가계빚 공포는 얼마간 줄어들 수가 있겠지요.

또 집값이 빚을 낼 당시보다 20~30% 떨어지기 전까지는 본격적인 소용돌이가 일지 않을 거라는 점도 그나마 다행인 대목이에요. 집값이 20~30% 이상 떨어지지 않는다면 전반적인 가계부실이나 은행부실로 확산되어 경제가 마비가 되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 거라는 얘기죠. 왜냐고요? 2003년에 집값 대비 70%까지만 빚을 낼 수 있도록 정부가 규제를 만들어놓았기 때문이죠. 당시에는 이 규제에 많은 반발이 있었으나, 지금은 가계빚 공포를 줄인 안전판이라고들 모두 생각한답니다. 이런 이유로 우리나라엔 가계빚 폭탄을 처리할 시간이 어느 정도 남아 있다고 볼 수 있어요.

Next Article